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897937
· 쪽수 : 167쪽
· 출판일 : 2024-12-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슬픔을 더 이상 기억으로 만들지 말자
빛과 사랑과 당신 – 11
슬픈 토우는 고래만큼 – 14
머미브라운 – 15
야간 해루질 – 18
자애의 흔적 – 20
빛이 물드는 소리 – 24
미래의 종 – 27
당신의 장소 – 30
난연(難燃) – 32
제2부 그림자에도 그을리는 마음
선고 – 37
변방의 요리사 – 40
혈육애 – 42
휘슬블로어 – 44
암순응―변방의 시작 – 46
이상한 천국 – 50
수박이 미래였던 – 52
처단의 밤 – 55
건축된 숲―변방의 종교 – 58
제3부 다시, 사랑의 외벽 안에서
물소리 – 63
사랑의 외벽 – 67
여름의 가장 끝쪽 – 70
공원을 배회하는 감각 – 73
유실물 – 76
건설적인 서정 – 79
환절기 – 81
놀이터를 향해 – 83
종말이 정말로 – 86
제4부 우리는 우리를 마음껏 잊을 수 있다
헤이하이즈 – 91
풀잎들 – 93
하이 볼 – 95
유일무이 – 97
폴터가이스트 – 101
춘곤증 – 103
침잠 – 105
그저 세상의 끝 – 108
허공의 집 – 110
월동지 – 113
제5부 철골 같은 양각 문자를 문지르며
자유사격지대 – 117
해후 – 119
테이블 데스 – 121
섬은 바다의 마음 – 123
투광층 – 126
깡통 차기 – 128
또 – 130
계절감 – 132
퇴거 – 134
쌍두사 – 137
웃음 배우기 – 138
노이즈 캔슬링 – 140
해설 문종필 사소하지만 찬란해서 새들한 이방인의 언어 – 142
저자소개
책속에서

슬픈 토우는 고래만큼
우리 놀이터 가서 놀자 손잡고 두꺼비 집을 짓자 누가 손 빼면 무너지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그러나 우리 적요를 발설하진 말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우리는 침묵에 대해 잘 아니까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빛을 모조리 소모하자 서로 구겨진 얼굴 사이사이에 낀 모래를 훔쳐 주자 샌드아트처럼 훔친 모래만큼 표정이 생겨나도
슬프니? 묻진 말자 슬픔을 더 이상 기억으로 만들지 말자 우리 뭍으로 나와 햇볕을 쬐고 있는 향유고래의 등 위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자 석고를 뜨는 기분으로 우리 절대 손 놓지 말자 우리 약속들이 기항지에 정박한 선박들처럼 목적지가 모두 다르더라도
혼자 흔들리고 있는 그네의 등을 조용히 밀어 주자 얼굴부터 입수하기 시작하는 고래만큼 부서지자 우리 잉여의 빛이 머무는 해변이 되어 온종일 섞여 있자 우리 그러고 있자
물소리
슬리퍼를 끌며 우리는 애월을 걸었다
많이 걸었고 솔직해졌다
뙤약볕 아래에서 물통을 건네는 네가
모자챙 그림자 안에서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소해
해변을 질주하다
바다에 입수하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처럼
물이 증명하는 것이
몸을 온전히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라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
눈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분명
다른 어딘가에 입장했을 거라고
믿어 볼 수 있게 되어서
나는 어느 선사박물관에 있었다
수천 년이 지나 발굴된 물건들은
자신을 만지던 손길을 기억하고 있을까
손이 닿으며 생기던 음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정말 사소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기억할 수 있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은 누굴 보고 있습니까?
역시 그가 나는 아니겠지요
이런 질문은 어떤 목소리로 내야 할지
그렇지만 사소한 일이야
바다에 들어갔다가
젖은 몸을 이끌고 나와
다시 애월을 걷는 것쯤
누군가를 불러 보고 싶어서
수천 년이 지난 후에
잘 보존된 물통을 매만진다고 해도
단지 그곳엔 바다가 있을 테고
우리가 슬리퍼를 신고 걸었던
길목이 있을 테고
우리 둘만 기억되는 세상은
얼마나 어리숙할지
얼마나 사소할지
물통을 건넬 때
흔들리며 났던
수천 년 전의
물소리를 알아듣는 일처럼
그날 우리가 바다에 있었던 건
바다가 우리를 기억해 낸 일이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