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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한국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8042408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2-11-15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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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지난 며칠간 추적거리며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은 소강상태여서 성욱이 여의도역에서 내려서 회사 정문까지 달려오는 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회사까지 오는데 거쳐야 하는 왕복 6차선 건널목 초록 신호의 마지막 5초를 놓치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7시 40분. 아침회의에 이미 10분 늦었다. 어제 과음한 탓에 알람 시계를 붙잡고 20여 분을 더 잔 때문이었다.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 땀이 날 정도로 달려왔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구토가 올라왔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가방에 있던 생수를 꺼내 조금 마셨다. 마포 오피스텔을 나오며 냉장고에서 꺼냈던 물은 어느덧 미지근해져 있었다.
이 시간에는 유일증권 본사의 6개 엘리베이터 중에 하나를 타기 위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22층 법인영업부 대회의실까지 5분 안에 도착할 것이다. 이 회의실 가운데는 30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 회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가운데가 뻥 뚫린 이 테이블은 실리콘밸리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 모습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단지 다른 점은 애플 본사 건물의 원형이 아니라 기다란 직사각형이라는 것이다. 테이블의 양쪽 끝에 각각 한 명이 앉을 수 있으며, 양옆으로 각각 14명씩 앉게 되어 있다. 회의실이 워낙 크다 보니 자리마다 마이크가 배치되어 있다. 멀리 앉은 사람도 쉽게 들을 수 있도록.
유일증권 본사 건물은 여의도공원을 마주하고 죽 늘어서 있는 고층빌딩들 중에 하나로, 철제 프레임을 제외한 외관을 전부 유리로 마감한 모던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인영업부 대회의실 외벽은 전부 통유리로 처리되었다. 대회의실의 이 외벽 앞에 서면 여의도공원 전체를 아래 45도 각도로 한눈에 보는 것이 가능하다. 공원 북쪽에 위치한 사모정과 제일 남쪽에 위치한 자연생태의 숲이 어떠한 시야 방해도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시원한 개방감은 몇몇 회의 참석자들에게 가끔 공중에 떠 있다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 여기에 복도 쪽 벽 또한 통유리로 시공되어서 사람들은 이 법인영업부 대회의실을 ‘어항’이라고 부른다. 이 거대한 어항 안에서 법인영업부 소속 영업직원 10명과 리서치센터 소속 스트래터지스트, 이코노미스트, 애널리스트 (기업분석가)를 포함하는 15명이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모여 회의를 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성욱은 본인의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이른 아침에 형사가 찾아와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경찰서에 출두할 것을 요구하고 갔다는 것이 뭔가 찝찝하고 불안했다. ‘뭣 때문일까?’ ‘왜 강력계 형사들이 정 과장에 대해서 묻지?’ ‘정 과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정 과장이 무슨 불법에 연관된 것일까?’ ‘아니면 혹시 누구에게 납치되었나?’ ‘월요일 저녁에 같이 식사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여러 가지로 고민해봐도 뚜렷한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리곤 정 과장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스스로 자제했다. 이유도 모르는 상태에서 괜한 전화로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욱은 여전히 묵직한 머리로 그렇게 한동안 골똘히 생각하다가 경찰서에 가서 이유를 알기 전에는 이런 상상들이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전까지는 최대한 업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오늘 오후에는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성욱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마친 뒤 23층 본인 자리에 와서 졸고 있었다. 숙취가 여전한데다 아침 형사들의 방문에 따른 불안감도 모자란 잠을 만회하고 싶은 본성은 누그러뜨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건물 외벽 유리에 머리를 기대고 비몽사몽 중에 책상 위의 유선전화에서 울리는 벨이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점심시간에 유선전화가 울리는 일은 흔치 않다. 이 시간에는 받지 않아도 실례가 아니기에 그냥 무시하려고 하였으나, 전화는 집요하게 울렸다. 눈을 뜨고 번호를 본 성욱은 약간 긴장하였다. 법인영업부 김 상무였다. 전화를 받을 것인지 약간 고민한 성욱은 수화기를 들었다. 성욱이 자리에 있다는 걸 알고 전화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무슨 급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한갓 전화 받는 것 때문에 김 상무와 괜한 트러블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예 상무님.”
“윤 과장, 식사하셨어?”
“예, 구내식당에서 했습니다.”
“나도 오늘은 구내식당에 가야 할 것 같은데 반찬이 괜찮았으면 좋겠구먼……. 아무튼 오전에 보내준 자료는 잘 받았어요.”
“예, 뭐 더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성욱이 약간 찔리는 마음으로 말했다. 권 형사와 김 형사가 돌아간 이후 성욱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서에서 부르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그의 어두운 상상력을 자극해 집중력을 흐트러뜨렸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했다. 그래서 신경 써야 하는 법인영업부 요청자료도 대충 작성한 후 상희에게 마무리해서 보내게 했던 것이다.
“윤 과장이 보내준 자료를 보면 좋은 얘기만 쓰여 있는데, 지금 기관이 원하는 건 안 좋은 얘기들이라고. 리스크 관리를 하려고 하는 거니까…… 뭐가 안 좋아서 계속 언더퍼폼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주식들과 비교하여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현상) 하는 건지 체크하려는 거지. 오늘도 건설주들 중에 혼자서 빠지고 있는데 뭐 알고 있는 거 없나?”
성욱은 김 상무가 열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윤 과장 자료를 보냈던 기관투자자에게 한 소리 들은 듯했다. 동성건설 주식의 계속되는 상대적 약세에 관해 추가적인 정보가 없는 성욱은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오전에도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회사도 잘 모르겠다고 오히려 저에게 물어보고, 다른 건설 애널리스트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어떤 특정 펀드가 회사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작정하고 파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벌써 정보망에 잡혔어야 하는데, 참 이상하네…… 윤 과장, 이거는 우리가 한영이나 고산건설 대신에 동성을 채워 넣자고 쎄게 세일즈한 거니까, 동성이 적어도 다른 건설주들 수익률은 따라가야 한다고. 지금같이 심각하게 언더퍼폼하면 앞으로 기관투자자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지금 상당히 민감한 상황이야.”
김 상무가 최대한 화를 참으며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성욱은 더욱 부담스러웠다. 애널리스트는 기업분석 잘하는 것보다 주가를 맞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격언이 새삼 그의 마음에 와닿았다. 동성건설 혼자서 이렇게 빠지다가는 정말 잘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잠깐 스쳤다. 애널리스트들은 매년 1년짜리 근로계약서를 갱신하기에 회사가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증권사와 계약하지 못하면 바로 실업자 신세가 된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시장에 동성건설이 인명피해가 난 사고를 은폐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서대문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몇 명이 사망했다는 거야. 이게 신빙성이 있는 얘긴가? 요새같이 뉴스가 빠르게 퍼지는 세상에 이런 사고를 은폐하는 게 가능해?” 김 상무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었고, 성욱은 조금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요새는 인명사고 은폐는 CEO 형사처분 사항이기 때문에 불가능하구요. 뭐 지난 30~40분 동안에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지 않은 한은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제가 조금 전까지 동성건설 사람들과 통화했거든요.”
성욱의 대답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 없이 김 상무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동성그룹 관련돼서 뭐 들은 게 있나? 지금 보면 건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성그룹주들이 약하잖아. 기관들이 왜 그런지 궁금해하는데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네. 전체 그룹 주들이 출렁거리니까 온갖 루머는 난무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분명치 않은 거지.”
성욱은 김 상무의 말에 동성그룹주들의 주가를 급히 거래시스템에서 체크해 봤다. 동성건설을 비롯해 동성텔레콤, 동성전자, 동성기계, 동성제약, ㈜동성 전부 2~3%씩 하락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네요. 저는 건설만 신경 쓰고 있었어서 동성그룹의 다른 주식들이 같이 약한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룹에 대해서 특별히 들은 것은 없습니다.” 성욱은 자기도 지금 알아서 약간 놀라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지금 시장에는 동성그룹 관련해 여러 가지 루머가 난무하는데, 그중 하나는 동성석유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는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가 동성의 2차전지 사업을 반대한다는 거야. 윤 과장은 뭐 들은 거 없나? 윤 과장 석유에 친한 사람들 있잖아……”
성욱은 잠깐 생각한 후에 천천히 대답했다.
“상무님, 이것도 말씀하신 대로 상식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지분 가지고 있는 회사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걸 원하는 주주가 있을까요?”
“그래 나도 알아. 그런데 루머는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는 기존 탄소 에너지 사업을 하니까 동성그룹의 2차전지 사업을 반대하고, 그것 때문에 동성그룹주가가 빠진다는 거야.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기관들이 궁금해하니까 한번 좀 알아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루머들 때문에 그룹주들이 이렇게 빠진다는 게 좀 믿기 어려운데요.” 성욱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구도 빠지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니까 여러 루머들이 생기는 거지. 또 한 가지 나오는 얘기는 회장님이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까 두 형제가 회장 승계를 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거지.”
“예? 서로 회장이 되기 위해 경쟁하면 아무래도 지분경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을 거고, 그러면 주가는 오히려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성욱이 혼란스러운지 다시 물었다.
“음 지금 나오는 얘기는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치부를 들춰내기 위해 싸운다는 거야. 과거와 현재의 비리와 불법을 서로 폭로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러면 주가에는 좋을 수가 없지.” 김 상무가 다시 바리톤으로 얘기했다.
“아, 그런가요…… 동성건설이나 건자재 직원들에게서는 그런 낌새는 전혀 없는데…… 하긴 그룹 승계 관련 일들은 시장이 더 빠르게 알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기관들이 많이 궁금해하니까 얘기한 것들 좀 알아봐 주세요. 동성그룹 관련해 어떤 얘기라도 들리면 바로 알려주고.”
“예 알겠습니다. 뭐 잡히는 거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