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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총이다

나는 권총이다

오일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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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총이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는 권총이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5570409
· 쪽수 : 452쪽
· 출판일 : 2015-07-13

책 소개

한국 전쟁에 참전한 이후 이 땅을 떠돌다 사라진 비운의 권총에 대한 이야기이다. 권총은 육십여 년 동안 우리의 역사와 함께 흐르면서 시대의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권총은 음모와 배신을 일삼는 비열한 인간의 영혼을 본다.

목차

목차 없는 상품입니다.

저자소개

오일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세 권의 소설을 펴낸 저자는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위해 집필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6년여 만에 색채 미스터리 장르 소설 『색채처방소』를 펴낸 것을 시작으로 2014년 눈사람 소년의 모험을 그린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거래』, 2015년 권총을 의인화한 소설 『나는 권총이다』를 펴내고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하는 장편소설 『위로의 계절』은 평범한 남녀의 사랑을 그린 새드 소설로 우리 앞에 펼쳐진 애증 어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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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를 쥔 사내는 곧바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로비 중앙에, 목덜미 언저리에 칼이 꽂혀 있는 중년 남자 하나가 고개를 떨군 채 가죽소파에 앉아 있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그의 머리통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를 쥔 사내가 그의 앞에 섰을 때에야 나는 그를 자세히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온몸에는 칼자국이 나 있고 칼이 꽂혀 있는 목덜미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그의 불룩한 배를 타고 허벅지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처참한 몰골로 숨만 쉬고 있었다. 누가 그를 저 꼴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대단한 칼솜씨였다.
나를 쥔 사내는 왼손으로 그의 턱을 떠받치고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죽는 고통이…… 컥, 생각했던 것보다, 컥…… 심하군 하고 말했다.
멋있네. 보기 좋아. 나를 쥔 사내가 말했다.
자네 패거리들이 돌아간 지가 언젠데, 컥…… 이제야…….
비가 내렸거든.
겨우 비 때문에…… 컥…… 죽지도 못하게 해놓고 이 꼴로 내버려두었나. 잔인하군.
이해하게, 나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어쩌겠나. 내 손으로 자네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각서까지 썼다네. 날 원망하지 말게.
어서…… 컥…… 어서, 나를 죽여주게.
나를 쥔 사내는 피가 흘러내리는 그의 아가리로 내 총구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 남자의 목젖에 붙어 있는 붉은 핏덩어리를 보았고 붉은 동굴 같은 목구멍을 보았으며 핏물이 고여 있는 혓바닥을 보았다.
나를 쥔 사내의 엄지손가락이 내 공이치기를 뒤로 당겼다. 방아쇠에 닿아 있는 그의 검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젠장. 또 나만 피를 뒤집어쓰겠군!
그가 방아쇠를 당긴 순간 철컥 하는 부품 소리와 함께 공이치기가 공이를 때렸다. 공이가 앞으로 전진하며 약실에 있는 탄환의 뇌관을 때린 바로 그 순간 탄환 내에 있는 장약이 연소되는 팽창 압력에 의해 탄두가 총구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걸쇠가 탄피의 홈을 잡아당기면서 매캐한 화약연기와 함께 탄피가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그 모든 과정은 찰나에 일어났다. 그리고 탕!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내 몸체가 전율했다.
내 총구를 빠져나간 탄두는 그의 입천장을 뚫고 두개골을 관통했다. 나는 그의 두개골에 뚫린 구멍을 빠져나가는 붉은 피를 보았다. 입속으로 역류한 붉은 피가 내 몸체로 튀었다. 나는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대리석 바닥 위로 떨어지는 경쾌한 탄피 소리를 들었다. - 1부 중에서


내가 권총으로 조립된 순간, 벌써 육십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수많은 사건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불길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을 본능으로 알 수 있다. 살인이든, 총격전이든, 패싸움이 벌어지는 날은 뭔지는 모르지만 묘한 기운(나는 그 묘한 기운을 불길한 기운으로 정의했다)이 분명히 공기 중에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거쳐간 수많은 주인이 살인을 하기 위해 나서기 전에는, 혼자인 경우도, 동행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항상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분위기는 그동안 내 주인이었던 사람들, 혹은 그들과 동행한 사람들의 몸짓에서 나오는 것이었는데 어떤 주인은 담배를 피워댔고, 어떤 주인은 이빨을 빠드득거렸으며, 어떤 주인은 나를 수건으로 닦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떤 주인은 탄환을 장전하며 기도를 했고 또 어떤 주인은 괴성을 토했고, 기쁨인지 환희인지 모르는 묘한 신음을 토해내는 주인도 있었다. - 1부 중에서


사격술이 좋다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나한테는 지금 나를 쥐고 잠들어 있는 주인 말고도 그에 버금가는 사격술을 가진 주인이 대여섯 더 있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들은 다 죽었다. 어떤 이는 머리 거죽이 벗겨진 채 죽었고 어떤 이는 흉곽과 척추가 전기톱에 잘려 죽었다. 집채만 한 쇳덩어리에 깔린 주인도 있었는데,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고 쇳덩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만 보았다.
내 주인 중에는 칼을 잘 다루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나보다 칼을 더 좋아했다. 그는 총을 쥔 상대방을 칼로 제압하고 그 칼로 상대방의 심장을 도려냈다. 그렇다고 그가 총알보다 빠르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본 사람 중에, 당연한 얘기지만 총알보다 빠른 자는 없었다. 그가 칼로 총을 제압한 것은 전술과 전략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혹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싸움에도 전술과 전략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그 일이 있고 난 후 패거리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그도 결국 칼에 찔려 죽었다. 주먹과 발을 잘 쓰는 자, 쇠파이프나 도끼를 잘 다루는 자도 있었지만, 주먹과 발을 잘 쓰는 자는 양팔이 잘린 채 버려진 농가의 화장실 속에 거꾸로 처박혔고, 쇠파이프를 잘 다루는 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스라졌다. 도끼를 다루는 자는 창자가 튀어나온 채 말라 죽었다. 그런 걸 보면 그 어떤 무기를 잘 다룬다 해도……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그 또한 내가 겪은 경험에서 얻은 믿음이다. - 1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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