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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유럽사 > 독일/오스트리아사
· ISBN : 9791195552313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16-11-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7
제1장 반골의 탄생 21
제2장 보름스 국회 49
제3장 알텐슈타인에서의 납치작전 69
제4장 루터의 밧모 섬 81
제5장 일개 수도사 대 높으신 왕 101
제6장 불온한 사상, 파괴의 불길 123
제7장 주도권 다툼 137
제8장 악마와의 투쟁 147
제9장 새로운 피조물 159
제10장 비밀 사명 173
제11장 10주 만에 번역한 신약 27권 185
제12장 로마의 상황 201
제13장 오직 믿음으로 217
제14장 광신의 물결 225
제15장 해방 237
제16장 통합 251
제17장 루터의 성서 세상에 나오다 263
맺음말 281
저자 후기 301
참고문헌 311
종교개혁 깊이읽기|루터의 모든 책을 불사를 수는 없었다 317
옮긴이의 말 역사|속 루터의 인간적 매력을 만나다 327
책속에서
이 작품은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일생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중요한 시기를 다룬 이야기다. 루터가 보름스 국회에서 이단 혐의에 대해 소명한 후 1521년 4월에서 1522년 3월까지 1년여 동안 바르트부르크 성에 홀로 유폐되어 있던 때다. 이미 몇 달 전 로마 교황청은 루터를 이단이라고 공식 선언했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국회가 끝난 후 소집한 비밀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이른바 보름스 칙령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 칙령을 통해 세속 세계에서 가장 심한 공격을 퍼붓고 법의 보호를 박탈함으로써 루터를 이중으로 위험에 빠뜨렸다. 그 후 루터는 발각되면 체포되어 화형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져 11개월 동안 종적을 감추었다.
이 위험한 시기 동안 루터의 목숨과 마찬가지로 그의 개혁운동 역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개혁운동의 중심지인 비텐베르크에는 몇 년 전 루터의 주장에 동조했다가 바티칸으로부터 함께 파문당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루터가 바르트부르크에 발이 묶여 있는 사이 점점 분별력을 잃고 있었다. 루터가 죽기라도 한다면 개혁운동은 내분으로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루터와 개혁운동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구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 전환기에 어쩌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바르트부르크에서 심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홀로 모든 것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서 위대한 개혁가 루터는 정신적으로 온전히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인 사제로서의 서원, 금욕, 성, 사제의 결혼, 천국과 지옥, 순종과 불순종, 교회의 권위, 각 개인의 신앙 증거 등의 문제와 씨름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했다. 교황의 인도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교를 구상했고, 새로운 성서 교리를 만들었으며, 성서를 다시 정경화했다. 또 그사이 미약한 개혁운동이 살아서 약동하며 외부의 거센 위협과 내적 불화를 딛고 안정될 수 있도록 멀리서나마 애썼다. 그리고 이 시련의 시기를 기적적으로 잘 극복했을 뿐 아니라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숨어 지내는 동안 루터는 편지?강론집?소논문?번역물 등 실로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육체적 고통, 불길한 운명에 대한 예감, 지옥과 사탄에 대한 환영, 죄의식에 시달리는 악몽으로 신산한 가운데에서도 이 모든 저작들을 완성해냈다. 외딴 성에 유폐되어 있다 보니 참고할 만한 책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저항을 지속적인 대안 종교로 변화시켰듯이 독일어의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루터는 열정과 탁월함,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개혁운동을 지켜낼 수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는 분리된 별도의 교리를 확립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가 태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룬 성취 덕분에 루터는 유럽 교계 변방의 평수도사라는 지위에서 일약 그리스도교 사상의 정점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바르트부르크로 쫓기듯 숨어들었다가 박해자들에 맞서 마침내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힘과 명성을 갖추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루터의 생애에 해당하는 1483년에서 1546년까지의 시기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유럽 대부분을 다스렸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 메디치가 출신 교황들인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레이만 대제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즐비한 시대였다. 카를 5세와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를 두고 각축을 벌였고, 1527년에는 독일에서 온 프로테스탄트 군대가 로마를 약탈했으며, 1529년과 1532년에는 술레이만 대제가 빈을 포위공격하며 라인 강을 따라 모든 곳을 이슬람의 영토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또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발견했고,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길을 열었으며, 미켈란젤로?다 빈치?라파엘로?뒤러?마키아벨리 등의 선각자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루터는 생전에 그리스도교계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강력하고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교황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1500년에 대희년을 화려하게 거행한 후 1503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율리우스 2세는 중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와 베네치아의 지배력을 저지하려고 애썼고, 볼로냐를 비롯한 중요한 교황령을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전사 교황’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여러 공헌 가운데 후세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교황들의 성당인 낡은 베드로 대성전을 허물고 기념비적인 새 건물을 짓도록 명령한 일이었다. 도나토 브라만테가 디자인한 베드로 대성전은 ‘지상에서는 모든 교회들에 우선하며 그리스도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건립 목적이었다.
루터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바로 이 거대한 프로젝트와 바티칸이 그 비용을 지불하려고 고안해낸 방안이었다.
- 머리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