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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8565907
· 쪽수 : 314쪽
· 출판일 : 2024-01-01
책 소개
목차
. 추천사
. 머리말 - 진정한 평화를 위해 혼신을 다한 시간
. 프롤로그 - 분단 없는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노래 불러 주세요
. 남은 시간 없는 남북 이산가족
. 특수임무 수행자의 굳은 마음
. 하얼빈에서 울리는 우리 가락
. 남한과 북한, 그리고 우회 공작원의 청춘
. 베이징으로, 국경의 새벽으로
. 종교의 이단, 체제의 이단
. 녹색 초청장에 새겨진 북한 문채(文彩)
. 방북 승인 없는 평양 방문
. 힘찬 구호의 나라, 힘 빠진 공화국의 인민들
. 관자놀이를 겨냥하는 총구
. 밤을 지키는 지령 받은 여성 동무
. 기묘한 풍경과 향기의 산, 묘향산
. 그리운 고향, 해설피 금빛
. 평양에서 보는 달, 고향과는 다른 달
. 장춘진달래소년예술단의 리듬과 한국 소설가의 리듬
. 동두천 몽키하우스의 울음소리
. 특명, 김일성 시신을 확인하라
. 숨이 막히는 고통, 내 청춘의 절벽 끝
. 청주 가중리 선산에서 무릎을 꿇고
. 이산가족 교류 촉구 회견, 광화문을 울리는 통곡
. 오랑캐꽃을 찾다
. 에필로그 - 영결식 마치고 기억으로 쓰는 역사전으로
. 엮은이의 말 - 《특명》, 우리의 근현대사를 스토리텔링하다
책속에서
현미 누님 영정 앞에 머리를 조아리니 누님의 〈보고 싶은 얼굴〉이 다시 입에 고인다. 눈을 감은 내 눈에 현미 누님의 젊을 적 모습이 어른거린다. 현미 누님이 눈을 뜨고 걸어 다니신 ‘허황한 거리’가 내가 절하는 동안 지나간다. 폐허로 허황했던 거리가 지금은 휘황한 거리로 변한 서울 거리의 모습으로 허청허청 지나간다.
현미 누님은 평생을 황황하게 헤매며, 동생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평양 거리에서 장춘의 거리로 옮겨간 현미 누님의 거리, 가족을 이어주는 거리였다. 그 거리는 핏줄처럼 누님의 가족을 연결해 주고 있다. 특히 동생분은 대동맥 핏줄이었다. 가족은 끊어지면 안 된다. 가족은 죽어서도 연결돼 있다.
나는 1998년 현미 누님과 북한의 동생을 장춘에서 만나게 해 주었다.
(……)
1996년 봄, 나는 장춘 관성조선족 소학교에서 명예 교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진달래소년예술단의 단장도 맡아 성의를 다해 일을 꾸려나갔다. 이번에는 우리 민족 소년 소녀들의 공연이었다. 민족의 정서가 훨씬 짙어지고 중국의 향기가 혼합된 흥미로운 무대가 될 것이었다. 나는 소년 소녀들의 기예도 좋지만, 우리의 가락, 우리의 민요, 국악을 살린 프로그램도 많이 넣어달라고 예술감독에게 주문했다.
나는 진달래예술단의 공연 일정을 구성하고 프로그램을 확인하는 바쁜 와중에도 전화를 기다렸다. 북한 고위 관리, 최재경의 전화였다.
(……)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습격에 어찌할 줄 몰랐다.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보던 다른 북한군이 소리치듯 말했다.
― 종간나 새끼, 여기가 어디라구 골을 굴리네? 방북 증명서 내놓라우!
― 그런 거 없습니다.
― 뭐래? 증명서 없이 평양에 왔다? 이 새끼가 총알맛을 보고 싶어 환장했구만.
― 네, 저는 방북 증명서 같은 것 없습니다. 초청장이 있습니다.
― 아니, 통일원에서 발행한 거 보여 달라우. 방북 증명서!
북한 군인의 목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다른 군인은 아예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들었다.
― 이보라우, 여기가 어디멘지 모르나? 평양이야, 평양!
그랬다. 나는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모래알 같은 흔적도 없을 것이다.
― 안 되겠구만. 이 종간나, 뜨건 총맛 좀 봐야 정신이 나겠구만.
그가 권총을 빼 들어 관자놀이를 겨누다가 총구를 내 목에 갖다 댔다. 차가운 총부리가 내 목에 닿으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얼음장 같은 총부리는 내 몸을 급격히 달궜다. 나는 곧 터질 것 같은 화산처럼 뜨거워졌다.
(……)
우리는 이런 식으로 7층까지 올라갔다.
7층 에스컬레이터의 마지막 계단이 넘어가는 순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로 앞에 김일성의 시신이 있는 것이었다. 상상했던 유리관이 아니라 그냥 큰 침대에 누워 있는 형국이었다.
― 수령님께 경배!
누워 있는 김일성의 머리맡에 서 있던 여성이 말했다. 여성은 두 명으로 한 명은 나를, 다른 한 명은 이효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 서 계시면 아니 됩니다. 위대하신 수령님 곁을 천천히 돌면서 경의를 표하십시오!
멀뚱히 서서 김일성을 내려다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발, 오른팔, 머리, 왼팔 곁에서 두 번씩 경례하십시오.
너무 긴장하여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여성 호위 군인이 말하는 대로 시신 곁을 돌았다. 돌면서 허리를 굽혀 두 번씩 절했다. 절하면서 김일성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또렷하게 새겨지도록 눈도 깜박이지 않고 경배하며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