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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071992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22-11-08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하루 일에 지친 몸을 추스르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언제나처럼 마음은 편안했다. 집에 가면 가족들이 있고, 단 한 시간이지만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일과 공부는 그가 마음먹고 있는 오십 대 이후의 한 차원 높은 삶을 위한 것이므로, 그는 다른 것에 눈 돌리지 아니하고 날마다 일과 공부에 최선을 다했다. 그날 일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작은 냄비에 담아놓은 국을 데워 밥을 말아 한술 뜨고 집을 나오는 시각은 다섯 시였다. 지하철역까지 삼십 분을 걸어가면 다섯 시 반에 출발하는 첫차를 탈 수 있었다. 첫차임에도 객실 좌석의 삼 분의 이 정도는 승객들이 앉아있었고, 그들은 모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는 듯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行色)을 보면, 남자는 모자와 잠바 차림에 튼튼한 운동화를, 여자는 벗고 입기 편한 옷에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무릎 위에 작은 백팩을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첫눈에도 일하려고 출근하는 근로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은 이처럼 이른 새벽부터 각자의 삶의 공간에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민수는 여느 때처럼 휴대폰에 이어폰을 꽂고 알람 시간을 맞춘 후 잠을 청했다. 다음 내려야 할 역까지는 사십 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부족한 잠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역에서 내려 회사 버스로 다시 건설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이십 분을 더 차를 타긴 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소소한 소음 때문에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작업이 시작되는 시간은 일곱 시였다. 서둘러 작업모와 작업복을 챙겨 입은 민수는 건설 현장 사무소 앞에 죽 늘어선 동료들과 함께 현장소장의 간단한 작업지시를 듣고서 작업 현장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