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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3296783
· 쪽수 : 336쪽
· 출판일 : 2025-01-24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딱딱한 껍질 속 연약한 과육 같은 너 《누가 사자의 방에 들어왔지?》
실체 없는 두려움이 점점 커져서 《블랙 독》
소심한 완벽주의자의 현실 적응기 《처음으로 밖에 나간 날》
내가 없다면 넌 거기 없는 거야 《복슬개와 할머니와 도둑고양이》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긴 하지만 《불안》
2부 노화와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찰나와 영원의 아슬아슬한 간극 《눈 깜짝할 사이》
엄마의 이중생활, 두 개의 초상화로 남아 《엄마의 초상화》
날 데리러 왔거든 아직 어려서 못 간다고 전해라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이 행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고팠건만 《사과나무 위의 죽음》
달걀 삶고 넥타이 매고 무지개를 향해 《여행 가는 날》
3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이야기와 추억은 우리 안에 있지 《유령이 된 할아버지》
겨울 가고 봄이 오면 내 생각을 해주렴 《오소리의 이별 선물》
환상의 섬에서 우리 함께 《할아버지의 섬》
바람과 구름과 햇살의 노래를 들어봐 《할머니가 남긴 선물》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리건의 여행》
4부 상실과 애도
창문을 닫을래요, 떠나지 말아요 《무릎딱지》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드넓은 초원에 청아한 선율로 남은 너 《수호의 하얀말》
희미해지는 너, 그러나 단단한 기억으로 여문 우리 《이젠 안녕》
나는 웃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엄마의 얼굴》
5부. 삶과 죽음의 여러 얼굴
그림과 글에 담는 인생 이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인생이란 고인 물이 아니란다 《내 이름은 자가주》
거짓말 같은 이별 《고 녀석 맛있겠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큰고니의 하늘》
고인을 보내드리는 일, 장례 《맑은 날》
6부. 긍정하기와 다시 살아가기
비옥한 땅이 폐허가 되었을지라도 《여우》
평온한 일상에서 거센 돌풍을 만났던 그대에게 《기억나요?》
다시 살아가도록 하는 한 마디 《엄마가 만들었어》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청소기에 갇힌 파리 한 마리》
과거를 받아들이고 오늘을 살기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나가는 글
저자소개
책속에서


웰다잉이란 본래 ‘다잉 웰’의 한국식 표현으로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용어부터 생소하고 무거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죽음’은 생명이 다하여 더 이상 육신이 살아있지 않음을 의미하고 ‘죽어감’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일컫는다. 비유하자면 붉게 타오르던 촛불이 시나브로 빛과 열기를 잃고 꺼지기까지의 연속된 시간을 말한다. 웰다잉은 이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지 말고 당당히 죽음을 맞이하자는 것, 최대한 깨어 있자는 의미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실천적 개념이기도 하다.
다만 웰다잉은 방대한 개념이기에 이를 혼자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개별 인간의 고유한 삶을 인정하고,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잘 나이 듦을 말하는 ‘웰에이징Well-aging’의 개념을 구분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의 상실과 비탄, 애도 후 다시 살아감의 과정을 이해하고, 자서전 쓰기와 장례문화 탐색까지 죽음 공부는 무척 다양하다. 마치 한 바구니 안에 담겨있지만 각각 다른 모양과 빛깔의 사과인 것처럼 여럿이 함께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죽음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새삼 놀라웠던 건 웰다잉이 말하는 노화, 죽음, 이별, 상실, 애도, 다시 살아감이라는 모든 주제가 이미 그림책 세계 안에 펼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그림책을 읽고 보고 들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던 것들. 그림책이야말로 이 묵직한 것들을 다루기에 적당한 손과 발이 되어줄 것 같았다. 그림책으로 우리 삶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는 무릎을 쳤다. 어쩌면 소중한 지인들의 느닷없고 가슴 아팠던 마지막을 그림책에 기대어 되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차례 죽음 가까이 다가섰다 저절로 멀어졌던 내 삶의 경험도.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를 낯설게 하여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것」 중에서 으뜸은 ‘죽음’이 아닐까? 누구나 죽음은 나와 상관없고 아주 멀리 있는 것,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만나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이라 여긴다. 내 방과 내 집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일이 일어날 리 만무하며, 더구나 내가 방문을 열어 죽음을 초대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하는 생각치곤 매우 확고하다.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간접경험을 하면서도 그렇다. 조부모님이나 친지의 죽음을 목도했고,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냈고, 때때로 지인이나 친지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면서도 그렇다. 언제든지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도, 초대하지 않은 이가 불쑥 찾아올 수 있는데도 그러하다. 설령 죽음이란 존재를 인식한다 해도 “다른 것도 아니고 죽음, 너만은 절대 내 방에 들어오지 말아줘.” 하는 간절한 심정이 된다. 우리가 쫄보여서 죽음을 떠올리기만 해도 온몸이 쪼그라들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지는 걸까? 왜 짐짓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내 일상과 공간은 늘 그대로 있어 줄 거라고 믿는 걸까? 아마도 우리는 고개 돌려 외면하고 죽음의 ‘ㅈ’자도 들먹이지 않으면 무사하리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 「딱딱한 껍질 속 연약한 과육 같은 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