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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57833825
· 쪽수 : 300쪽
· 출판일 : 2025-10-01
책 소개
에드거 앨런 포, 단테, 러브크래프트를 철학의 언어로 다시 읽는 ‘철학의 공포’ 연작 제3권
《밤보다 긴 촉수》는 에드거 앨런 포, 단테, 로트레아몽, 러브크래프트와 토머스 리고티 등의 초자연적 공포를 담은 작품을 철학적으로 ‘오독’하기 위한 시도이다. 이 책에서 유진 새커는 미지의 차원에서 오는 공포를 개념화하고 동물성, 부패한 시체, 괴물과 유령 등 다양한 모티프를 분석하며, 이와 동시에 죽음과 삶을 대비하여 실존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정확히 마주한다. 그는 연작 1권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에서 오컬트와 악마학, 신비주의와 실존주의 등의 형이상학적 논의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관주의를 펼친 바 있다. 무의미와 부조리로 가득한 ‘우리-없는-세계’로 독자를 안내했던 전작에 이어, 이 책은 공포 문학이라는 보다 흥미로운 매개를 통해 인간다움과 삶의 의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부수는 강력한 사유를 펼쳐 나간다.
미치지 않았다는 공포
연작 1권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에서 형이상학적 논의와 비관주의를 통해 초자연적 공포를 말했던 유진 새커는 《밤보다 긴 촉수》에서 공포 문학이라는 보다 흥미로운 매개로 정치철학과 신학, 자연철학 등 우리에게 더욱 가까운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단테의 《신곡》,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등의 문학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포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독자를 생생한 공포의 향연으로 초대한다. 이 책에서 유진 새커는 미지의 차원에서 오는 공포를 개념화하고 동물성, 부패한 시체, 괴물과 유령 등 다양한 모티프를 분석하며, 이와 동시에 죽음과 삶을 대비하여 실존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정확히 마주한다.
초자연적 공포란 화자가 아무리 증언하려 애써도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초자연적 공포는 세계를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해했던 기존의 사유를 뒤흔드는 개념이다. 새커는 초자연적 공포를 통해 인간이 근본적 불확실성을 마주한다고 보았다. 이때 인간에게는 자신이나 세상 둘 중 하나가 미쳤다는 양자택일의 가능성이 생기지만, 새커는 오히려 이 가능성을 전복시켜 역설을 제시한다. 이때 진정으로 “공포스러운 것은 미쳤다는 것이 아니라,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의 〈검은 고양이〉에서는 이러한 공포의 속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내 감각조차 스스로 감각한 증거를 거부하는데도 그러길(당신이 믿어주길) 바란다면, 틀림없이 미친 짓일 테니. 하지만 난 미치지도 않았고, 분명 꿈을 꾸고 있지도 않다.” 츠베탕 토도로프가 ‘환상성’의 개념으로 설명했던 이러한 상황이 이어질수록 합리적 이성의 내부에서는 점차 공포라는 미지의 존재가 깨어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이성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공포의 순간을 새커는 철학적 논의로 끌고 간다. 그는 공포 장르를 우리의 현실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알레고리로만 해석해 온 기존의 문학비평을 거부한다. 그는 이러한 알레고리적 해석에 덧붙여, 소설에 적힌 묘사 그 자체에 집중하며 공포의 대상을 그대로 마주하고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와 효과를 제대로 보자고 제안한다. “‘마치’ 저 다른 차원의 이름 붙일 수 없고 촉수 같은 실체가 영혼을 집어삼킬 듯한 게 아니라, 정말로 집어삼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것이다.”
독창적 ‘오독’으로 읽어내는 공포의 세계
새커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공포 소설로 ‘오독’한다. 이 행위는 〈지옥편〉이 단테가 목도하는 지옥의 수많은 고어한 이미지를 끝없이 제공하며 마치 공포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기반한다. 그뿐만 아니라 새커는 지옥을 단순한 악행 분류 체계로 보는 대신, 한 발짝 멀리 떨어진 관점에서 그것을 하나의 ‘정치체’로 분석한다. 공포 소설을 철학적으로 다시 ‘오독’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철학자들은 ”인간의 개인적 신체와 사회의 집단적 신체 사이의 유비類比를 채택”하며 정치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부에서 중부, 하부로 이어지는 하향식 통치 체제인 〈지옥편〉의 지옥은 언뜻 경직되어 보이지만 내부의 “수많은 내적 긴장, 모순, 이상한 치환”으로 인해 “논리적으로 일관된 괴물을 창조”하는 공간이다. 새커는 이러한 지옥의 구조를 “권력의 건축학”이라고 표현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정치철학을 펼친다. 살아 있는 시체가 걸어 다니는 지옥-정치체는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 세계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는 동시에 위계적 구조를 통한 정치 질서를 상징한다. 즉, 지옥-정치체는 “살아 있는 생기적 질서”가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옥의 정치적 구조를 통해 세계의 자연적 질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러지는 인간의 육체와 인간성으로 이어진 새커의 시선은 이제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 담긴 기이한 동물성에 주목한다. 바슐라르가 “변신의 열락”이라고 말했던 동물성과 영성靈性이 담긴 비-인간적이며 반-인간적인 텍스트로 이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다.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노래》에서 동물성을 과학과 종교로 이루어진 인간의 “세계 속으로 침입하는 것, 몰인간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을 침입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무너진 “혼종성의 땅”에 진입하여 “텍스트 속 동물성에서 텍스트의 동물성으로의 전환”을 꾀하는데, 《말도로르의 노래》가 우리에게 안겨 주는 공포의 뿌리는 바로 그곳에 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인간과 동물의 사체, 그리고 주체와 객체, 포식자와 피식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새커는 인간다움이 사라지는 이 절대적 공포의 조건 속 반-인간적 상태를 그려낸다.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서 살아남는 법
새커는 초자연적 공포를 다룬 러브크래프트와 리고티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무심주의’를 경유하면서 사유의 한계에 대한 사유, 사유 불가능성에 관한 사유로 나아간다. 두 작가가 그려 내는 초자연적 공포는, 공포의 진실이 품은 의미를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는 칸트 패러다임이나 하이데거 패러다임 양쪽에 모두 맞선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이 “인간성에 관해서는 말할 진실이 없”으며 그저 텅 비어버린 데에서 나온 공포를 그리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이 세계가 인간과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에 그저 무심할 뿐이기 때문이다. 비관주의가 인간 존재가 허무로 귀결된다는 인식이라면 무심주의는 인간 없는 진정한 무無를 마주하는 작업이다. 그 어떤 충족이유율이나 인과율도 그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전의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는 허무주의적 절망이 담긴 선언으로 시작했다. “세계는 갈수록 사유 불가능해져 간다. 범지구적 재난, 유행병 출현, 지각변동, 이상기후, 기름 덮인 바다 풍경, 은밀하지만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멸종 위협 등으로 가득”하다. 새커는 우리가 이미 이해와 통제의 범주를 벗어나 재난이 일상화된 세계에 살아가고 있으며, 이 세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 자체가 절대적인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인간중심주의를 건조한 시선으로 해체하며 그 한계 너머를 ‘우리-없는-세계’로 말한다. 그것은 인간이 멸종한 후의 세계이자 지금껏 인간이 세계를 이해했던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으며 비인격적 사물과 무의미만이 남은 세계이다. 신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 등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철학의 주류로 떠오른 만큼, “철학의 공포” 연작이 품은 급진성은 그야말로 시의적절하다.
새커는 “기후, 행성, 우주라는 비-인간적 배경 앞에서, 모든 경계가 해소되고 상대적 차이들로 이루어진 동요하는 표면만 한껏 증식하는 시대, 즉 포스트모던 시대이자 포스트휴먼 시대”를 비판하며 인간이 그 너머의 ‘행성적’ 관점에 다다라야 한다고 말한다. 우주 너머의 행성적 관점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 허무주의는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종국에는 반-윤리적 사유로 변질될 가능성마저 지니고 있다. 이러한 허무주의의 맹점을 벗어나기 위해 새커는 비-인간적 사유를 섬세한 철학적 논의로 다듬는다. 대중의 마음에 숨은 허무주의와 공포를 견고히 다짐으로써 인간다움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허무만 남은 세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발판을 얻게 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떠한 ‘의미’를 찾아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밤보다 긴 촉수》를 비롯해 유진 새커의 “철학의 공포” 연작은 그러한 인간의 새로운 삶의 유형에 있어서 출발점이 되어 줄 책이다.
목차
1. 밤보다 긴 촉수
광활하고 요동치는 우주(포와 러브크래프트)
철학의 공포
초자연적 공포에 관하여(개인적 역사)
나는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믿는 것을 볼 수 없다
2. 악마적인 것에 관한 명상
지옥에 관하여(단테의 〈지옥편〉)
지옥에 관한 여담
죽은 수사, 부활한 신체
위에서 그렇듯, 아래에서도 그렇다
부패하는 신체
추락해야만 다시 비상할 수 있다
시체학
지옥의 변주들
아르젠토의 〈인페르노〉
재앙의 삶
3. 고딕적인 것에 관한 명상
짐승의 책(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
이빨과 발톱, 살과 피
변신의 열락
나는 송장을 데리고 다닌다
문학에 맞서, 생명에 맞서
산 채로 먹히거나, 산 채로 묻히거나
케팔로포어의 꿈
죽음의 긴 머리카락
떠도는 도축장
용해되는 매체
4. 괴기한 것에 관한 명상
얼어붙는 사유(블랙우드와 러브크래프트)
초자연의 논리
무서움도 아닌, 사유도 아닌
삶도 아닌, 죽음도 아닌
검은 빛
그림자 예찬
검은 수학소
자연공포
촉수들에 관한 주해
여기는 우리 고향이 아니다(리고티)
수도원의 공포
5. 마치…
마치
거니는 철학자
폐위
환영들(Ⅲ)
종교적 공포
한때 살아 있던 그림자
환영들(Ⅳ)
세계는 유령이 되고
허깨비 같은 자살
정언명령의 옹호
공포 찬가
부정한 물질
은닉된 성질
환영들(Ⅴ)
미주
책속에서
그렇다면 환상성은 초자연적 공포의 핵심이다. 그러나 토도로프가 지적하듯, 환상성에서 제기되는 유형의 의문은 심지어 장르 자체를 침식할 수도 있다. 환상성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고, 이야기 내내 지속될 수도 있다. 환상성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우리를 “섬뜩한 것”으로 혹은 “경이로운 것”으로 데려감으로써 답을 줄 수도 있지만, 그 답보다 의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이런 의문이 생겨나는 순간에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며, 우리 발밑에서 땅이 무너져 내린다. 공포 장르의 관습 내에서 환상성이 제기하는 의문은, 그 외피만 다를 뿐 철학적 의문이다.
모든 위대한 체계 조직자가 그러하듯이, 단테의 지옥도 완벽한 체계는 아니다. 그곳에는 불완전한 합치, 미묘한 부조화, 다의적 구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단테의 도덕 범주를 총체적인 물리적 구조로서의 지옥에 ‘적용’할 수는 있지만, 또한 각각의 지옥 환은 이러한 전체론적 관점을 거스른다는 데 주목할 필요도 있다. 각 환에 갇힌 인간 “그림자”는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 자신을 그곳에 가둔 신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또한 (악마, 푸리아, 켄타우로스 같은) 오만가지 생명체도 그들의 제한적이고 기능적인 임무를 박차고 뛰쳐나올 위험이 있다. 나아가 맹렬한 폭풍, 범람하는 물, 퍼져 나가는 불의 폭포가 있는 지옥의 각 영역도 다른 환으로 넘쳐흐를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큰’ 정치체가 지옥의 건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지옥 자체를 이루는 부단한 격동 안에서 무수한 ‘작은’ 정치체가 그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함께 읽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말도로르》에는 생기적이고 관대한 변신의 열락이 아닌, 그와 반대되는 동물성도 있는가? 생명의 부정, 형태의 철회, 형태의 청산과 소산消散, dissipation, 모든 형태의 비움인 동물성, 즉 신비주의를 바로 형태의 소산으로 상상하는 동물성이 있는가? 부재와 거리와 불투명함의 동물성, 즉 일종의 음침한 동물성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이는 《말도로르》에서 동물성이 없지는 않더라도 더는 즉각 드러나지 않는 순간,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동물성이 그 자체에게만 이로운 순간에 있을 것이다. 《말도로르》에서 동물성은 지속적 형태 증식이 아니다. 동물성은 끊임없이 미끄러져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