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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7325373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2-12-01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05
제1부_ 매끈한 상처
다시 피는 꽃 13
무화과 14
신발 끈을 묶다 16
복사꽃 그대 18
봄날, 바람들다 19
오래된 옷 21
달팽이가 된 남자 22
빛나는 구멍 23
돌, 꽃을 품다 24
남방돌고래 25
뜨거운 물집 26
물살 27
밤하늘 28
자벌레 29
어떤 가뭄 30
제2부_ 나무가 걸어온다
나무의 걸음 33
몬스테라 35
들린 뿌리에 관하여 36
네트멜론 38
꽃 지는 시간 39
걸레질 41
왈칵 젖다 42
넘어진 플라타너스 43
그늘이 잘린 자리 44
나팔꽃 45
천성 46
바위 속의 길 47
개미와 날개 48
흔들린다 49 감 50
제3부_ 깊어진 너
마음이 마음에게 53
겨울, 항동에서 55
마음아 56
손가락을 앓다 57
2월 말 58
헐거움에 관하여 59
첫날밤 60
깡통의 깊이 61
뭉클한 그늘 63
곰탕 한 그릇 64
능소화 친구 65
무릎을 세우며 66
시월 벚꽃 68
덧칠된 그림 69
도마 70
제4부_ 생각이 선명한 꽃 무늬
무늬가 있었다 73
퍽퍽한 고구마를 먹으며 74
펴지 못한 날개 75
정어리처럼 77
초점 79
덥석 잡다 80
손을 따다 81
그녀의 지문 83
바다가 된 방에 섬이 떴다 84
부부1 85
오징어 86
약수 87
지하의 잠 88
그릇을 포개며 89
맛있는 그리움 90
해설 생태적 의식이 수렴된 의지의 시학_ 노창수 91
저자소개
책속에서
달팽이가 된 남자
남편은 좁은 집을 어깨에 메고 살았다.
노모가 들어오면서 집은 점점 부풀었다. ‘어떻게 얻은 집인데……’ 노모는 방에서 나와 몇 걸음이면 끝날 거실을 운동장이라도 된 듯 한참을 걸어 푸른 나무가 자라는 베란다로, 거기서 심호흡 크게 몇 번 하고 다시 몸을 틀어 물이 있는 주방까지, 지팡이 앞세우고 느릿느릿 갔다. 지나간 자리마다 땀방울 툭툭 떨어진 길이 생겨나 남편은 그 길을 닦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만든 집인데……’ 한참 동안 옆에서 구시렁거렸다 “가구를 새로 바꿀 때가 됐어” 그러는 사이 남편의 허리는 점점 구부려져 노모의 한숨이 밤마다 들렸다, ‘이제 바꿀 때가 됐어. 이 집을 버릴 때가 됐어’ 자신이 짐이라며 노모는 집을 버렸고 이후로도 가구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남편은 아침마다 습관처럼 집을 어깨에 메고 일어섰다.
그 집에 아들과 내가 젤 먼저 들어앉았다
빛나는 구멍
노점에서 산 상추에 들어앉은 배추벌레
내 늦은 끼니를 단번에 갉아먹고
연둣빛 투명한 몸을 죽은 듯 말고 있다
벌레도 제 몸 지킬 방법 하나 가졌는데
기껏해야 소름 같은 비명이나 지르는 나
작은 몸 숨죽여 있던 곳
비밀처럼 별이 떴다
나무의 걸음
어둠을 삼키며
나무가 걸어온다
온전히 묻히지 못해
뿌리는 항상 까치발
차가워 온기 한 줌 찾아
더듬더듬 길을 간다
생의 줄기 밀어내어 한 발씩 내딛는 일은
앞서 내린 뿌리를 독하게 끊어내는 일
제 상처 덧나지 않게
제 잎 떨궈 덮는다
맘과 달리 뻣뻣해진 몸
가면 갈수록 푸석거려
닦지 못한 눈물이
하얗게 흩날린다
뿌리는 상처를 끌고
발맘발맘
내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