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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5150441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5-03-24
책 소개
목차
제1장 꽃이야기
제2장 발이야기
제3장 달항아리 이야기
제4장 나눔 이야기
제5장 가장 오래 남는 이야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이 책의 글들은 쉽고 단순하고 다감하다. 그러나 그런 단순함과 부드러움은 복잡하고 깊은 사유를 거쳐 비로소 몸으로 체화되었을 때 탄식처럼 터져나온 말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이 에세이의 큰 덕목이 있는데 바로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다.
……늘 소외 받고 일그러진 내 발처럼 굳은살이 박인 어머니의 작고 길쭉한 발을 씻어줄 때, 그 느낌이 남달랐다. 그것은 혈육을 향한 사랑이기 이전에 고단한 삶을 견디어 온 내 자신과의 접촉이고, 개별 인간과의 따듯한 교감이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어머니의 사랑이 공허하지 않고 진정성이 있는 건 그런 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겨울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강건하게 박고 온몸을 흔들며 수액을 빨아올리듯 자식사랑을 위한 노동을 마다않던 저 거칠고 작아진 엄마의 발.
- ‘세 여자의 길쭉한 발을 씻어주며’중에서
내가 추억 속에서 밝고 깨끗한 이미지를 찾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개 육탈된 흰 뼈처럼 긴 삶을 지나 온 것들이다. 선과 악, 미추가 뒤섞인 현실을 탁한 물로 비유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핀 연꽃 같은 존재다. 다만 치열한 내부 체험을 거치지 않고 입술 위에서 급조된 진, 선, 미를 경계할 뿐이다.
- ‘누나의 브래지어’중에서
계절적으로만 봤을 때 5월이 황홀한 꿈의 세계와 비슷하다면 유월은 고단한 현실 세계와 닮아 있다. 그렇기에 5월 나뭇잎에 쏟아지던 찬사 뒤에 따르는 맹랑한 무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유월의 나뭇잎은 찬란한 5월 나뭇잎의 그늘과 같은 존재이고, 그러기에 우리는 간혹 사연 많은 여인이 숨기고 싶은 어떤 이력처럼 기억에서 지우기까지 한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초록빛으로 익어가는 5월이 지나면 나는 습관처럼 계절을 잊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다른 시선으로 계절을 보았다. 그런 무관심 속에서 홀로 제 몸을 익히는 유월 나뭇잎의 자고한 자태라니! 그에 따른 감흥이 의외로 깊었다. 눈부신 봄빛에 감기던 눈동자 속보다는 심장 깊숙이, 그리고, 묵직이 내려앉는 경건한 감동이었고, 그런 감동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 ‘유월 예찬’중에서
그러나 거듭거듭 내 탄식을 이끌어 낸 것은 백자 호가 지닌 색감이었다. 그건 색이 아니라 하나의 명징한 빛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 모든 원색들이 모여 있다 긴 세월 동안 하나하나 빠져나가 최후에 남은 흰빛줄기 몇 가닥이 다시 내부를 향해 단단히 뭉친 듯한 순백의 빛. 그렇기에 그 백자 호엔 지상의 무엇도 담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담아서는 절대로 안 될 것 같았다. 저토록 아름답고 오묘한 순백의 색을 빚어내기까지 수백 번 좌절감을 맛보았을 도공의 혼이 이미 그 안에 차 있는 것 같기에 말이다. 그 도공은 아마도 비워두기 위한 그릇을 만든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고, 그 진가를 알아본 소장자 역시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게 틀림없으리라.
-‘희원에서 부르는 석상의 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