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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145179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4-10-31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 04
1장 갑오년에 콩 볶아 먹는 소리
헤어 소수자의 길 … 16 / 게 등딱지 … 20 / 뻥의 스케일 … 22 / 부드러운 혀 … 25 / 논-쟁 … 28 / 뻘수저 … 30 / 고추 … 34 / 말의 맛 … 37 / 옛날 선배들 … 41 / 저 지경이 저 경지가 되는 순간 … 44 / 금둔사 … 47 / 실상사 뒷간 … 49 / 화불과야 … 52
2장 세상은 저런 놈이 오래 산다네
무꽃 … 60 / 낡은 껍질 … 64 / 훈수 … 67 / 늦가을 … 70 / 만원 … 73 / 보수 … 75 / 오디오 … 77 / 앙리 마티스 … 81 / 아완 선생의 용맹 정진 … 89 / 정종 … 93 / 지하철에서 … 97 / 분배 … 98 / 지혜 … 101
3장 세월은 뻘뻘뻘뻘 빨리도 기어가네
여름 저녁 … 110 / 어머님의 은혜 … 114 / 쌍가락지 … 116 / 무하유지향 … 120 / 고생한 나무 … 123 / 개와 펫 … 126 / 망년 … 127 / 스마트폰 … 132 / 귀가 … 136 / 향년 … 140 / 열반송 … 142 / 어디로 갈지를 모르고 … 144 / 봄날 … 145 / 제2의 화살 … 147
4장 계절은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선물 … 156 / 부처의 유언 … 159 / 어떤 문제 … 162 / 천왕봉 소풍 가는 길에 … 169 / 개심사 … 172 / 황룡강 일몰 … 176 / 무지개 … 178 / 연잎차 템플스테이 … 181 / 지공너덜 … 184 / 양계 … 188 / 신들의 죽음 … 190 / 깨달은 자 … 192
5장 손가락 사이로 왔다가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림 한 점 … 200 / 음악회 … 204 / 생애 첫 데뷔 … 208 / 전신 … 212 / 고갱 … 215 / 중년, 클래식으로의 귀의를 권하며 … 219 / 무엇이 전해지는 순간 … 222 / 수연성 … 224 / 마지막 사중주 … 226 / 절터 … 229
피날레 … 232 / 엄니 시집 … 236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1994년 변산.
윤 선생。 뒷짐 지고 묻는다.
“대두大豆 파종播種 시기가 언제랍니까?
흥촌 아짐 허리 펴면서 답한다.
“대…… 머라고? 대가리가 어쨌다고.”
“아니, 대두 파종 시기 말입니다.”
“대두가 뭐여?”
“아, 콩이지요.”
“그러면 콩이라 글먼 되지, 입이 삐뚤어졌능가?”
“…….”
“파종은 뭐여?”
“심는 시기 말입니다.”
“긍께 콩 언제 심냐, 그 말이제?”
“맞습니다, 맞아요.”
“기냥 콩 언제 심냐고 물어보믄 될 것을, 뭔 갑오년에 콩 볶아 묵는 소리를 그라고 해싸.”
“…….”
“올콩(여름 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알겄어?”
“예에.”
<갑오년에 콩 볶아 먹는 소리>
팔순 노모가 저녁 밥상머리에서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근래 어느 날 밤중 자시子時 무렵, 엄니 친구네 집에서 기르던 개가 유명을 달리한 모양이다. 여기서 개는 그냥 개와는 다른 ‘펫pet’이다. 그 집 작은딸이 죽은 펫을 부여안고 울고불고 곡을 하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작은딸은 즉시 인천 사는 언니에게 ‘부음’을 전했다. 언니는 그날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밤중에 50만 원에 택시를 대절하여, 광주까지 천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자매는 밤새 펫을 부둥켜안고 울었으며, 그 곡진한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고, 말로 형언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엄니 친구는 엄니에게 딱 한 말씀을 남겼다.
“저것들이 나 죽으면 저 난리를 치겄냐?
<개와 펫>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앓아눕자 제자인 노자가 물었다.
“선생님,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에서 내리거라, 알겠느냐?”
“사람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허리를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마을의 노인들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상용은 돌아누웠다.
허균의 『한정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의 본바탕을 잊지 말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입상진의立像盡意’, 이 말은 시를 지을 때 사실을 나열하지 말고, 어떤 상을 세워서 뜻을 깊게 하라는 것이다. 산이 멀리서 봐야 아름답듯이, 은유나 비유를 통해 돌아 들어가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에게 ‘세상 살다 보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가르침을 주면서 입을 열어 “내 혀가 있느냐? 내 이가 있느냐?” 이렇게 묻는立像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그것을 알아먹는 제자다. 어찌 혀와 이를 보고 단박에 ‘유능제강柔能制剛’을 알아차렸을까? 그러니까 노자인가. 겨울 숲길을 걷다가 나무에 쌓인 눈이 가지를 꺾어 버리는 것을 보고 부드러움의 힘을 깨달았다고 하니.
나는 혀와 이를 내미는 교습법이 하도 희한해서 중학생 딸을 앞에 두고 한번 해보았다.
“아빠 혀가 있느냐?”
“…….”
“아빠 이가 있느냐?”
“……뭐래? 담배 끊어서 깨끗해졌다고 자랑하는 거야?”
이런 가르침은 이가 다 빠진 뒤에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데로 간다
<부드러운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