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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성경의 이해
· ISBN : 9791193931059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4-08-14
책 소개
목차
서문 … 11
약어표 … 17
목차 … 19
프롤로그: 사담(私談), 서울에서 오스틴까지 … 25
1부 – 의례가 만든 공간 … 33
1. 공간 상상하기 … 35
고린도와 에베소 … 35
에클레시아 … 49
요약 … 62
2. 경계 구성하기 … 65
신전의 안과 밖 … 65
몸과 노예 … 77
요약 … 89
2부 – 의례의 재설정 … 91
3. 세례와 주의 만찬 … 93
의례 바라보기 … 93
세례 … 96
복음 선포 … 107
주의 만찬 … 113
요약 … 128
4.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 … 131
지식과 의례 … 131
범례 바울 … 140
의례가 창조하는 실재 … 147
요약 … 163
5. 은사와 젠더 … 167
영적 은사들 … 167
예언과 방언 … 181
공간과 여성 … 189
요약 … 208
3부 - 공간의 시간성 … 211
6. 그리스도 안 … 213
그리스도 안의 시간 … 213
건축하는 이들의 미래 … 226
요약 … 241
7. 단축된 시간 … 243
결혼과 독신 … 243
부름받은 그대로 … 253
요약 … 261
8. 종말과 부활 … 263
귀류법과 시간표 … 263
영적인 몸 … 276
요약 … 286
에필로그: 여담(餘談), 바울의 집 … 289
참고 문헌 … 297
성구 색인 … 313
저자소개
책속에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의 수신자를 어떤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고전 1:2). 그리고 “교회”라는 말과 동격으로 등장하는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사람들,” 곧 “성도로 부름을 받은 이들”이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로 부름받은 이들의 모임인 교회를 향해 편지를 보낸다. 고린도전서 첫머리에서 바울이 말하는 교회(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고린도라는 지역에 있는 신자들의 모임을 지칭하지, 물리적인 건물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너무 강하게 밀어 붙일 필요는 없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모임인 에클레시아가 또한 은유적 차원에서 하나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바울은 고린도의 신자들의 공동체를 가리켜 “신전”(성전)이라 부른다(고전 3:16). 이처럼 고린도전서 전체에서 공간의 이미지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1장
바울은 노예제가 마치 숨쉬는 공기처럼 존재하는 로마 세계에 살았다. 그는 에클레시아 밖에 있는 노예 제도 전체를 폐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봉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노예의 사회적 현실을 자신의 수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사 장치로 삼았다. 그리스도는 주님/주인(퀴리오스)이라 불리는 모든 이들보다 높은 참 주님/주인이시며, 노예든 자유인이든, 모두가 그 주님께 속해 있다. 이러한 신적 주종관계에 대한 선언은 에클레시아 밖에서든 안에서든,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타인의 몸을 대상화하고 수탈하는 이들을 향한 강력한 비판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예 개념의 신학적, 수사적 활용은 노예제가 전제하는 위계 관계의 이념을 강화하고 영속화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노예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분이 아니라, 새롭고 궁극적인 노예 주인으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고린도의 에클레시아 구성원들 모두는 한 주인에게서 다른 주인에게로 팔린 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노예, 그리스도의 사유 재산이다. 대안적 공간, 세상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신전인 에클레시아의 질서를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언어가 구성하는 실재를 의지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2장
의례는 아날로그 현실(분절 없이 연속선상에 존재)에 디지털 질서(오직 “예” 혹은 “아니오”, “0” 혹은 “1”로 존재)를 덧씌움으로써 현실의 모호함을 없앤다. 여기서 개인적인 경험을 조금 덧붙여 보고자 한다. 나는 한국에서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에 넘어와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목사 안수를 받지 않고 전도사 신분으로 오랜 시간을 한인교회들을 섬겼다. 사실 전도사는 엄밀히 말하면 안수받은 목사가 아니라 일반 교인이지만, 한국적 맥락에서는 교역자이다. 목회자이면서도 아닌 상태, 그 모호함이 지속될수록, 또한 학위과정이 계속 진행될수록, 나는 내가 목회자로 사는 것이 맞는지,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혼란을 겪곤 했다. 그러나 마침내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을 때 이 모호함이 종결되었다. 안수 후에도 여전히 연약함을 지니고 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실존적인 고민은 계속될지 몰라도, 안수라는 의례는 분명 그 전과 후의 삶을 이진법적으로 나누었다. (중략) 세례라는 의례는 고린도의 이교인들이 이 그리스도 그룹에 입회할 때, 그들의 아날로그 현실 위에 디지털적인 질서를 새겼다. 다시 말해, 세례는 일종의 “문지방”을 형성한 것이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교도는 여전히 이교적 환경 가운데 일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세례는 그 세례를 받은 이와 받지 않은 이, 공동체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이와 밖에 있는 이를 이진법적으로 구분한다. 그리스도의 세례가 생성한 공간은 당시 이교도에게 익숙했던 다른 제의적 공간보다 훨씬 더 배타적 일신론과 관련된 규범적 메시지가 소통되는 공간이었다. 세례를 받고 에클레시아 공간의 일부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겸할 수 없다(고전 10장). 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