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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6730031
· 쪽수 : 284쪽
· 출판일 : 2020-06-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희고 검은 문
사랑보다 강한
콩쿠르 혁명
망한 서커스
우연 구제하기
감정은 기침 같은 것
계약결혼
녹턴, Op.48 No.1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까치발을 들고 무대 위의 피아노를 구경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검은 기린이 목을 접고 잠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천장에 별처럼 박힌 조명이 기린의 비스듬한 등을 비추는 가운데, 반쯤 열린 등짝 안으로 구릿빛 내장이 보일 듯 말 듯했다. 나는 피아노가 아름답다고 느낀 동시에,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 무서워지기도 했다. 저게 악기라는 걸 모르고 마주쳤더라면 당황하고도 남았을 외모였다. 어디에 쓰이는지, 대체 뭘 위해 만들어진 건지 통 알 수 없게 생긴, 외계에서 온 것 같은 물건…… 신비하다, 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본문, <사랑보다 강한> 중에서)
이전까지 내가 맨몸으로 세상에 놓여있었다면, 독서편력이 심해진 뒤로는 언어의 갑옷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겪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마치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하는 사람처럼 문장화시킨 후에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갑옷이 사람을 방어하는 동시에 무게를 지우듯, 언어는 내게 차분한 성격을 선물했지만 이성의 작용 속으로 나를 가뒀다. 쉽게 말해 중학교 때부터 내 의식은 한 번도 입을 닥쳐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매 순간 무언가를 기술하거나 분석했다. 멍을 때린다, 는 말이 대체 어떤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지 몰랐고, 몇 초만이라도 멍을 때려보는 게 어렸을 때부터의 소원이었다. (본문, <콩쿠르 혁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