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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선교/전도
· ISBN : 979119780622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23-03-13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 내 아버지는 평양에서 돌아가셨다
1부 변화될 희망이 이제 생겼다
1장 참 ‘보르항’ 예수를 진짜로 믿자
2장 ‘사람 죽이는’ 이상한 종교
3장 성령께서 몽골에 교회를 세우시다
4장 초콜릿과 커피보다 맛있는 기적
2부 사랑은 이래야 정말 느낀다
5장 누군가 기도하면 누군가 살아난다
6장 밥과 스팸이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7장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인생
8장 “먹어봐야 맛을 알지? 하나님도 그래”
3부 사람을 바꾸는 찬란한 열정
9장 ‘사랑과 결혼’이라는 이름의 순종 시험
10장 “내가 안다, 네게 사랑이 없다는 거”
11장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교회 개척
12장 몽골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다
4부 사랑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13장 북한에 자신의 모든 걸 주고 온 사람
14장 사랑하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15장 내 마음의 나침반을 자랑하다
16장 선교사를 후원한 교회가 받은 축복
5부 내가 없어지면 누가 남을까?
17장 “최 선교사님이 잘 가르치셨다”
18장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긴 사람들
19장 손자 교회들이 전달하는 선한 생명력
20장 이제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나가는 글 : 최순기 선교사님이 사랑한 성경
부록 : 몽골의 기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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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들어가는 글 중에서
몽골이 외면할 수 없는 분
최순기 선교사님이 사망한 다음, 몽골에서 장례를 치르기까지 보름이나 걸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양에서 죽은 외국인의 시신을 북한 정부가 내줄 수 없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특별한 ‘비밀’이 있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전례가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최 선교사님이 집사로서 다녔던 LA영락교회의 고(故) 김계용 목사님도 1990년에 평양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최 선교사님의 사인(死因)도 같은 것이었다. 김계용 목사님은 북한에 묻히셨다고 들었지만, 나는 아버지마저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나는 부고를 듣자마자, 선교사님의 가족과 함께 우선 몽골로 갔다. 우리는 북한 대사관, 미국 대사관, 중국 대사관, 그리고 몽골 정부까지, 접촉할 수 있는 외교적 통로를 최대한 들쑤셨다. 동생 최홍기 장로는 최 선교사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북한 정부에 보내 ‘몽골에 묻히는 것’이 고인의 바람이었음을 알렸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s Rice)도 이 일을 보고받고 시신 송환에 힘을 보탰다.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은 몽골 주재 미 대사관의 시신 인도 요청 전달에 협조해주었다. 중국도 시신이 중국을 경유하는 데 동의하였다. 전례가 없다던 북한 정부도 의외의 국제적 관심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 일의 마지막 열쇠는 정작 몽골 정부였다. 몽골 정부가 최순기 선교사의 장례식과 매장을 몽골에서 하는 것을 처음부터 승인한 건 아니었다.
20세기 초부터 구소련의 개혁개방선언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가 선포될 때까지, 무려 70여 년간 소련의 영향 아래에서 공산국가였던 몽골 정부는 외교적으로 남한보다 북한과 가까웠다. 당연히 북한 눈치를 먼저 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북한이 고향인 대한민국 사람이면서 미국 시민권자인 개신교 목사가 평양에서 죽은 복잡한 경우다. 공산주의 사상과 불교와 무속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몽골로선 자연스러운 입장이었다.
나는 몽골 외교부를 찾아가 호소했다. ‘교회식’으로 말하자면, 공무원들 앞에서 ‘간증’한 것이다.
“뭉흐 자르갈은 영적 아버지 최순기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 몽골에서 방황하던 수많은 청소년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고아처럼 살았고, 먹을 게 없어 도둑질한 적이 있었으며, 몽골의 거리에서 동네 아이들과 깡패처럼 싸움박질이나 하던, 정말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순기 목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저를 사람답게 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목사님 덕분에, 저처럼 변화된 몽골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를 미국에 유학까지 가게 해주셔서, 이제는 꿈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최순기 목사님은 몽골 사람 아니고, 한국인이고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나 같은 몽골 청년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신 훌륭한 분입니다. 이런 분을 어떻게 우리 몽골이 외면할 수 있습니까? 우리 몽골 사람이나 다름없는 분입니다! 무엇보다 내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도 몽골에 묻히기를 바라셨고요. 시신을 몽골에 모셔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공무원들은 내 호소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내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여러 나라의 외교적 의견도 들었고, 무엇보다 뭉흐의 말을 듣고서 우리가 결정했습니다. 최순기 씨의 몽골 안장을 허락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몽골 정부에서 묘지도 제공하겠습니다. 잘 모시고 와서, 장례를 잘 치르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는 외침이 바로 터져 나왔다. 북한도 이제는 더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북한 당국은 시신을 보내주기로 했다. 단, 별도의 부검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요구했다. 가족은 동의했다.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다
3월 31일, 최순기 선교사님의 관이 북경을 경유해 드디어 몽골에 도착했다. 나는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신을 모셔둘 병원 영안실에서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만났다. 시신은 외상없이 깨끗했다. ‘혹시?’ 하며 ‘의심’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최순기 선교사는 심장마비로 쓰러지신 게 분명한 듯했다.
최 선교사가 쓰러진 곳은 북한의 동업자와 함께 식사를 한 다음, 호텔을 벗어나 인근 지하도로 향하던 길 위였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더니 쓰러졌다는 동업자의 설명을 들었다. 훗날에 안 것이지만, 최 선교사는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었음에도 북한 방문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때가 네 번째 방문이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김정일 위원장까지 만나 직접 가공한 보석을 선물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그 보석을 내게 보여주셨다.
“뭉흐야! 이거 내가 직접 깎은 건데, 다음에 북한 김정일 위원장 만나면 선물할 거야! 좋은 일이 생기도록 너도 기도해달라!”
최 선교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집사일 때 보석 가공을 하던 보석 세공 전문가이자 보석 사업가였다. ‘007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가 애용한 액세서리도 그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보석 세공 기술을 북한에 소개하고, 관련 사업을 평양에서 펼치고 싶어했다. 그 이면에 감춘 은근한 목적은 물론 선교였고 통일이었다. 그래서 고위당국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는데,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만 것이다.
2006년 4월 5일 수요일 오전 10시, 재몽골한인선교사회(KMEM), 그리고 몽골 교회의 연합체이자 새생명교회가 주축인 몽골복음주의협의회(MEA)가 공동으로 ‘사랑의 빛 센터’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 다음, 최 선교사는 가조르트 묘역에 안장되었다.
새생명교회는 1994년, 최순기 선교사가 중년의 나이에 몽골 선교사로 헌신해 몽골에서도 가장 추울 때 오셔서 개척한 교회이다. 새생명교회는 몽골 전역에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했고, 몽골 교회의 뿌리 중 하나가 됐다. 이제는 내가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교회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전율한다.
이 책은 한 알의 밀이 몽골 땅에 떨어져 죽어 수많은 새가 깃들 만큼 많은 열매를 맺은 역사의 기록이다. 나는 그 열매 중 하나로서, 몽골 교회가 추모하는 최순기 선교사님에 대해 쓴다.
어머니의 오빠, 내 외삼촌은 스님이었다. 공산 치하에서 불교가 심하게 핍박받을 때 죽임당한 승려 중 한 분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없다는 무신론을 배웠고,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부처에게 기도하는 ‘모순’을 보고 자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믿었던 몽골의 공산주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정치도 경제도 무너졌다. 불교는 내게 ‘효과 없음’이 증명(?)되고 있었다. 러시아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아이들은 쏘다녔고, 얼마 남지 않은 ‘훔칠거리’가 이 동네와 저 동네 아이들이 패싸움을 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형들을 따라다니며 도둑질하고 싸움질했다. 그렇게 방황하던 나는 인생을 ‘변화’시켜줄 누군가를 바라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거칠게 살면서도, 속으로는 ‘아무 희망 없이, 이대로 내 인생을 보낼 순 없다’고 몸부림쳤다.
“기독교인들은 좋지 않다. 이 종교의 사람들은 자살을 권유하고 죽기도 한다.”
하필 그 무렵에 자살 사건이 알려졌는데, 자살한 사람이 교회 다니고 있었으니 기독교가 자살하는 종교라는 식의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자살한 사람은 교회를 다닌 적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 최순기 선교사님이 자주 해주셨던 말씀을 언급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다. 선교사님이 우리에게 강조하셨던 말씀이 다름 아니라 ‘잘 죽자’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진짜 죽으라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라면 그 말씀이 무엇일지 금세 눈치챌 것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