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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570416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16-08-10
책 소개
목차
박정훈 1
김미영 1
박정훈 2
김미영 2
박정훈 3
김미영 3
박정훈 4
김미영 4
박정훈 5
김미영 5
박정훈 6
김미영 6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온통 푸른색 천지의 거리에 사랑하는 그녀가 보였다. 그녀의 향기, 그녀의 웃음, 그녀의 몸짓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내 영혼은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내 영혼도 그녀를 보았으니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은 것이었다. 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맞잡는 순간 사랑에 빠진 영혼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내 몸 또한 그녀를 향해 달려갈 것 같았다. 나는 한껏 들떠 있는 영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내 영혼을 뒤로하고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녹음실로 내려갔다. - 박정훈 1 중에서
창문 안의 어둠 속으로 나를 미워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차라리 나를 증오하라고 애원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자신을 증오하는 고통도 나한테 떠넘기라고 구걸하는 내 속마음이 보였다.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사랑을 고백한 나를 경멸하는 내 자신이 보였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나는 오늘의 첫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는 나를 그녀 곁으로 몰아갔다. 그녀는 내 자아와 영혼이 사랑한 마지막 여자였다. 내 자아와 영혼이라는 말, 내 육신에 존재하는 두 개의 본질을 거론해야 하는 이유는, 나는 그녀의 육체를 탐한 것도, 함께 있는 걸 원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만드는 추억도, 키스도, 섹스도, 그 외에 인간 ― 내 자아와 영혼 ― 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도 상상하지 않았다. 단지 내 마음이 그녀를 향해 흐른 것뿐이다. 사랑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극적이지도 않다. 사랑은 일상의 한순간에 나도 모르게 싹튼다. 싹이 튼 뒤에는 몸부림치며 밀어내도, 원치 않아도, 철벽으로 울타리를 쳐도, 사랑의 떡잎은 쑥쑥 자라서 가지를 뻗고 씨방이 자라나 사랑의 열매가 터진다. 그다음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거대해지는 사랑의 숲에 파묻혀 고통에 시달리는 것뿐이다. 사랑은 그렇게 타인이 내 가슴으로 들어오는 순간 결정된다. 비리고 안타까운 사랑일지라도 사랑은 그렇게 찾아온다. - 박정훈 1 중에서
해안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조수 웅덩이로 향했다. 숨이 막히게 더운 날도, 뇌우가 치는 새벽에도, 보슬비가 내리는 저녁에도, 하얀 눈이 쏟아지는 한겨울에도 나는 조수 웅덩이에서 살았다.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생명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물고기뿐만 아니라 문어, 거북, 새우, 말미잘, 성게, 게, 해초, 해조, 고둥, 소라도 있다. 썰물 때가 되면 조수 웅덩이에 있던 온갖 생명은 바다로 돌아가고, 밀물 때가 되면 낯선 생명들이 조수 웅덩이로 들어온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이름 모를 물고기, 거북, 문어에게 까마득한 거리에 있다는 바다 이야기를 들으며 미지의 세상을 여행했다. 보석이 깔린 초호, 작살을 쥐고 산호 사이의 물고기를 사냥하는 검은 인간, 바닷속에 있다는, 뜨거운 물방울을 내뿜는 굴뚝, 수백 척의 어선으로 뒤덮인 연둣빛의 해수면, 하늘로 이어지는 물길, 수중 동굴에서 자라는 보랏빛 나무, 섬보다 큰 물고기들의 여정에 동행하는 외로운 거북,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는 심해어의 낙원, 심해에 있는 성채, 인어의 동상, 가라앉은 범선 그리고 심해에 사는 사람들…… 신비한 이야기들…… 단 하루도 안 되는 짧은 삶이지만 온갖 생명은 파도가 들어오고 나가는 그 좁은 조수 웅덩이에서 두려움 없이 둥지를 튼다. 파도가 곧 자신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좁지만 삶의 윤회와 자유가 존재하는 곳으로……. - 김미영 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