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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91197205729
· 쪽수 : 796쪽
· 출판일 : 2020-12-20
목차
제1부 시편으로 설교하기……………………………………45
시편 1편
시편2편
시편4편
시편5편
시편8편
시편9편
시편13편
시편1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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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50편
이사야서12
애가3
누가복음1
제2부 시편으로 예배하기……………………………………639
책속에서
서언
시편은 우리 안에 믿음의 원천(源泉)을 만든다.믿음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시편에 신실하게 다가가면 시편은 언제나 은혜와 믿음을 준다. 우리는 시편을 아주 익숙하다고 여기면서도 시편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구약에서 보면 시편이 이스라엘의 믿음의 심리(心理)에 어느 정도로 확실히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시편의 노래와 기도는 토라와“역사적인”이야기에 연결되어 있다. 시편은 이스라엘의 기억을 처음으로 또렷이 말해주고 기도로서 또 시로서 나타나며 또 다른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시편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지침서이며 그러한 믿음은 반드시 시적이고 상상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이므로 말로 형상할 수 없고 상상의 언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답답한 명제적인 추론과 얄팍한 역사적 분석을 미연에 제외하는 것이다. 시편은 그 견고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언약(言約)의 믿음을 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 서방 교회가 시편에 대해서 등한시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고 창피스러운 일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몇몇 개의 시편에만 국한되었거나 어떤 회복의 방법에 있어서도 찬송시는 여전히 시편의 내용을 알려주기에 역부족이다. 더 나아가 시편을 올곧게 쓴다 하더라도 음악이 너무 “요란해서” 시편의 구절이 담고 있는 “담백한” 맛이 떨어진다. 클라우스 베터만이 말하듯이 이렇게 간과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편이 우리 안에서 다시 회복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시편은 인간의 삶과 인간의 경험의 극단에서 맞부딪치게 될 현실의 믿음에 관해서 직접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시편은 수사(修辭)적으로도 대담하고 신학적으로도 위태롭다. 그리고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힌 교회가 즐길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대담하고 위태로워졌다. 시편 수사법의 극단은 다른 한편으로는 찬송시를 견고하게 익히는 것이고 하나님의 경외로움에 대한 믿음 그 자체에 대해서 공공연히 자유분방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이 자유분방해 지는 것은 제한된 신학적 내용이 이미 자리 잡혀 있는 예배에 반영되어 있는 기존의 교회 입장에서는 달갑지 못하다. 달리 보면 탄식과 저항의 시는 하나님의 실재에 반해서 대중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높이 외치는 관행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권리, 기대, 그리고 요구사항에 대해서 하나님이하나님께서 계신 곳에서라도 계속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그 주일의 명령이 되는 예배에서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찬양에서건 기도에서건 시편은 믿음의 대화체(對話體) 연습이다. 이것은 기존의 관행을 타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참여를 요구하신다는 “현실주의”의 하나로서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시편을 회복하는 일은 인간의 교제가 일차원적인 기교 섞인 연설이거나 자기도취적인 심리적 은어로 전락한 곳에서 사회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다. 이 회복은 시급하다. 왜냐하면 그런 기교나 심리학적인 수사는 자기 이외의 것은 볼 수 없게 하고, 오로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을 보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교회 내 공공의 삶 속에서 시편을 회복하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시편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소비 자본주의의 세계를 타파할 수 있고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자리 잡은 부동적인 것들을 타파할 수 있는 공적인 일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시편이라는 것이 단순히 “좋게”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위해서 여기저기에 산발적(散發的)으로 쓰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아니다. 시편의 강력한 타파적인 면을 부각 시키려면 시편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해설자나 교회 음악가들이 함께 시편을 써가면서 일해야 한다. 시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지표이다.
시편이 가르침과 예배의 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가르침의 주제는 특히 토라 시편에 잘 나온다. 그러나 사실 모든 시편이 여러 가지의 목소리로 각각 다른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단지 “가르치기”보다는 “만든다”라고 하고 싶다. 아니면 “실재(實在)를 사회적으로 만든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시편이 지니는 교육적인 측면은 우리에게 양분을 주고 우리의 문화의 관습에 우뚝 서있는 믿음의 세계로 우리와 우리의 젊은이들을 인도한다.
시편의 교육적인 면은 둘째 치고, 시편을 예배 의식에 사용하는 것은 시편을 더 많이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믿음에 대한 고대의 맹세를 오늘날 다시 한 번 시편 문장을 통해서 재현하는 것이다. 지그문트 모빙겔 (Sigmund Mowinkel)이 오래 전에 이해한 바와 마찬가지로 시편은 “효과적”이다. 그리고 많은 현대의 신자들은시편을 통해 규칙적으로 수사(修辭)연습을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이 새로운 실재에대해 증언한다. 젊은이들은 시편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고, 성인들 역시 이런 형태의 대화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시편이 갖는 극단적인 자유분방함과 극단적인 말, 이 모두가 시편 이외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만일 설교를 하는데 있어서 시편의 구절들이 주의깊게 설명되지 않는다면 시편은 가르침을 구상하는데 있어서도, 효과적으로 그 내용을 보여주는데 있어서도, 제대로 사용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몇몇의 시편을 다윗의 삶에 첨가하는 표제에 의해서 나타난다. 즉, 그런 표제들은 포괄적인 말을 말로서 특정하게 나타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시편의 경이로움이다. 특별하게 써야 한다는 점에서 시편은 포괄적이다. 사실상 시편은 특정한 경우에 나타나는 믿음의 이야기이며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새롭고 특정한 방식으로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편은 다윗의 믿음과 삶을 이야기 식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디트리히 본회퍼의 (Dietrich Bonhoeffer)의 관점에서는 보자면 (한 예로 보면) 시편은 예수님의 삶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는 달리 설교의 관점에서 보면 시편은 특정한 신자들, 특정한 개인들이 그들의 예배 의식에서의 재현(再現), 기운을 주는 놀라운 능력, 그리고 깊이 생각하게 되는 놀라운 반전과 함께 반드시 겪게 되는 삶과 믿음에 선을 그어준다. 시편의 언어는 바로 이렇게 삶에 힘을 주고 깊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부서지고 또 다시 축복을 받을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교사와 예배인도자, 그리고 설교자는 반드시 이시가 언제나 시라는 것을 보여줘야한다. 이데올로기적인 면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것이심히 우려된다.이런점에서 시편의시적인 탄력성이 돋보인다. 찬양과 기도의 믿음이 인간의 상황을 말해주는 방식으로, 또 인간사회에서 인간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해주는 방식으로 우리의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을 없앤다.시편은 누군가에 대한 도덕적인 이점을 취하지 않고 “빨갛고”, “파란” 기독교인들이 함께 서 있는 곳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 함께 나아갈 때, 닫혀있는 답답한 세상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 저곳에서 연민과 경외심, 관대함과 쾌활함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시편은 우리의 세움과 행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왜 교회가 이렇게 타파적이고 변화의 힘이 농후한 복음의 믿음을 피해왔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변화의 길에서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