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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영화/드라마 > 영화감독/배우
· ISBN : 9791192134512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3-11-24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4
긴 대사가 불러오는 조급증 12
매일 아침 하는 무엇에 관하여 20
글쓰기의 시작점 29
40만원 36
처럼 47
Lesson 53
늘 내 주위를 맴도는 그것 61
바람의 언덕 69
그러다 문득 77
Run 84
일요일 어느 아침의 결단 92
내가 원하는 삶이란? 103
색안경 109
없는 사람끼리 도와야지 116
동료의 시련 122
글쓰기를 멈추고 3년이 지난 현재 129
승률 0% 135
방안의 작은 어항 142
11층 147
불면증 153
밥이나 먹자 159
나만의 주문 166
스무 살의 짝사랑 173
나 정말 헤어졌어 이번엔 진짜야 179
취미 생활의 로테이션 186
나로부터 방치된 모든 것들에 대한 사과문 193
숨만 쉬는 기타 201
Simple is the best? 209
고정관념과의 전쟁 216
제로 미터를 향하여 224
I like green 232
조각모음 239
신발 끈을 묶을 최적의 타이밍 245
거대한 흐름 앞에 놓여있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252
에필로그 26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글쓰기의 시작점 (2013년 여름)
내 직업은 배우. 정확히 말하자면 2001년도부터 연기를 시작하였고 군 복무 중이었던 2005년 2월 14일부터 2007년 2월 13을 제외한 지금까지 연기를 단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다. 아직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같은 작업을 했던 사람들끼리만 서로 알고 있다) 어쨌든 내 직업은 배우이다. 이러한 내가 무대나 카메라 앞에 있지 않고 어떻게 해서 글을 쓰게 되었는가 하면, 우선 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하는 날이 일 년 중 손에 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가서 돈을 벌면 어떻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겐 이 책에 담겨 있는 글 ‘40만 원’을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몇 달 전. 아는 동생을 끌어들여 길거리에서 시작한 옷 장사를 일단락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하고 주어진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곤 이면지에 두 가지의 옵션을 적었다. 하나는 도전적으로 시작한 길거리에서의 옷 장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글쓰기이다. 옷 장사는 그동안의 매출로 봤을 때 생각보다 괜찮은 용돈벌이로써의 옵션에 당당히 오를만했지만, 글쓰기는 딱히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밖의 다른 옵션들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며칠 동안 그 두 가지에 대해서만 신중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 결과 옷 장사는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다는 판단과 함께 열심히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에 비해 글쓰기는 대학 시절 시나리오 몇 편을 과제 형식으로 쓰거나 군대에 있을 때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 전부였다. 따지고 보면 자주 했던 작업이 아닐뿐더러 경제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얻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어느 누가 봐도 선택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차 일주일 동안을 고민하였고, 딱히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글쓰기’라는 항목이 자꾸 빤히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결국, 글쓰기의 손을 번쩍 들어주고야 말았다. 한번 선택한 이상 번복은 불가능하다. 이에 관한 특별한 룰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제 나는 주로 집에 있는 시간에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평소 소설과 수필을 즐겨 읽긴 했지만 막상 쓰려하니 막막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생각해 본다. 그러는 동안 시선은 자연스레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로 향한다. 현재는 대문호이지만 그분들의 초창기 글도 어쩌면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그래, 배우로서 지내 온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짚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자. 진솔하게 그간의 세월을 써 내려간다면 이 또한 하나의 배우 훈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복잡한 심경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로부터 며칠 뒤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우연처럼 찾아왔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었던 알고 지낸 형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형과의 대화를 끝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노트북 앞에 앉아 시간의 흐름도 알아채지 못한 채 첫 번째 글을 써 내려갔다. 그 후로 떠오르는 주제나 생각들을 이면지나 메모장에 기록하였고 잠드는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이야기의 소재들이 아른거려 늦은 시간까지 잠 못 들었던 적이 수차례. 난 그만큼 글쓰기에 깊이 빠져들었고 글 쓰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 성격을 알고 있다. 쉽게 빠져들면 그보다 더 쉽게 질려한다는 것을. 앞으로 나는 얼마만큼의 글을 더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 보려고 한다. 서른이란 나이.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 하지만 ‘새로운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이란 구절을 더하여 무엇이든 책임감 있게 도전해 보고 싶다. 현재에도 난 줄기차게 배우로서 도전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은 땅속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그간의 배우 생활을 하며 겪어왔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 내보려 한다.
지금의 변 (2023년 여름)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듯 이 책의 글들은 서른 살 즈음, 인생의 암울했던 시기에 집착적으로 매달리듯 썼던 글이다. 처음 글을 쓴 계기가 되었던 알고 지낸 형은 누구였는지,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나의 첫 글은 ‘I like green’으로 추정된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건 매 순간 쉽지 않아 문장을 쓰다 지우길 반복하고 있지만, 글을 쓰고 고치며 내적 고요를 느끼기에 지금의 작업도 자기 위로의 일환으로 삼고 있다.
여전히 가느다란 글과의 연계를 놓치지 않고 싶어 핸드폰 메모장을 수시로 열고, 닫으며 순간 느꼈던 생각들을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슬그머니 10년 전의 그때와 같이 쏟아내듯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는 봐주었으면 하는 그런 이야기들. 얼핏 잠금장치가 달려 있는 듯하지만 실은 완벽하게 열려 있는 일기장과 같이 누군가 슬며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10년 전의 글을 정리하며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를 비교하니 파노라마와 같이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스치지만, 결국 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기록해주지 않을 그때의 글이 없었더라면 지나온 시간을 세세히 기억할 수 없었을 테니까. 10년 전,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니 지금은 그때보다 간절함의 색채가 옅어진 것 같아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두웠던 단면보다는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목표와 의지가 짙었던 그때의 내가 내심 부럽기도 하고. 과연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나는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지금의 내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진 않을까. 문득 그날의 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