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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97785337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4-05-20
책 소개
목차
p. 4~50 장성광업소 전경
p. 52~56 총무관리부
p. 57 기획부
p. 58~59 안전감독부
p. 60~63 공무부
p. 64~65 수갱부
p. 66~79 장성생산부
p. 80~91 철암생산부
p. 92~103 철암선탄장
p. 104~107 품질관리부
p. 108~110 노동조합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이 땅의 광부에게 보내는 헌사
기록은 사라짐을 전제한다.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다면 기록의 필요성이나 가치가 크게 주목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록의 저변에는 불멸에 대한 욕망이 잠재하는 셈이다. 이 욕망은 유한한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여 심지어 그 당시에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아예 지워버리고 싶었던 순간조차 세월이 흐르면 그리워하고 그 시간을 다시 꺼내 보고 싶게 만든다. 전제훈 작가의 “숭고한 기억들”은 그런 바탕 아래 출발했다. 비록 땀과 눈물을 바친 고된 일터였지만 그 일터가 문을 닫게 되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현실 앞에서 그들은 힘들었던 나날이라도 이제는 기억되기를 바라고 기억의 장치로 사진을 원했다. 전제훈 작가가 2024년에 문을 닫는 장성탄광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계기다.
전제훈 작가는 그동안 광부 사진집을 세 권이나 출간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는 1983년에 첫 직장인 함태탄광에서 화약 관리 기사로 출발하여 지금까지 41년 동안 광산과 탄광에서 일해온 내부자라는 점에서 가장 적절한 기록자라고 하겠다. 지하 4,400m의 채굴 현장에서 광부들과 팀을 이루어 일하면서 막장의 삶을 최일선에서 체험하고 관찰하며 체화한 전제훈 작가는 그 치열한 현장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큰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막장에서의 노동을 오랫동안 함께 견뎌온 동료로서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정직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사진으로 남기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 4,400m를 내려가면서, 그곳에서 종일 탄가루에 묻혀 힘든 노동을 하면서,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 몸을 씻으면서, 그렇게 하루, 한 달, 1년, 10년을 함께 하면서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어떤 믿음과 동지애를 갖게 되었는지 그간 발표한 사진집에서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특히 이번 장성탄광 작업은 폐광을 앞두고 마지막을 기록하는 임무였다. 작가는 지난 40년간 찍어온 그 어떤 사진보다 더 간곡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직장을 잃고 떠나야 하는 460명의 임직원에게 가장 소중한 사진기록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던 작가는 학교를 졸업할 때 받았던 졸업앨범을 떠올렸다고 말한다. 졸업앨범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길든 짧든 하나의 과정을 마무리 지었다는 증표였다. 학창 시절의 매 순간이 즐겁고 아름다웠을 리 만무하겠지만 훗날 앨범을 들춰 보면 거기 어설펐던 학창 시절의 자신이 소환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파편들이 그리움으로 코팅되어 추억을 불러온다. 따라서 졸업앨범은 익숙한 교정과 수학여행과 교내 행사 사진,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물사진이 실마리가 되어 그 시절로 들어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전제훈 작가가 펴내는 장성탄광의 졸업앨범은 오랜 시간 그곳에서 일해온 사람들이 한 시대를 보내온 흔적이다. 탄광의 주변 풍경을 비롯하여 탄광 내부와 그곳의 주인공이었던 광부들의 인물사진 등으로 구성되었다. 인물사진은 함께 일했던 부서별 막장별 단체 사진과 검은 배경 앞에서 촬영한 개별 인물사진들로 구성했다. 한때는 산업의 동력이란 칭송을 듣다가 오늘날에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백안시하는 분위기에서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연차적으로 폐광의 수순을 밟고 있는 우리나라의 석탄산업은 한편으로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어떤 영광도 끝끝내 지속될 수 없음을 실감케 한다. 영속될 수 없음에 대한 쓸쓸함은 활기를 잃은 현장과 파이팅을 외치는 단체 사진에서도 숨김없이 드러난다.
화순탄광에 이어 올해 장성탄광이 문을 닫고 내년에 도계탄광마저 문을 닫으면 이 땅에서 광부는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이 사진집은 오랫동안 광부를 촬영해온 전제훈 작가가 광부에게 헌사 하는 감사의 선물이 될 것이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이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언약이기도 하고 평생을 바쳐 일한 막장에 대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전제훈 작가가 사명감과 정성을 들인 작업의 결과는 미학적이고 현학적인 해석이 없어도 오래 바라보게 만들고 가슴에 차곡차곡 감동이 쌓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이 기록이 남음으로써 현실에서는 사라져도 결코 망각 되지 않을 불멸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글/ 김녕만 다큐멘터리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