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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선

한국단편소설선

김동인, 김유정, 계용묵, 나도향, 이상, 이태준, 이효석, 전영택, 채만식, 최명익, 최서해, 현진건 (지은이), 오양호 (엮은이)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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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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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한국단편소설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1025231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6-16

책 소개

한국 대표 작가 12명의 단편소설 16편을 수록했다. 이 책에 실린 작가와 작품은 요동치던 시대의 제일 앞자리에 서 있던 작품들로, 한 시대의 인간과 역사가 압축되어 있으며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통찰하고 형상화하고 있다.

목차

배따라기 | 김동인
감자 | 김동인
빈처 | 현진건
B 사감과 러브레터 | 현진건
물레방아 | 나도향
화수분 | 전영택
탈출기 | 최서해
홍염 | 최서해
레디메이드 인생 | 채만식
봄봄 | 김유정
동백꽃 | 김유정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백치 아다다 | 계용묵
날개 | 이상
장삼이사 | 최명익
달밤 | 이태준

작품 해설

저자소개

계용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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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 「광염 소나타」, 1932년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을 발표했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과 단편 「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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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낙비>와 <노다지>가 각각 1등과 입선으로 당선,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제목은 《동백꽃》. 죽기 열하루 전, 번역으로 “돈 100원을 만들어볼 작정”을 한 유정은 안회남에게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탐정소설 두어 권을 보내줄 것을 편지로 요청한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며. “책상 위에는 ‘겸허(謙虛)’라는 두 글자”를 커다랗게 써 붙여놓은 채. 스물아홉의 피 끓는 삶에의 몸부림과 죽음에 대한 겸허한 자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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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향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2년 서울 출생. 본명 경손(慶孫), 호 도향(稻香), 필명 빈(彬)을 사용했다.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경성의전(京城醫專)에 다니다가 도일한 후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단편 「추억」을 「시민공론」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 이상화, 현진건,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파라는 낭만파를 이루었다. 이후 홍사용, 박종화 등과 문예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젊은이의 시절』등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17원 50전』 『행랑 자식』을 『개벽(開闢)』에, 『여이발사(女理髮師)』를 『백조』에 발표하였고, 1925년에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를 발표함으로써 민중들의 슬프고 비참한 삶에 촛점을 맞춘 작품을 주로 선보이다가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애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은 물론 주관적인 애상과 감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적 경향을 보여 주는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세계를 보여주는 완숙한 경지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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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0년 9월 2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명학교와 동광학교·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30년 소설 「12월 12일」의 발표를 시작으로 이후 일문시 「이상한 가역반응」·「조감도」 등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창작에 나서게 된다. 1933년 각혈로 배천온천에 요양을 가서 금홍을 만났으며, 서울에 돌아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녀와의 삶을 바탕으로 「지주회시」·「날개」·「봉별기」를 썼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발표하였으나 독자들의 거센 반발로 15편 연재로 그만두게 된다. 1935년에는 성천을 기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산촌여정」과 「권태」를 내놓게 된다. 1936년에 『시와 소설』을 편집하였고, 「날개」를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으며, 「위독」·「동해」·「종생기」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0월에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실화」·「동경」 등을 창작하였다. 1937년 2월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었으며,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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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제강점기 「오몽녀」, 「아무일도 없소」, 「돌다리」 등을 저술한 소설가 아버지 이문교는 개화파 지식인으로서 함경남도 덕원감리서(德源監理署)에 근무한 지방관원이었는데, 당시 한말의 개혁파의 운동에 가담하였던 듯 수구파에 밀려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망명하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이태준은 어려서부터 어렵게 수학하였다. 1920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그 학교의 교원이었던 이병기(李秉岐)의 지도를 받아 고전문학의 교양을 쌓았다. 그런데 학교의 불합리한 운영에 불만을 품고 동맹휴학을 주도한 결과 퇴교를 당하였다. 192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조오치대학[上智大學] 문과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9년에 개벽사(開闢社) 기자로 일하였고,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3년 친목단체인 구인회(九人會)를 이효석(李孝石)·김기림(金起林)·정지용(鄭芝溶)·유치진(柳致眞) 등과 결성하였다. 이어 순수문예지 『문장(文章)』(1939.2∼1941.4.)을 주재하여 문제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역량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여 문단에 크게 기여하였다.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1925)를 『시대일보(時代日報)』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또, 「아무일도 없소」(東光, 1931.7.)·「불우선생(不遇先生)」(三千里, 1932.4.)·「꽃나무는 심어놓고」(新東亞, 1933.3.)·「달밤」(中央, 1933.11.)·「손거부(孫巨富)」(新東亞, 1935.11.)·「가마귀」(朝光, 1936.1.)·「복덕방(福德房)」(朝光, 1937.3.)·「패강냉(浿江冷)」(三千里文學, 1938.1.)·「농군(農軍)」(文章, 1939.7.)·「밤길」(文章, 1940·5·6·7합병호)·「무연(無緣)」(春秋, 1942.6.)·「돌다리」(國民文學, 1943.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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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 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 「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 」, 「들 」 등 자 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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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백릉이며,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으며 1914년 임피보통학교(臨陂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재학중에 집안 어른들의 권고로 결혼했으나 행복하지 못했다.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부속 제1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하지만 이듬해 공부를 중단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1년여 만에 그만둔다. 1924년 단편 〈세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그 뒤 〈산적〉을 비롯해 다수의 소설과 희곡 작품을 발표하지만 별반 주목을 끌지 못했다. 1932년 〈부촌〉, 〈농민의회계〉, 〈화물자동차〉 등 동반자적인 경향의 작품을, 1933년 〈인형의 집을 나와서〉, 1934년 〈레디메이드 인생〉 등 풍자적인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힌다. 1936년에는 〈명일〉과 〈쑥국새〉, 〈순공있는 일요일〉, 〈사호일단〉 등을, 1938년에는 〈탁류〉와 〈금의 열정〉 등의 일제강점기 세태를 풍자한 작품을 발표한다. 특히 장편 소설 〈태평천하〉와 〈탁류〉는 사회의식과 세태 풍자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1940년에 〈치안속의 풍속〉, 〈냉동어〉 등의 단편 소설을 발표한 그는 1945년 고향으로 내려가 광복 후에 〈민족의 죄인〉 등을 발표하지만 1950년에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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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3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6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고 3·1운동 무렵 항일 시위와 관련해 학업을 중단했다. 순문예 동인지 《백치》를 발간했고. 8·15 직후 자유주의 계열 단체였던 평양문화예술협회 회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비 오는 길〉 〈심문〉 〈장삼이사〉 〈무성격자〉 〈역설〉 〈봄과 신작로〉 등의 단편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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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 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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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조선일보사에 입사, 같은 해 11월 《개벽》에 첫 작품인 「야생화」를 발표하지만 혹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출발했다. 그러나 1921년 1월 《개벽》에 「빈처」를 발표하면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발돋움했다. ‘백조 동인’을 거쳐 ‘파스큘라’와 ‘카프’로 이어지는 현진건의 문학 이력은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으며 김동인과 더불어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술 권하는 사회」 「할머니의 죽음」 「B사감과 러브레터」 「사립정신병원장」 등의 단편과 《적도》 《무영탑》등의 장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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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4년 평양성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한문을 익혔으며 11세 때부터 보동학교, 대성학교에서 수학했다. 19세 때부터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공부하여 고등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19년, 26세 때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발간했으며, 동경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창조」를 중심으로 하여 '혜선의 사'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단편 및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화수분'은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1927년 목사가 되어 각종 목회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 교수와 「기독신문」의 주간을 지냈다. 이후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 「한국복음신문」등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종교적 색채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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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론가이자 수필가다. 경상북도 칠곡 동명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조동일 교수의 지도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학교와 인천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정지용기념사업회 회장,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대산재단의 지원을 받아 《정지용 시선》을 도쿄에서 출판하고 정지용 시비를 도시샤대학교의 윤동주 시비 옆에 세웠다. 평론집으로 《문학의 논리와 전환사회》, 《한국 현대소설의 서사담론》, 《신세대 문학과 소설의 현장》이 있고, 연구서로 《한국 문학과 간도》, 《일제강점기 만주조선인 문학연구》, 《백석 평전》, 《만주이민문학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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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엉기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나는 봄 향기에 취하여서 한참 구름을 따라 눈을 굴리다가, 눈을 장림으로 향하였다.
장림의 그 푸른빛. 꽤 자란 밀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그 장림, 그 푸른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가 있었다. (〈배따라기〉)


그는 이상하게 놀라지도 않고 천연히 물었다.
“너! 어디캐 여게 완?”
아우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려 하던 그는 화닥닥 깨면서 또 말하였다. (〈배따라기〉)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여태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것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은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 할 일도 아니었었다. 게다가, 일 안 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 가진 좋은 일은, 이것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그뿐이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부터는, 그의 얼굴에, 조금씩 분도 발리게 되었다.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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