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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97091902
· 쪽수 : 592쪽
· 출판일 : 2020-07-15
책 소개
목차
0. 서언(요지)
1. 하늘의 기억 / 하늘 아래 첫 문명을 연 사람들
- 우리는 누구인가
2. 땅의 눈물 / 강물을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 어떻게 살아왔는가
3. 몸의 언어 / 혁명은 사랑은 품고
-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가
4. 빛의 나라 / 다 함께 흥겨운 세상
- 내일 우리의 모습은?
에필로그 : 질문의 형식과 답의 내용
저자소개
책속에서
1. 문명과 역사에 대한 담론적 접근
"그럼에도 인간 선의가 이긴다는 증명을 우리는 문명이라 말한다."
-이 담론의 첫 장 첫 구절
"담론에 있어 시간은 변혁의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수레와 같다. 이런 시간은 흘러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 정신이 응결하여 물화되는 순간을 맞이하면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며 새 세상을 열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는 성경의 첫 구절은 고도의 담론어다. 거기엔 태초라는 시간과 신의 의지라는 말이 있고, 그를 시작으로 어마어마한 기독교 문명이 이 세상에 열렸기 때문이다.
아무르 자주담론 역시 이런 시간의 축적이 한 매듭으로 드러난 언술의 집합이다. 원고지 2,500장에 이르는 이 담론을 성경의 첫마디처럼 한 구절로 표현한다면 ‘다 함께 흥겨운 세상’ 을 여는 일이다. 그러기에 여기엔 우리 한겨레가 영속한 일만 년의 시간이 녹아있고, 핏줄을 타고 수직으로 흘러온 그 시간과 만난 한반도라는 공간과 이곳에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가 부분적으론 흥겨울지 모르지만 다 함께는 아니라는 현실진단과, 이 아무르 자주담론이 그런 불균형을 극복하고 모두가 흥겨운 세상을 여는데 나침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다.
필자는 그 믿음의 논거를 인간 욕망의 총량과 인간 의지의 총량이 다르며, 그 차이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를 통해 역사를 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 욕망과 인간 의지가 공히 자신을 주장하는 내재적 힘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기에 언 듯 같아 보이지만 세밀히 궁구하면 차이가 난다는 것에 근거한다. 인간 욕망의 주된 발현이 개별적 범주에 머무는 것이 비해, 우리 의지는 선험적 문명과도 깊이 연계되어 있어 그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성을 확보한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이처럼 인간 욕망과 인간 의지의 미세한 차이가 우리 역사를 너절한 욕망의 집합에서 건져내어 좀 더 진보적인 역사로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믿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선험적 선의라고 말한다.
- 저자 서문에서
2. 새로운 자주 담론을 위한 지식과 정보의 재구성
우리가 미국만 극복하면 자주가 주어질까? 참으로 그런가?
그러면 우리 겨레 모두가 차별 없는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아직도 우리에겐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자주의 그 길을 열정만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미래의 꿈은 동맥을 타고 흐르는 붉은 핏줄기처럼 뜨겁게 말해도 실천을 담보해야 하는 담론의 구성은 푸른 정맥처럼 차가워야합니다.
미국은 북한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우리 길을 가기 위해 분명히 넘어야 할 걸림돌입니다. 그들과 있었던 과거의 은원恩怨이 어떠하든 지금 미국은 소련이나 중국처럼 자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 한반도 분단의 고착화를 바라는 타국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심장의 박동수를 줄이며 그렇게 되묻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려는 진정한 자주의 길이 한두 외세의 극복만으로 가기 힘들다는 엄정한 자각 때문입니다. 그건 우리 역사를 조금만 더듬어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일제 식민지 이전에도 우리 겨레는 지금 사대주의자들이 미국을 천조국이라 말하듯, 자신을 소중화라고 한없이 낮추며 중국을 상전으로 모셨던 역사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 같은 질문은 수백 년을 이어 온 우리 겨레의 피동성 문제에 대해 냉철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반어적 선언입니다.
5년 전, 이제 담론을 쓰기로 결심했으니 한 반년이면 책으로 만날 거라는 예상은 이 문제로 인해 빗나갔습니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1980년 대학 1학년 초 교정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어느 날, ‘왜 우리 민족에겐 우리만의 이데올로기가 없을까?’ 하는 막연한 질문으로 시작된 이 과제가 40여 년의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난 역시 역부족인가 하는 절망적 자각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 프롤로그 : 새로운 시대의 중심에너지를 위해
3. 역사담론을 통한 한 민족의 위대한 위상 되찾기
"그러자 길이 보였습니다. 진도를 가로막았던 한겨레의 피동성 문제, 그 문제를 앞서서 치열하게 다룬 역사가와 가슴으로 만난 것입니다. 『조선상고사』를 쓴 신채호 선생입니다. 그는 책에서 ‘조선인들은 불교가 전해지면 조선의 불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석가의 조선을 만들고, 유교가 전해지면 결국 공자의 나라가 된다’ 며 우리 민족의 줏대 없음을 한탄했는데, 이 말이 새삼스럽게 천둥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이는 구한말 개항 이후 조선이 점점 서양의 조선이 되는 것에 대한 자책이자 강력한 경고였는데 백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크게 들려왔던 것입니다.
물론 저는 이 책을 젊어서 읽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이 책이 학생운동의 입문서처럼 읽혔던 까닭에 새삼스러운 책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담론을 생각하며 다시 집어 든 이 책은 달랐습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망명객의 고단한 몸으로 만주 심양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던 신채호선생의 발자국이 선명히 보이는 것 같은 공명이 일면서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히는 듯했습니다.
- 프롤로그 : 다 함께 흥겨운 세상을 향하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