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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91194216254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25-09-29
책 소개
_15편의 문학작품으로 본 허구 속의 진실, 진실 안에 담긴 삶의 의미
《소설이 내게 말해 준 것들》은 20년 넘게 150편가량의 영어책을 우리말로 옮겨 온 홍종락 번역가가 《카라마조 씨네 형제들》, 《호빗》, 《하우스키핑》, 《빙점》 등 15편의 문학작품에서 발견한 삶과 신앙에 대한 질문과 혜안을 펼쳐낸 신작이다. 전작 《악마의 눈이 보여 주는 것》에 이어 문학, 특히 소설 속에서 길어 올린 깊은 통찰과 신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매일 아침이면 집 한편에 마련된 책상으로 출근하여 번역 일을 시작한다. 눈이 침침해 오고 피곤함이 더해져 오늘은 아무것도 읽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생계형 독서가 아닌 ‘취미형 독서’가 주는 기쁨과 위로를 포기하지 못해 다시 읽기를 시작한다. 콩나물시루에서 물이 빠지듯이 무엇을 읽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다시 밥을 먹듯이 읽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정말 기억하고 싶고,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글로 남긴다. 이 책은 그러한 일상이 맺은 열매다.
저자는 소설에 특히 네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소설이 허구라고 해도 그 재료는 상당 부분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의 재구성이나 조합이다. 둘째, 좋은 소설은 사실이 아니라도 진실을, 진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셋째, 소설은 인간의 실상을 드러낸다. 넷째, 소설은 실존하는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소설은 비록 허구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은 현실의 경험과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나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시대의 공기를 재구성해 엮어 낸 것이 대부분이다. 회고록이나 전기 같은 실화 장르조차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강조, 생략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빚어내듯 소설은 진실을 향한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이러한 소설이 어떻게 인간의 가짜 욕망을 폭로하고, 그 모방성을 드러내며, 신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로 독자를 이끄는지를 적실히 보여 준다.
그렇다면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가 내 삶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을 때, 독자는 감동과 위로,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의 시선을 좇아 도스토옙스키, 톨킨, 메릴린 로빈슨, 미우라 아야코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엿듣고 그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삶이 조금이나마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나는 시대와 배경을 달리하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인간과 인생, 여러 가치와 선택, 하나님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고 배울 수 있었다.” _서문에서
목차
서문_ 소설이 밥 먹여 주진 않겠지만
01 파 한 뿌리 _《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02 알료사 VS. 스메르자코프 _《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03 대심문관의 길 _《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04 운이 좋다는 것에 관하여 _《호빗》
05 집보다 중요한 것 _《하우스키핑》
06 신앙인 가정교육의 실패에 관하여 _《홈》
07 신뢰로 나아가는 길 _《라일라》
08 두려움, 복수, 신앙의 증거 _《해리 포터》
09 맹인과 함께한 저녁 _《대성당》
10 피난처 이용법 _《주는 나의 피난처》
11 요코를 향한 응원 _《빙점》
12 누군가가 있다면 _《속 빙점》
13 회고록, 프리퀄, 초대장 _《빛이 드리운 자리》
14 생긴 대로 산다는 것 _《제인 에어》
15 우상과 선물 _《제인 에어》
16 영문학의 자리 _《스토너》
17 허기와 탐식이 말해 주는 것 _《사랑이 한 일》
18 빨치산 아버지의 초상 _《아버지의 해방일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알료사를 붙들어 세운 파 한 뿌리 은유는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일단, 어깨에 힘을 좀 빼게 해 준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벗게 한다. 동시에 이 은유 앞에서 나는 이렇게 바라게 된다. 내 인생도, 내가 하는 번역도, 이 글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고작’ 파 한 뿌리 건네는 일이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그분이 맡기신 것일 수 있겠고 가냘픈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이 소설은 우리가 불안정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떠올려 준다. 떠돌이 루스가 펼쳐 놓는 단상과 추억, 상상은 기독교 신자가 대부분 그대로 받을 만한 내용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선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과연 아무 의미도 없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자 집과 가족을 떠나 새엄마를 찾아 간 루실, 서로 함께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이모와 루스. 양측 모두 귀중한 것을 얻고 지키고자 커다란 것을 포기한다. 둘 다 그 만만치 않은 선택을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었다. 《하우스키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얻기 위해 혹은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내게 그렇게 묻고 있다.
믿음이 ‘자, 이런 거다’ 하며 내놓을 수 있는, 모두의 눈에 보이는 명명백백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 자신이 신앙의 회의를 겪을 때 간절했던 생각이자, 지금도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아쉬움이다. 초자연계가 정말 자연계를 떠받치고 있고 자연계 안에 의미를 부여하는 ‘진정한 현실’이라면, 그 사실이 왜 좀 더 분명하지 않을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가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증거로는 기적과 신실한 증인의 존재, 논리적 증명을 떠올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주로 관심을 갖고 찾기를 바랐던 것은 반박 불가한 논리적 증명이었다. 그런 증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