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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6064167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9-08-15
책 소개
목차
제1부 나의 인생
1 나의 아버지 최재형과 나의 어린 시절
2 엔지니어가 된 한인촌 소녀
3 그들이 나를 끌고 갔다
4 수용소 생활
5 여위고 굶주린 채 집으로 돌아오다
6 나를 기억한다
7 점점 줄어드는 친구들
8 나의 인생은 계속된다
제2부 나와 나의 아버지 최재형
1 나의 아버지 최재형
2 나의 대학 시절
3 농업 기사 시절의 나의 삶
4 집단화 시기의 나의 삶
5 시련의 시절
6 내 삶으로 돌아온 나의 인생
고모 올가와 아버지 발렌틴에 대한 회상
1 최재형의 딸 올가
2 최재형의 아들 발렌틴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한국의 애국자로서, 최재형은 점령자들인 일본과 싸웠다. 독립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 해방 운동을 선두에 서서 이끌었다. 나의 아버지 최재형은 1906년, 항일 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하고 독립운동가를 양성하였다. 당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항일 투쟁 지도자들과 늘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아버지 최재형은 일본 우두머리를 죽이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있던 노보키옙스크에 ‘안인사’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던 안응칠(안중근)이 살았다. 그는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다. 어느 날, 나와 소냐 언니는 마당에서 놀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결국 안중근은 하얼빈으로 가서 일본군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4월 4일 저녁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왔다. 가족 모두가 놀라고 걱정했다. 거리는 이미 어두웠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 모두를 불러 “내가 떠나고 없으면 곧 일본인들이 어머니와 너희들을 모두 체포해 때리고 내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할 거다. 나는 이미 늙었고 충분히 오래 살았으니 죽어도 되지만 너희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나 혼자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 말에 우리 모두가 울었다. 그렇게 또 한 번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마 아버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으리라.
아침 일찍,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우리 방 덧문을 열었다. 그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방문이 열리고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무슨 일인지 깨닫고 벌떡 일어나 옷도 입지 못하고 현관 계단으로 내달렸다. 거리로 나가보니 팔이 뒤로 묶인 아버지의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1920년 4월 5일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엘비타는 열두 살이었다. 엘비타가 상황을 깨닫고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나를 연행해 가려는 사람들이 엘비타에게 "울지 마, 엄마 곧 올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엘비타는 "당신들이 엄마를 체포했잖아요"라는 말로 답을 대신하며 증오의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내 딸 엘비타가 엄마도 아빠도 없이 혼자 남겨진 것이다.
나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은 더 이상 수용자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감방으로 끌려가 문을 열었으나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중략)
나는 스몰렌스크 임시수용소로 이감됐다. 거대한 감방에는 여러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어디론가 멀리 보내졌다. (중략)
나는 카라간다 임시수용소로 이감됐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시베리아나 북부 수용소로 보내졌다. 스몰렌스크에서 카라간다로 가는 힘든 이송 길을 지나자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열차에 올랐다. 그제야 얼었던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중략)
며칠이 지나 키가 큰 젊은 사람이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를 둘러보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임무는 노릴스크 콤비나트 건설에 투입시킬 전문가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미 동료 김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세레브랴코프 발렌틴 이바노비치, 텐 라이사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 알면서도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전문분야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공부했고 1934년 몰로토프 모스크바 에너지 대학을 졸업한 후 로슬라블 시영 발전소 기관실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체포됐고 재판도 받지 못한 채 '3인 위원회'의 10년 수용소형 판결에 따라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나와 몇몇 여자들의 이름을 적어갔다. 며칠 후 크라스노야르스크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추운 날씨에, 옷도 변변치 않아 사람들과 꼭 붙어 앉았다. 주변에 있는 아무거나 가져와 몸을 덮고 예니세이강을 따라 며칠을 가던 중 감옥에 갇힌 이후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자연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극심한 추위도 무섭지 않았다. 아직 젊었고 희망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