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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651231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4-01-3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성냥불·15
접시 깨기·16
여름철엔 헐벗은 복근남들만 설친다·18
막혀 있는 것들은 오프너로 따 주자·20
어느 유곽에서·22
카멜(camel)이 바늘귀를 통과한 까닭·24
복날·27
피즈올라(pizola)·28
아, 쉐지곤 파고다에는·30
아카다시에게·31
Winner·34
빈방·36
운현궁 앞에는·38
그 남자·39
인생은 코미디·40
[2부]
무인도·45
비와 비 사이에는·46
바닥論·48
집으로·50
독처(獨處)·52
Gap·54
충동구매·56
부부·58
불발탄·59
겨울비 속에서 돌아오다·60
입마개는 감기 걸렸을 때만 하는 건가·62
폐계(廢鷄)·64
안녕·66
E-5·68
홍옥을 깎다·70
[3부]
방백·73
헐거움에 대하여·74
늦은 오찬·76
간다마빤으로 피어나다·78
당수(黨首)·80
Mezar·81
폭설·82
발·83
사육·84
짝·86
닭·87
고라니 장비를 해체해 간 놈이 도대체 누구지?·88
춘화도·90
연(緣) 날리기·92
회화나무·93
[4부]
수박·97
순이·98
몸이 기억하는 길·100
하늘을 날다·102
내막·103
자화상 2·104
비둘기아파트에는·106
연꽃·108
나는 누구의 갈비뼈일까·109
인레호수에서 1·110
인레호수에서 2·112
수술을 앞두고·114
고추밭 언저리·116
민들레꽃·117
저자소개
책속에서
눈 코 입, 달린 사람 누구나
한번쯤 거리를 후끈 설치고 다녔을
털가죽 옷 한 벌,
한파 거칠어질수록
티브이 속 먼 나라 인공 사육장에는
거꾸로 매달린 야생 너구리들.
동료들이 훤히 지켜보는 쇠창살 너머에선
제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날 선 면도날에 슥슥 벗겨진다
아무렇게나 방치된 벌건 육신들은
얼어붙은 흰 눈 위에서 더운 김을 가파르게 토해낸다.
녹물 흐르는 비좁은 철창 속
갓 태어난 새끼들이 천진난만 어미 젖 치댈 때
혹한의 가죽들을 능숙하게 발라내는 공포들.
쉴 새 없이 사육되고 있는
철창과 철창 사이.
윤기 번들한 부드러운 생목숨들이
제 몸 안에서 평생을 붙박이로 살아가야 할
희멀건 시간을
모피 숍에서 원적지보다 수백 곱 웃돈 얹어 흔쾌히 지불한다.
— 「사육」 전문
늦은 밤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상갓집 근조 화환에 새겨진 화려한 글자들이 왠지 낯설다. 2년 전 아내를 암으로 잃고 둘째 아들네 얹혀살았다. 여든이 훌쩍 넘었지만 얼마 전까지 꽤 정정했었다. 그간 분신처럼 아끼던 집 판 돈을 반강제로 큰며느리한테 빼앗기고 엄동설한 내몰렸었다. 한 가닥 남은 그 명줄마저 갈취당하고 곡기를 끊었다 한다. 도대체 스무날을 링거 한번 꽂지 못한 채 물만 넘겼다니, 어디 막소금 찍지 않은 팍팍한 삶이 울대에 넘어가기라도 했을까.
국화꽃에 쌓인 영정 속에서 난생처음 막다른 자유를 누리고 있는,
부의금 통 누가 가져갈까 너 나 할 것 없이 졸린 눈 번갈아 지키고 있는
이 야밤의 풍경들
— 「내막」 전문
구제역 쓰나미 전국을 휩쓸고
무차별 생매장된 비명들이
꽁꽁 언 대지를 깨고 튀어나온다
몇 날 며칠 뜬눈으로 지새운 하느님.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기운
품 넉넉한 수의(壽衣) 한 벌.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들에게
마지막 옷 한 벌 입혀주신다
밤새
문상 온 산짐승들
방명록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고.
— 「폭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