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570409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15-07-13
책 소개
목차
목차 없는 상품입니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를 쥔 사내는 곧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로비 중앙에, 목덜미 언저리에 칼이 꽂혀 있는 중년 남자 하나가 고개를 떨군 채 가죽소파에 앉아 있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그의 머리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를 쥔 사내가 그의 앞에 섰을 때에야 나는 그를 자세히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온몸에는 칼자국이 나 있고 칼이 꽂혀 있는 목덜미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그의 불룩한 배를 타고 허벅지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처참한 몰골로 숨만 쉬고 있었다. 누가 그를 저 꼴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대단한 칼솜씨였다.
나를 쥔 사내는 왼손으로 그의 턱을 떠받치고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죽는 고통이…… 컥, 생각했던 것보다, 컥…… 심하군 하고 말했다.
멋있네. 보기 좋아. 나를 쥔 사내가 말했다.
자네 패거리들이 돌아간 지가 언젠데, 컥…… 이제야…….
비가 내렸거든.
겨우 비 때문에…… 컥…… 죽지도 못하게 해놓고 이 꼴로 내버려두었나. 잔인하군.
이해하게, 나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어쩌겠나. 내 손으로 자네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각서까지 썼다네. 날 원망하지 말게.
어서…… 컥…… 어서, 나를 죽여주게.
나를 쥔 사내는 피가 흘러내리는 그의 아가리로 내 총구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 남자의 목젖에 붙어 있는 붉은 핏덩어리를 보았고 붉은 동굴 같은 목구멍을 보았으며 핏물이 고여 있는 혓바닥을 보았다.
나를 쥔 사내의 엄지손가락이 내 공이치기를 뒤로 당겼다. 방아쇠에 닿아 있는 그의 검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젠장. 또 나만 피를 뒤집어쓰겠군!
그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 철컥 하는 부품 소리와 함께 공이치기가 공이를 때렸다. 공이가 앞으로 전진하며 약실에 있는 탄환의 뇌관을 때린 바로 그 순간 탄환 내에 있는 장약이 연소되는 팽창 압력에 의해 탄두가 총구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걸쇠가 탄피의 홈을 잡아당기면서 매캐한 화약연기와 함께 탄피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 모든 과정은 찰나에 일어났다. 그리고 탕!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내 몸체가 전율했다.
내 총구를 빠져나간 탄두는 그의 입천장을 뚫고 두개골을 관통했다. 나는 그의 두개골에 뚫린 구멍을 빠져나가는 붉은 피를 보았다. 입속으로 역류한 붉은 피가 내 몸체로 튀었다. 나는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지는 경쾌한 탄피 소리를 들었다. - 1부 중에서
내가 권총으로 조립된 순간, 벌써 육십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사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불길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본능으로 알 수 있다. 살인이든, 총격전이든, 패싸움이 벌어지는 날은 뭔지는 모르지만 묘한 기운(나는 그 묘한 기운을 불길한 기운으로 정의했다)이 분명히 공기 중에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거쳐간 수많은 주인이 살인을 하기 위해 나서기 전에는, 혼자인 경우도, 동행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항상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분위기는 그동안 내 주인이었던 사람들, 혹은 그들과 동행한 사람들의 몸짓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어떤 주인은 담배를 피워댔고, 어떤 주인은 이빨을 빠드득거렸으며, 어떤 주인은 나를 수건으로 닦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떤 주인은 탄환을 장전하며 기도를 했고 또 어떤 주인은 괴성을 토했고, 기쁨인지 환희인지 모르는 묘한 신음을 토해내는 주인도 있었다. - 1부 중에서
사격술이 좋다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나한테는 지금 나를 쥐고 잠들어 있는 주인 말고도 그에 버금가는 사격술을 가진 주인이 대여섯 더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들은 다 죽었다. 어떤 이는 머리 거죽이 벗겨진 채 죽었고 어떤 이는 흉곽과 척추가 전기톱에 잘려 죽었다. 집채만 한 쇳덩어리에 깔린 주인도 있었는데,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쇳덩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만 보았다.
내 주인 중에는 칼을 잘 다루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나보다 칼을 더 좋아했다. 그는 총을 쥔 상대방을 칼로 제압하고 그 칼로 상대방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렇다고 그가 총알보다 빠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당연한 얘기지만 총알보다 빠른 자는 없었다. 그가 칼로 총을 제압한 것은 전술과 전략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혹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싸움에도 전술과 전략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난 후 패거리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도 결국 칼에 찔려 죽었다. 주먹과 발을 잘 쓰는 자, 쇠파이프나 도끼를 잘 다루는 자도 있었지만, 주먹과 발을 잘 쓰는 자는 양팔이 잘린 채 버려진 농가의 화장실 속에 거꾸로 처박혔고, 쇠파이프를 잘 다루는 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스라졌다. 도끼를 다루는 자는 창자가 튀어나온 채 말라 죽었다. 그런 걸 보면 그 어떤 무기를 잘 다룬다 해도……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그 또한 내가 겪은 경험에서 얻은 믿음이다. - 1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