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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833891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6-03-10
책 소개
네 명의 스토리텔러가 그려낸
또 다른 삶, 또 다른 세계, 또 다른 나
소설과 영화, 뮤지컬과 연극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새봄, 박현진, 박현주, 이윤정 네 명의 작가들이 ‘또 다른 삶’을 키워드로 예리한 상상력과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발휘한 픽션 앤솔러지 《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가 멜라이트에서 출간되었다.
타인의 목에 감긴 뱀을 보게 된 뮤지컬 배우, 과거의 상처와 진실을 구술하는 60대 여성, SNS로 평행세계의 자신과 만나게 된 대학생, 그리고 자살 직전 산타 마을로 납치된 청년의 이야기를 판타지,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등 다채로운 장르적인 설정으로 그려낸 이 작품들은 현실의 균열과 오류 너머 새로운 세계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현실의 틈새를 파고드는 서사적 균열
그것이 만들어낸 새로운 우주
“믿거나 미치거나 둘 중 하나야.”
박새봄 작가의 〈뭘 좀 보게 된 홍단비〉에서 주인공 홍단비는 주변 사람들과 행인들 목에 커다란 뱀이 칭칭 감겨 있는 풍경을 보게 되며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환영한다”고 말해주는 진상아와 기괴한 노인 고세찌를 통해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 믿기로 한다. 흔히 정상성이라고 이야기하는 타인의 잣대가 아닌 자기 감각을 믿고 또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쾌하면서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런데… 그랬으면 네가 나처럼 살고 있었을까?”
박현진 작가의 〈더블 캐스팅〉은,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는 생애 구술사 인터뷰 형식을 빌려 김경자라는 60대 여성의 과거와 현실, 이면의 결핍과 엇갈린 운명을 추적하는 심리 미스터리이다. 분절되고 흩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며 가혹한 삶에 고통스럽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자와 그의 친구 돈희의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만나서 반가워. 또 다른 세계의 나.”
박현주 작가의 〈평행선 서점의 방명록 - 1. 하루 전의 세계〉는 미스터리와 평행세계 설정을 결합한 소설이다. 우연히 ‘평행선 서점’을 매개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현수의 SNS 계정을 발견한 주인공 수현은 심지어 그 둘의 시간이 하루 차이로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세계가 충돌하고 연결되는 과정이 다층적이면서 정교하게 그려지며 ‘서점 주인’ 유운성을 비롯한 팀 에이버스의 이야기로의 확장이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생활 나쁘지 않다. 죽기 전의 그 어떤 날들보다.”
이윤정 작가의 〈전지적 루돌프 시점〉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 청년 현재가 삼도천을 건너기 전 ‘납치’되어 ‘산타파파 물류센터’ 선물 배정팀에서 일하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의 블랙 코미디이다. 현실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주인공이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제는 누군가가 절실하게 원하는 선물을 보내주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반전의 결말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또 다른 삶으로 이끄는 구원과 연대의 메시지
《어나더 라이프 : 글리치》의 네 편의 소설들은 현실의 틈새를 파고든 오류와 어긋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우주를 보여준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환각이나 망상으로 보일지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들이 실현되는 우주가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주인공들이 선택한 또 다른 삶이 되는 것이다. 작가들이 구축한 장르적 설정들은 단순히 기발한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후회와 상실로 점철된 현실을 희망과 구원의 세계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 작품 속 조력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뭘 좀 보게 된 홍단비〉의 진상아와 고세찌, 〈더블 캐스팅〉의 수진, 〈평행선 서점의 방명록 - 1. 하루 전의 세계〉의 팀 에이버스, 〈전지적 루돌프 시점〉의 로잘린 등은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지지를 보내며 연대하고 있다. 결국 이 네 편의 이야기는 현실의 균열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를 통해 대면하는 또 다른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환대하라고 권유한다.
목차
뭘 좀 보게 된 홍단비 | 박새봄
작가노트 _ 다른 세상을 믿을 능력
더블 캐스팅 | 박현진
작가노트 _ 떨어진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
평행선 서점의 방명록 — 1. 하루 전의 세계 | 박현주
작가노트 _ 우리의 잃어버린 기회가 실현되는 우주
전지적 루돌프 시점 | 이윤정
작가노트 _ 삼도천과 산타 마을 사이에서
책속에서
홍단비는 이런 사람이었다. 대뜸 자신의 비극에 취하기 어려운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늘 침착하게 최선을 다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방도를 찾는 사람.
그리고 오늘 아침,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끝낸 다음,
마침내 자기 집 거실 창의 두툼한 암막 커튼을 홱 열어젖혔다.
그리고 잠시 후, 깊은 탄식과 함께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
보인다. 여전히, 보여.
저 빌어먹을 뱀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게 보인다.
온갖 사람들의 목덜미에 칭칭 감겨 꿈틀대는 커다란 뱀들.
절대로 현실일 리 없는 환각.
의심할 바 없이, 나는 결국 미쳐버렸구나.
내 엄마처럼.
- 박새봄, 〈뭘 좀 보게 된 홍단비〉 중에서
“내 이야기를 남이 듣고 뭐라고 쓸지 그게 참 궁금해요.”
“이 책은 경자 님이 메인 작가고 저는 보조 작가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떤 땐 제가 독자나 시청자가 될 수도 있고요. 저는 보고 들은 걸 가지고 잘 써보겠습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 달 남짓 수진은 경자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 인터뷰를 했다. 만나면 보통 두 시간에서 길게는 네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다. 경자가 생생하게 재연해주는 작은 에피소드부터 어렵게 털어놓는 강렬한 사건까지 그 모든 것이 녹음 파일로 남았다. 여러 시간대를 오가며 경자는 40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그리기도 했고,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들을 끄집어내려 애쓰는 얼굴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녹음 파일에는 웃음과 눈물, 조용한 침묵과 회한이 고스란히 쌓여갔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수진은 의도대로 반응하는 관객처럼 경자의 목소리와 표정에 깊이 빠져들어갔다.
- 박현진, 〈더블 캐스팅〉 중에서
“그러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은 거예요? 이 사람은 저보다 하루 앞서서 똑같은 일을 겪는다는 거예요?”
“글쎄요, 보이기는 그렇습니다.”
이 정체 모를 도플갱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수현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유사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세계에서는 늘 하루 전의 날짜에서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루 전의 세계.
점점 이 일은 수현의 생각보다 복잡해지고 있었다. 수현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었지만 이건 이 세계의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죠? 혹시 무슨 시간여행 같은 건가요?”
- 박현주, 〈평행선 서점의 방명록 — 1. 하루 전의 세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