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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중국-이슬람 문화의 융합과 세계화의 길)

김영호 (지은이)
뱃길
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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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중국-이슬람 문화의 융합과 세계화의 길)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디자인/공예 > 공예/도자
· ISBN : 9791197824937
· 쪽수 : 387쪽
· 출판일 : 2025-01-27

책 소개

청화백자는 유럽의 식탁에서 금속제 식기류를 밀어내더니 이제는 세계인의 식기류와 장식품으로 사랑받는다. 21세기 들어서도 세라믹은 여전히 첨단소재로서 그 효용성을 자랑한다. 이 책은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동서양의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통해 파생된 세계적 변화를 말한다.

목차

(1) 천년신비의 청화백자

중국-이슬람 문화의 융합물
<말과 활이 건설한 인류역사상 최대의 몽골제국>
<비단길 통해 동서양 교역시대 개막한 몽골제국>
<청화백자는 중국-이슬람권 교류가 낳은 상징물>
<청화백자 개발로 도자에 그림 그리는 기법 도입>

600년간 어둠에 갇혔던 청화백자
<런던에서 팔린 청화백자가 출생의 비밀 푼 열쇠>
<영국-미국인 손에 의해 햇빛 찾은 원대 청화백자>
<한족의 반감으로 역사의 미궁에 빠졌던 원대청화>
<원대청화 400억원에 팔리자 중국전역서 가짜소동>

1,500년 자도 징더전
<1,500년간 가마 불 꺼지지 않은 청화백자 요람지>
<19세기 런던 스모그보다 심했을 징더전 대기오염>

(2) 이슬람권의 중국도자 보고

터키-이란 궁전의 수집열풍
<중국도자 발달사 한눈에 보는 터키 톱카프 박물관>
<베트남-일본 도자기도 다수 소장한 톱카프 박물관>
<황금동굴처럼 생긴 이란 아르데빌의 중국도자기 집>
<전란-약탈로 사라진 이란 아르데빌 사원의 소장품>

(3) 이슬람 청화의 세계화

벽화로 승화한 청화
<시공과 문화 뛰어넘어 상통하는 이슬람 문양>
<서쪽으로 간 이슬람 청화는 건축자재로 발달>
<포르투갈에서 옥내외벽화로 승화한 청화타일>
<리스본과 포르투는 청화벽화의 옥외전람회장>

(4) 금단의 나라 도자왕국

오랑캐라 치부 대면조차 거부
<중국의 발명품 화약 들고 중국 침탈한 서유럽>
<목숨 건 도발 잇달아도 열리지 않던 중국시장>
<죽음이 기다리던 동방세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

포함 앞세운 서유럽의 개항압력
<포르투갈이 인도서 중국 가는데 15년 걸렸다>
<중국에 도발한 첫 유럽국가 포르투갈의 연패>
<태평양 건너 마닐라서 중국에 도발한 스페인>
<중국 문 열려다 연패로 끝난 네덜란드의 도발>
<100년 늦게 중국진출 시도했던 영국의 연패>
<아시아 보물찾기에 뒤늦게 덤볐던 유럽국가들>

(5) 해군 사령탑 접수한 해적

무적함대 격파한 해적수괴
<무적함대 무찌른 영국해군 부사령관은 해적두목>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로 무너진 동방무역 독점>

명말 바다는 해적의 독무대
<해군총수로 발탁된 정지룡은 해적출신의 거부>
<해적출신 명군 : 네덜란드-해적 연합의 대회전>

조선침략 주력부대는 왜구
<이순신한테 참패한 일본군 함대 총사령관은 해적>
<왜구는 몰락한 가문의 무사들이 가담한 해적무리>

(6) 조선도공이 개발한 일본백자

세계 두번째 백자 개발한 조선
<조선은 중국보다 150여년 늦게 청화백자 개발>
<청화백자-채색자기 크게 발전시키지 못한 조선>
<터무니없는 극찬 넘친 달항아리 엉터리 감상법>

이도다완의 불편한 진실
<중국 흑유완 수입 막히자 조선에 눈 돌린 일본>
<조선 막사발을 찻잔으로 사랑한 일본의 예찬론>
<이도다완은 정치적 가치가 창출한 역사적 산물>

도자수출의 산실 조선인 가마
<임진왜란은 조선도공 납치해 백자 개발한 자기전쟁>
<조선도공이 일군 백자가마가 일본 도자수출의 산실>
<유럽에서 중국도자기 누른 조선인이 만든 일본자기>
<조선인이 만든 백자에 중국색채 입힌 일본채회자기>

(7) 동방제국 세운 유럽소국들

서유럽의 동방무역 쟁탈전
<오스만 봉쇄 뚫고 세운 포르투갈의 동방제국>
<인구 200만명의 포르투갈이 건설한 해양제국>
<지구를 둘로 나눠 가졌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40년 걸려 얻어낸 포르투갈의 마카오 거주권>
<일본의 대외교역 200년간 독점했던 네덜란드>
<일본서 10년만에 빈손 철수한 영국동인도회사>

포르투갈-네덜란드의 유산
<일본요리 덴뿌라, 카레는 포르투갈이 남긴 유산>
<가톨릭 탄압하면서도 유럽 배워 선진국 발돋움>
<쇄국불구 화란의 무역창구 통해 유럽 배운 일본>

(8) 신분과시의 상징물 청화백자

수요 넘치자 가짜까지 판쳐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이 중국도자기 직접 수입>
<청화백자 유럽에 알린 포르투갈 상선 습격사건>
<일본-페르시아 도자 중국제로 속여 판 네덜란드>
<청화백자 쟁반으로 천장 장식한 포르투갈 궁전>
<미국 백악관 벽난로 장식했다 사라진 명대자기>

중국 배우고 따르자는 사조
<유럽귀족들이 열광했던 중국풍의 문화적 현상>
<유럽대륙 휩쓴 중국문물을 배우자는 계몽주의>

(9) 세계의 ‘은’은 중국으로 갔다

은이 대항해 시대의 국제통화
<스페인을 사상최강의 제국으로 만든 포토시 은광>
<동아시아 은화결제 시장경제에 참여한 유럽국가들>

세계 은의 종착역 중국
<수출해서 번 은으로 세금 내는 은납제 실시한 명조>
<중국서 통용된 스페인 국왕 얼굴 새긴 멕시코 은화>
<16세기 세계의 은 빨아들여 지은 중국의 만리장성>
<유럽 은과 중국 금 바꾸면 환차익이 2배나 생겼다>

(10) 일본판화에 매료된 유럽

문학, 정원에도 풍미한 일본풍
<대중적 인기 업고 예술로 승화한 일본풍 미술>
<정원, 문학, 음악에도 일본풍 일으킨 자포니슴>
<워싱턴 벚꽃 길은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보답>
<일본의 채색 목판화를 접목한 인상파 화가들>
<격정의 고흐, 햇빛의 모네는 일본판화 수집광>

(11) 멀고 먼 중국 가는 길

조공과 고두례가 기다렸다
<조공무역에 적극 참여한 유럽국가는 네덜란드>
<포르투갈-네덜란드의 조공품에는 상아, 서각도>
<청조 초기 130년간의 서양사신 접견은 11건뿐>
<대영제국 특사에 무릎 꿇는 굴욕적 의식 강요>

세계변화 거스르다 패망
<영국특사가 청황제 알현하려 대동했던 기술자들>
<유럽인의 상업활동지역 제한하고 여성거주 금지>
<중국전통도자 밀어낸 주문제작한 유럽풍 광채자>
<오랑캐한테 안 판다 큰소리치다 종막 내린 청조>

(12) 유럽의 뒤늦은 백자개발

청화백자 모방품 델프트웨어
<델프트웨어는 중국 청화백자 모방한 생활용기>
<대항해 시대의 영광 말하는 네덜란드 청화도기>
<미술작품에 나타난 네덜란드 도자기와 생활상>

중국백자의 비밀 푼 유럽
<청화백자의 신비 풀려던 메디치 가문의 실패>
<친위대 600명 청화백자 127점과 바꾼 수집광>
<중국보다 천년 늦게 태어난 유럽 최초의 백자>
<중국백자의 천년독점 유럽서 반세기만에 붕괴>

(13) 서방의 중국역사-문화 강탈

영-불연합군이 파괴한 원명원
<원명원은 이름난 정원 모두 본뜬 천하의 으뜸>
<영-불연합군이 부순 중국의 서양식 궁전-정원>
<영-불이 약탈한 동물 머리상 150년만에 귀향>
<아버지는 파르테논 약탈, 아들은 원명원 파괴>

‘중국역사’ 털어간 서방열강
<서방열강이 약탈해간 중국 문화재 1천만여점>
<은화 몇닢 주고 역사의 보고 돈황석굴 털어가>

(14) 유럽문물에 눈뜬 중국

황제 곁의 유럽 선교사들
<궁정고문 위촉되고 베이징에 성당 지은 신부>
<이탈리아 선교사 랑스닝은 궁중화가의 최고봉>
<선교사들이 연주한 서양음악 즐겼던 중국황제>

중국황실의 유럽시계 소장열풍
<유럽은 시계탑, 중국은 종루-고루가 시각 알려>
<광저우에 시계공 데려가서 현지공장 차린 영국>
<유럽 기계기술과 중국 공예가 연출한 탁상시계>

(15) 일그러진 서울의 얼굴

서울의 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잔디밭 입은 서울광장은 놀이터도 광장도 아니다>
<돌판 깔려고 수령 100년 은행나무 가로수길 없애>
<편심배치로 대칭미와 균형미가 파괴된 광화문광장>
<경복궁 관통하는 직선의 중심축 파괴된 광화문광장>

저자소개

김영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일보 견습기자 입사, 편집부, 경제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 세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한국방송공사(KBS) 이사 월간지-일간지 기고가 활동 내일신문. 경인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농민신문, 세계일보 등 10여개 신문에 <김 영 호 칼럼> 1,000여편 기고 (최근순)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신구대학 강사 (최근순). 세종대학교 재단이사. <저서> ‘지구얼굴 바꾼 인종주의’, ‘태평양시대의 세계패권’, ‘경제민주화 시대 대통령’, ‘언론권력 언론비평’, ‘건달정치 개혁실패’, ‘와르르 공화국’<IMF 부른 정책실패 고발서>, ‘관권경제 특혜경제’, ‘경제의 현장’ <최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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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600년만에 햇빛 찾은 원대 청화백자>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몽골족의 원나라는 청화백자를 만들지 못했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굳어 있었다. 청화백자는 몽골족의 원대가 아닌 한족의 명대에 개발되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송대기원설도 힘을 얻고 있었다. 청화백자는 송대부터 제작되었는데 원대에는 제작기법이 끊어졌다가 명대 들어 그 기법을 다시 찾아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몽골족의 지배로 상처를 입었던 한족의 자존심이 원대 청화백자의 존재 자체를 역사에서 지웠던 것이다.

그 까닭에 가짜의 전성시대라는 청나라 패망 이후의 민국시절에도 원대 청화백자는 가짜를 만들지 않았다. 그만큼 원대 청화백자 부존재설이 확고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1929년 푸젠(福建-복건)성 출신 한 상인이 청화백자 향로화병 한 쌍을 들고 베이징과 홍콩의 골동품 가게마다 찾아다니며 팔려고 애를 썼지만 허탕 치고 말았다. 그 화병 병목에 지정11년(至正十一年-1351년)이라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의 연호가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그 명문이 이 향로화병은 가짜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먼 여정 길에 오른 그가 영국 런던에서 중국 미술품 수집가를 찾아가 팔았다. 영국과 미국 전문가들이 그 향로화병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 청화백자는 1320년대 후반에 개발되었다는 주장이 지배적 학설로 굳어졌다. 그로써 600년이 넘도록 역사의 미궁에 갇혀 있던 원대 청화백자가 햇빛을 보게 되었다. 그에 따라 데이비드 화병으로 알려진 원청화운용문쌍이향로병(元靑華雲龍紋雙耳香爐甁)은 청화백자의 제작년도를 따질 때 기준으로 삼는 편년자기(編年瓷器)로 자리를 잡았다.


<청화백자는 중국-이슬람권 교류가 낳은 상징물>

원대 들어서는 무슬림의 주문에 맞춰 이슬람 문양과 기형을 본떠서 만든 도자기가 늘어나면서 중국 도자기에 이슬람 문화가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그처럼 중국과 이슬람권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중국문양에도 아라베스크(Aarabesque)의 바람이 불었다. 아라베스크는 이슬람 문화권이 고안해낸 전통적인 장식양식으로서 식물의 줄기, 꽃, 잎을 도안화한 문양을 말한다. 그 아라베스크의 영향을 받은 중국문양이 오늘날에도 중국도자기를 꽉 채운다.

도자기 위에 코발트로 푸른색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개발되었다. 당시 서아시아, 특히 페르시아에서는 도기에 코발트로 청화를 그린 일종의 청화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도자기는 회백색이거나 황백색이 띠는데다 낮은 온도에서 구은 저도자기라 쉽게 깨지고 품질이 조악한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청화의 발색이 좋지 않았던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즈음 서아시아는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 내는 고도자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 연유로 이슬람 상인들이 서아시아에서 청화의 원료인 코발트를 중국에 가져가서 단단한 순백의 백자 위에 푸른색 문양을 그리는 청화백자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 요구대로 징더전(景德鎭-경덕진) 도공들이 이슬람 기형을 본떠서 만든 태토 위에 코발트로 푸른색의 이슬람 문양을 그린 도자기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청화백자의 탄생이었다. 그 때 중국은 자토에다 일정비율의 고령토를 혼합함으로써 송대의 백자보다 더 희고 더 단단하고 더 크고 더 얇은 백자를 만들고 있었다.


<청화백자 개발로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장식기법 도입>

원대 들어 중국의 도자기술이 한 단계 더 격상되었다. 자토에다 고령토를 배합함으로써 순백의 고도자기를 만들어 냈으니 그것은 오늘날에도 첨단소재로 쓰이는 세라믹의 개발이었다. 중국이 그 세라믹으로 이슬람 문화가 깊게 베인 기형을 만들고 그 위에 서아시아에서 수입한 코발트로 이슬람 영향을 짙게 받은 문양을 그렸다.

그것은 중국의 세라믹과 서아시아의 코발트가 결합해 찬란한 보석청(寶石靑)을 자랑하는 청화백자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청화백자야 말로 비단길을 통해 이뤄진 중국과 이슬람권의 문화-경제교류가 융합되어 태어난 대표적, 상징적 유산이다. 그 청화백자는 동-서양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고 나아가서 세계문화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청화백자가 태어남으로써 도자기 위에 문양과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회화적 기법이 도입되었다. 그 이유로 청화백자의 탄생이 도자발달사에서 신기원을 이룩하는 획기적 사건으로 꼽힌다. 당삼채가 3~4 가지 색채의 도료를 사용했지만 단순히 도색의 효과만 냈지 회화적 기법을 쓰는 장식효과는 내지 못했다. 원대 이전에는 도자기를 옥기를 만들 듯이 다듬어서 장식효과를 내는 조각적 기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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