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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7225949
· 쪽수 : 198쪽
· 출판일 : 2021-06-16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5
1부. 연두의 시간
매화 한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 12
단골손님 16
나는 누구일까 20
연두의 시간 24
마, 치아뿌라 27
슬픈 진달래 31
백태 35
염치라는 게 있어야제 38
까치 42
탈각 46
너거가 내보다 낫다 51
창, 나의 만다라 55
2부. 자미화 피는 날
버찌 60
멀어져 보니 알겠다 63
메꽃 67
패자에게 71
참나리의 속내 76
매미소리 80
물벼락 85
자미화 피는 날 88
어렵다 어려워 92
그림자 없애기 96
여름나기 100
3부. 네놈이 나이테를 알겠느냐
가을은 104
네놈이 나이테를 알겠느냐 107
낙엽을 위하여 111
내 머리가 어때서 116
보내야할 것들 120
그 사람도 그렇다 123
이제는 126
척, 척, 척 130
저자소개
책속에서
매화 한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
고요한 산사의 청량한 풍경 소리처럼 선암사 선암매, 그윽한 향기 온 창가에 퍼졌으면 좋겠다. 뎅그랑 뎅그랑 빠르지도 느리지도, 바쁘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오로지 제 뜻대로 숨결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만히 눈 감고 절간 처마 밑에서 이는 바람 맞으며 세상사의 근심일랑 잊어보면 어떨까. 무한한 초월, 바라는 게 없으니 버릴 것 또한 없을 테지. 육백 년을 살았으니 무상함도 알 터인데, 봄마다 피는 꽃은 또 무슨 심사일까. 득도한 고승의 미소처럼 웃는 듯 마는 듯, 선암매가 읊어주는 해탈의 오도송 그 청량한 소리 한 번 들었으면 좋겠다.
가을은
가을은 쉬엄쉬엄 걷는 것이다. 개울가에 퍼질러 앉아 너부러져 있는 억새의 하소연에 맞장구쳐보자. 흘러가는 흰 구름도 한 바가지 들이켜 보자. 고추잠자리 앞에서 손가락을 뱅뱅 돌려도 보고, 멧비둘기에 ‘훠이’ 심술도 부려 보자. 한 자락 더 가지려 길길이 날뛰다 이리 자빠진 게 아니냐. 해 저물고 낙엽마저 떠나는 늦가을인데 재촉할 게 무어 있나. 쉬엄쉬엄, 띄엄띄엄, 뚜벅뚜벅 가노라면 저절로 만나질 끝 길인 것을.
가을은, 가을은, 가을은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다. 다 팽개쳐놓고 걷노라면 언젠가는 길섶에서 방긋 웃는 구절초 한 송이도 만나게 되겠지.
네놈이 나이테를 알겠느냐
흉금 넓은 느티나무가 보다 못해 ‘꽁’ 하고 꿀밤이라도 한 방 먹인 모양이다. 겁 모르고 날뛰던 강아지풀이 어느 사이엔가 시무룩해졌다. “요 녀석아, 네가 아무리 높은 곳에 섰다고 날뛰어도 한 바가지 물만 아는 웅덩이 속의 송사리고, 평생을 살아도 눈보라를 볼 일 없는 여름철의 매미와 같은 신세일 뿐이다. 네놈이 머리 꼭대기에서 호시탐탐 알곡 터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참새를 보았겠느냐, 몇백 겹으로 쌓아놓은 내 나이테를 알겠느냐.”
“사방의 바다가 끝이 없어 보이나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크기를 헤아려 보면 큰 연못 가운데에 난 소라 구멍 정도에 불과하다.” 약의 말씀이시니라, “이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