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와 락슈미

1부

데비 5
인간의 자리 27
바람이 끝나는 곳 51
협곡으로 74
안녕? 안녕 92

2부

이주 준비 111
이주가 중단되다 129
아타종 155
편지 168

에필로그 189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저녁이었으므로, 데비는 ‘숨이 막힐 듯 더운 여름’이라는 구절을 떠올렸다. 책의 구절을 떠올리면 데비의 몸은 자연스럽게 그 구절에 맞는 신체 상태로 변화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었다. 어떤 소리, 자동차들과 철로 위를 지나는 전철, 혹은 건물 안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고 하거나 혹은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가닿고 싶어 하고, 더 가까워지려던 그 의지들이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소음들 말이다.

황색과 갈색의 그러데이션으로 이루어진 털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고, 삼각형 모양의 얼굴이 데비를 향해 불쑥 가까워졌다. 꼬리가 움직일 때마다, 살랑,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텁텁하고 메마른 공기 속에서 제 몸의 일부를 흔드는 생명체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