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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986449
· 쪽수 : 148쪽
· 출판일 : 2025-08-2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5
제1부 그대에게 가는 다리 하나 그립다
생활 방식 12
반려 14
거리 조율 16
성형 18
당신의 비밀번호 20
작은 다리 22
24인치 텔레비전 24
시력 26
존재 28
정지 화면 30
조감도 32
가림막 34
감식 36
동자동에서 38
제2부 그대의 외로움이 진화한다
도시 산책 42
한정판 44
프리지어꽃을 들고 46
어떤 격려사 48
자세 교정 50
대형 마트 장바구니 52
광고문 54
목숨의 가격 56
자기 계발 앱 57
이모티콘 60
클릭 62
자동 저장 64
스마트폰 단식 66
가족 카톡방 68
제3부 세상은 아직 어머니들로 가득하다
가면극 72
홍대 거리 74
잉여 시간 76
폭설 경보 78
창문의 정서 80
배웅 82
비린내 84
편견 86
스테인리스 숟가락 88
마음 90
해몽 92
붉은 옹이 94
방화 96
제4부 말을 삼키기 좋은 장소가 있다
내일 100
초대 102
묵시록 104
풀 향기 106
파종기 108
겨울 숲 110
등산 일대기 112
하지 무렵 114
미물 116
가을 대화 117
탐사선 퍼서비어런스호 119
변이 바이러스 121
사랑의 멸종 123
곶자왈에서 125
자세 127
ㅣ해설ㅣ 김진경 129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력>
한때 속가슴에서 키우던 신앙생활이 있었다
이적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왼발을 내디뎌 물 위를 걷거나
믿음을 한데 모으면 몸이 공중 부양하여
새처럼 하늘에서 인간의 심정을 살피거나
아무에게나 목소리가 세 번만 닿으면
눈이 크게 열려 보이지 않는 것도 보거나
책상 앞이나 자동차 백미러에 걸어 두고
눈앞을 떠나지 못하게 한 말도 있었는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싹튼다
죽으려 하면 살 수 있다는 참 쉬운 말
그 말에서 우려내어 속가슴 물들인 말
아픔이 쌓일수록 웃음은 단단해진다
미움이 진할수록 사랑도 선명해진다
길을 잃어야 길을 찾는다
처음부터 남몰래 의심하기도 했다
신앙은 믿을 수 없어 신앙이지만
이제 신앙을 떼어내고 생활만 남았는데
이적은 아닐지라도 이변은 생겼다
내가 너무 잘 보이는 것이다
다시 속가슴 깊이 물들이는 말
내가 잘 보이니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단식>
간헐적 단식 3일째
내 체질에 적합한 16:8 단식법
저녁 8시부터 낮 12시까지 금식
검색창을 단단히 잠갔지만
오늘은 불안해서 전원마저 까맣게 끄고
소파에 누워 세상을 눈감는다
나를 찾는 메시지와 전화벨 소리의 환청
긴급 속보가 펄럭이고
텔레그램 페북이 저마다의 음성으로 간절하다
일어나 거실을 서성이지만
실은 스마트폰 주위를 군침 삼키며 맴돈다
해독 요법으로 한밤중에 시를 음미하는데
시 행간 사이에 시보다 더 맛있는
광고 문구에서 김이 물씬 솟고
가슴 살짝 드러낸 유튜버도 눈짓한다
오늘 밤은 어둠마저 단식해야겠다
나만 홀로 하얗게 남을 때까지
외면할수록 더 질기게 달라붙는
외로움이 나를 멀리 배웅할 때까지
<방화>
늦가을 무렵 어머니가 나를 버린 듯하여
가슴에 무서리가 자랄 때면
동생 데리고 밭일하는 어머니 품을
마당에서 멀리 그리워했다
한 줌 체온이라도 껴안고 싶어
부엌에서 어머니를 불피우다가 집을 태운 그날
방죽에 숨어 가슴 새카맣게 바라본 밤의 하늘
꽃잎 같은 불티들이 반짝였고
마지막 증거인 어머니가 사라진 지금
세상은 왜 아직 어머니들로 가득한지
한여름인데도 수족 냉증이 기승부려
만지는 것마다 겨울이 된다
햇볕이 살지 않는 골목에는 빙판이 자라고
사람들 앞가슴을 걸어 잠그는 된바람
덧셈이 되지 않는 나와 그대의 체온
또 어머니를 불피우고 싶었다
오늘 밤도 하늘엔 그날의 불티가 눈짓한다
방화의 유혹이 비상등처럼 번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