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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7596384
· 쪽수 : 230쪽
· 출판일 : 2024-10-22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미니픽션]
사라진 등산화
스콜
메콩강 모래성
[단편소설]
세한歲寒 노다지
덕배상회
비전 꽃 줌마
[옴니버스 소설]
회화나무
별미집 오순례
퍼즐피스 Puzzle piece
[평설]
김종혁의 소설세계
세태소설의 정통성과 총체성┃유한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21세기 한국경제 새태소설의 새 면모!!!
한국인의 민족 원형적 사유 환기
김종혁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변별적으로 재미있다. 그
재미는 세태소설이라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발정신에서
비롯되고 있지만, 우리 삶과 직결되는 경제문제에 촛점
이 맞추어있는 절실함 때문이며, 한국소설의 전통적인
문학적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인의
저변에 깔려 있는 토속신앙을 환기해주고, 그것을 원형
질적인 우리 민족의 원형적 사유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
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새
로운 소설 장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지켜볼 일이다.
-유한근 평설 중에
수원채권관리부 각 팀별 일일 조회가 끝났다. 한 팀이 손뼉을 치면서 구호를 외쳤다.
“오늘도 파이팅!”
박진기 부장더러 들으라는 소리였다. ‘흠, 저 팀은 지난달 회수 목표를 미달했었지. 월말이라 문 팀장이 팀원들을 닥달하는구먼’ 박 부장은 파티션 너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들은 체를 해줬다. 이윽고 직원들이 채권추심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대한은행 채권관리붑니다. 이달에 변제하시기로 한 돈 틀림없겠죠? 연기해달라구요? 안 됩니다. 벌써 몇 번쨉니까?”
박 부장은 채권관리부가 마치 매미가 우는 여름 숲속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매미는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근방에 있는 모든 매미가 합창하듯 울어 댄다.
직원들이 채무자들과 다투는 전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글쎄,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은행 돈을 왜 썼어요? 혹시 애초부터 떼먹을 작정 아니었습니까? 근데, 욕지거리는 왜 하세요?”
채무자들이 은행 빚을 못 갚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심직원들은 제 코가 석 자인지라 일부러 심한 말로 채무자들의 속을 긁어댄다. 고객 친절 응대 요령을 아무리 반복 교육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계약직 사원들은 회수실적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부앗김에 육두문자라도 내뱉으면 직원들은 얼씨구나 말꼬리를 붙잡고 더 약을 올린다. 출근해서 두 시간 남짓 채무자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직원들은 목도 아프고 피곤해진다.
“에잇! 아침마다 이게 무슨 짓이람. 정말 못해 먹겠네. 우리 담배나 한대 핍시다”
누군가 볼멘소리를 내뱉으면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흡연실로 몰려간다. 담배도 피고 믹스커피도 마시면서 머리를 식힌다. 소위 커피 브레이크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세 명의 사내들이 객장 소파에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가운데 사내는 짧은 해병대 머리, 각진 얼굴에 눈초리가 고약했다. 사월 하순, 아직은 날씨가 쌀쌀한데도 연두색 반 팔 티셔츠를 입었다. 이두박근이 위압적이었다. 금목걸이를 늘어뜨렸고 왼 손목에는 금팔찌도 찼다. 건달이었다. 양옆의 두 사람은 부하들 같았다.
“지에미 씨부럴, 손님이 왔는데 언놈하나 아는 척을 안 하는구만”
박 부장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얼핏 사내가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싶어 파티션 위로 고개를 들었는데 그만 사내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아니, 직원들이 다 어디로 갔담?’ 넓은 사무실에 경리여직원 혼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사내의 험악한 표정으로 볼 때 밖에 있는 직원들을 부르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박 부장은 세 사람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사내의 얘기를 들어주다가 담당직원이 들어오면 인계해 줄 요량이었다.
“손님, 죄송합니다. 직원들이 담배 피러 잠깐 자리를 비웠나 봅니...”
박 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내가 벌떡 일어섰다. 사내는 박 부장이 고개를 반쯤 쳐들어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그는 종이쪽지를 박 부장 얼굴에 대고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야! 씨발놈아, 니가 여그 댓빵이냐? 이게 머시여? 경매예고통지서? 내 점빵에 차압을 부치겠다고? 이런 호로개쌍노무새끼덜을 콱!”
사내의 탁한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컸다. 박 부장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욕질을 해대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황당해서 픽 웃음이 나왔다. 그게 휘발유 통에 성냥불을 던진 꼴이 됐다.
“요런 쥐 좆만한 새끼가 비웃네. 엣다, 또 웃어봐라”
사내는 다짜고짜 박 부장의 멱살을 틀어쥐더니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갈겨 버렸다. 박 부장은 바람에 날린 휴지조각처럼 나가 떨어졌다. 경리 여직원의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사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널브러진 박 부장을 잡아 일으켰다. 사내가 넥타이 매듭을 틀어쥐었기 때문에 박 부장의 고개가 뒤로 젖혀져 덜렁거렸다. 밖에 있던 남자 직원들이 기겁을 하고 달려 들어왔다. 직원들과 사내와 박 부장이 한 몸뚱이처럼 엉켰다. 직원들의 꾸짖는 소리와 사내의 욕설이 뒤섞여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박 부장의 머리 위로 사내의 주먹이 대중없이 날아들었다. 박 부장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부하직원들 앞에서 조폭에게 두들겨 맞고 있다는 게 창피하고 분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자기만 둘러싸고 있어서 사내의 주먹질을 피할 수도 없었다.
“문 팀장, 김 대리, 놔! 놓으라고! 비키란 말야”
박 부장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말리던 직원들이 엉겁결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싸움판이 일대일로 맞붙는 투견장처럼 돼버렸다. 사내의 커다란 손아귀에 멱살이 잡혀있는 박 부장의 모습은 안쓰럽다 못해 불쌍해보였다. 사내는 잠시 멈칫하더니 박 부장의 멱살을 잡아채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박 부장의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는 것을 여실히 봤다. 그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제쳤다가 사내가 잡아채는 반동을 이용해서 사내의 인중을 박치기로 받아 버렸다.
‘빡’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윽!” 사내가 신음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맥을 놓고 바닥에 쓰러진 그 자의 안색이 허옇게 변해서 사람들은 혹시 죽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곧 입가로 흰 게거품도 흘러나왔다. 소파에서 히죽거리고 있던 부하들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났다. 그들은 같이 넘어진 바람에 사내의 몸 위에 볼썽사납게 올라앉은 박 부장을 거칠게 밀쳐내고 사내를 안아 일으켰다.
“형님. 정신차리시요. 형님!”
그때 여직원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부장님, 얼굴에 피!”
박 부장의 왼쪽 이마에서 붉은 핏방울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박 부장의 얼굴과 흰 와이셔츠가 금세 피로 물들었다. 직원들이 박 부장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혔다. 여직원들이 휴지로 지혈을 하고 박 부장의 얼굴을 닦았다. 그사이에 사내도 정신을 차려 객장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때 누가 신고했는지 경찰관 네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