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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정묘호란

송현모 (지은이)
반달뜨는꽃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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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정묘호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91191604146
· 쪽수 : 234쪽
· 출판일 : 2022-12-20

책 소개

송현모의 <정묘호란>. 인조반정 후 조선은 명나라와 가깝게 지내고 후금과는 거리를 두는 ‘친명 배금’의 입장을 취했다. 조선의 이러한 정책은 명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후금에게는 걱정거리였다. 명과 전쟁을 하는 사이 조선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차

호민론 豪民論 7

정묘호란Ⅰ 15
정묘호란Ⅱ 21
정묘호란Ⅲ 81
정묘호란Ⅳ 113
정묘호란Ⅴ 151

정묘호란 野史 189
1624년. 인조실록 7권 2년 10월 213

참고자료 221
허난설헌 223

저자소개

송현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81년 3월 30일 경기도 시흥시 (지명 : 숯두루지)에서 태어났다. 한국사와 심상에 관심이 있어 공부하고 있으며. 한국사 지도사 1급, 인문학 지도사 1급, 장애인 인식개선 지도사 1급, 심리 분석사 1급, 심리 상담사 1급, 직업 상담사 1급, 안전교육 지도사 1급 등 관심 분야에 대해 20여 가지 자격증을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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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후금군은 1월 12일 조선의 국경 관문인 의주의 북쪽 압록강의 가운데에 위치한 승애도, 막사도, 칠적도, 구리도, 송도 등에 도착하여 병력을 집결하여 의주를 고립시킨 후 각 군별로 구체적 임무를 부여하여 세부작전을 하달하였다. 이리하여 후금군의 조선 침공으로 인한 정묘호란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의주성은 부윤 이완이 약 3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방어에 임하고 있었다. 이완은 이순신의 조카로서 임진왜란에도 참여하여 용맹을 떨친 무장이었다. 그러나 이완은 후금군의 대병력이 압록강 대안에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성을 굳게 지키면서 증원군이 도착하면 반격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후금군이 침공했다는 보고를 구성에 본영을 두고 있던 평안병사 남이홍에게 보고하였다.


후금군의 의주성 침공과 함락의 일시가 조선의 조정(朝廷)의 문서와 개인 문헌과 차이가 있다. 조정의 문서에도 침공의 일시가 13일 새벽 1~3시 경에 압록강을 도강하여 바로 의주성을 침공하여 함락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기록과 13일 새벽 1~3시 경에 압록강을 도강하여 그날 낮에 의주성을 공격하다가 14일 새벽에 잠입하여 함락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기록이다. 전자의 기록에 해당하는 문서들은 다음과 같다.「후금군 3~4만이 13일 밤에 빙판의 압록강을 건너 의주성 수구문으로 잠입 습격하여 성을 지키던 군사를 죽였다. 목사 이완은 적병이 성에 오른 뒤에야 이를 알았다. 날이 밝자 성이 함락되어 성의 군민들은 다 도륙당하였고 이완과 판관 최몽량, 별장 등이 다 죽었다. 후금군이 정주·의주에 주둔하여 성을 함락시킨 사정은 다음과 같았다. 후금군은 밤을 틈타 불시에 풀더미를 성내에 투입시켜 먼저 화약고에 불을 질러 연기가 하늘에 가득하였다. 그래서 아군은 적군과 접전할 겨를도 없이 다 죽었다. 적군은 부윤·판관의 처자 등을 다 머리를 베고 옷을 벗겨 적군에 나누어 주었다.」의정부 장계에 의하면, 금년 정월 17일 평안도 도순찰사 윤훤(尹暄) 등 여러 장관이 잇따라 보낸 치계에 의거하건대 이달 13일에 노적(奴賊) 3만여 기(騎)가 갑자기 의주를 습격하여 수구문(水口門)으로 들어와 수문장을 죽이고 몰래 성안으로 들어왔으므로 군문(軍門)에서는 적군이 온 줄을 깨닫지 못했다. 본진(本鎭)의 절제사 이완(李莞)이 급히 나아가 방어하면서 통판(通判) 최몽량(崔夢亮) 및 수하 장관들과 함께 아침까지 전투하여 적병을 많이 죽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버틸 수 없었다. 이완·최몽량 등은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께 죽었고 대소 장관과 수만의 민병(民兵)들도 남김없이 도륙당하였다. 후자의 기록으로 후금군이 13일 새벽 1~3시경에 압록강을 도강하여 이날 낮에 의주성을 공격하다가 14일 새벽에 함락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평안감사 윤훤이 기술한 의주성 함락 경위로 여겨지는 것이 다음의 문서다.「14일 닭이 세 번 울 무렵인 새벽에 적병 5~6명이 포루(砲樓) 한 쪽 변을 따라 넘어 들어와 고함을 질러대니 성 위에 있던 군사들이 다 놀라 흩어졌다. 부윤은 병사를 이끌고 혹은 포를 쏘며, 혹은 총을 쏘면서 항전했으나 날이 채 밝자마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부윤과 판관은 다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고, 성 안의 남녀들은 다 성 밖으로 쫓겨났다. 성 밖에 쫓겨난 남녀들은 다 참살이 되고 적이 그들의 옷은 다 벗겨서 적이 있는 성 안으로 운반했다.」위 조선 조정(朝廷)의 문서들 중에서 의주성이 14일에 함락됐다는 기록에 따른다면 후금군이 13일 낮에 의주성을 공격하다가 14일 새벽에 잠입하여 해가 떠오를 무렵에 함락됐다고 생각한다. ‘연려실기술’이 의주성 함락 경위를 인용한 ‘조야기문’, ‘일월록’에도 의주성이 14일 새벽에 함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녁에 한윤(韓潤)이 중국 옷으로 변복하고 몰래 사냥꾼을 따라 들어와 적을 성으로 끌어들여 군기(軍器)를 불태우니 성 안은 크게 혼란이 일어났다. 14일 새벽에 적이 성으로 육박하여 치달리며 쳐들어오니, 성 안의 반민들이 성문을 열고 적을 들어오게 하니 성은 드디어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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