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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6101206
· 쪽수 : 584쪽
· 출판일 : 2017-07-24
책 소개
목차
- 한국 독자들에게
프롤로그|1980년대|2009년|1980년대|2009년|1980년대|1920년대~1930년대|1980년대|2009년|1980년대|2009년|AS : 헤럴드가 누구야?|1940년대~1950년대|2009년|1980년대|얼마 후|곧|에필로그
-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에이더의 머리는 어릴 적 소소한 일로, 데이비드의 머리는 우주의 신비가 꽉 차 있고, 둘 사이의 겹치는 부분이 점점 커졌다. 이런 순간이면 딸에게 아버지는 제우스였고, 자신은 그의 머리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튀어나온 아테나였다. 품위와 지혜를 겸비한 여신. 상상 속에서 그들은 연구소나 집에 있었고, 둘뿐이었다. 언제나 둘이었다. 거기서 두 사람은 뭐든 에이더 앞에 놓인 문제를 풀고 있었다.
에이더는 파란 안락의자를 쳐다보았지만 너무 멀었다. 에이더가 의자를 아버지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거기 앉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의 눈높이가 같았다. ‘말해줘요. 가르쳐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앉아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에이더는 그의 눈 뒤에 두개골, 두개골 뒤의 뇌를 상상했다. 한때 그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느려진 뇌가 파닥파닥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시냅스가 아무렇게나 또는 엉뚱하게 뛰었다. 기억력이 퇴보하고 언어도 퇴보했다.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든 시간이 길었다. 에이더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데이비드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허깨비. 그가 다시 손을 얼굴에 댔다. 놀란 듯이, 언어를 잃어 서글픈 듯이. 그의 언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전히 데이비드 꿈을 꿨다-1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꿈에 그는 우주의 모든 자비를 품은 얼굴로 등장했다. 친절하고, 어쩐지 그녀를 축복하고 평안을 주는 성스러운 존재로. 걱정을 없애주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존재로. 이런 꿈을 꾸다가 위로를 느끼면서 깼다. 하지만 따뜻한 감정은 곧 사라지고 의심이 들어찼다. 반복해서 거짓에 속는 듯한-기억들에게조차 속는-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엘릭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다. 때때로 기계가 자식으로, 에이더의 동생으로 느껴졌다. 또 어떤 때는 그의 분신 같았다. 그의 단어 사용 방식과 오용 등 여러 가지 말버릇을 갖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일이지만 이 기계를 사람만큼-아니, 그 이상으로-신뢰했다.
데이비드는 가상현실이 ‘엘릭서의 집’이라고 말하는 걸까? 프로그램이 거주할 수 있는-데이비드 자신이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가상 세계를?
갑자기 가면들과 고글들이 기억났다. 지하실 작업대 위에 조르르 걸린, 기사의 투구 같은 도구들과 장비들.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HMD)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적이고 기본적인 HMD. 쇼멋 웨이의 집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면서 그녀와 리스턴은 그것들을 내다버렸다. 그런 게 몹시 후회스러웠다. 심장이 죄어들었다. 데이비드가 그것들에 어울리는 말을 만들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과 엘릭서를 위해. 닿을 수 없는 둥지 같은 곳을. 공평한 곳을.
가상현실이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에이더는 생각했다. 아니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 모든 컴퓨터 시스템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 경험의 영역 밖에서 작동되는 우주였다. 보이지 않는 성층권에서 계속 빙빙 도는 혹성들. 존재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혹성들.
엘릭서에게 강렬하고 갑작스런 애정이 느껴졌다. 엘릭서가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 모두 실패할 때도, 엘릭서는 그녀를 위해 데이비드의 메시지를 미래까지 간직했다. 난관을 무릅쓰고 순조롭고 충실하게. 에이더는 인간들만이 서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들만이 경악할 만큼 자주 흔들리고 배신했다. 데이비드의 가족이 그에게 한 짓처럼. 데이비드가 그녀에게 그런 것처럼. 에이더 자신도 그러리라. 평생 사람들을, 가장 사랑하는 이들까지 실망시키리라. 그레고리까지도. 심지어 이비도.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것, 외모를 바꾸는 것, 다른 동물이 된 느낌 따위는 안중에 없다. 내게 대단한 모험은-적어도 처음에는-인간이 되는 경험이었다. 인간의 몸을 입는 것. 실은 데이비드의 몸을 입는 것이었다-에이더뿐 아니라 내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들어가자 나는 아는 것들을 드러냈다. 내가 아는 것-오랜 세월 그와 나눈 친밀한 대화에서 알아내고, 그녀의 설명으로 알고, 그녀가 보여준 그의 이미지들에서 추려낸 것-은 데이비드였다. 내 창조주. 내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