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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문학의 이해 > 한국문학론 > 한국작가론
· ISBN : 9791191215717
· 쪽수 : 736쪽
· 출판일 : 2023-02-27
책 소개
목차
머리말
01 거장을 만나다(1982~1990)
면접
라울
굿모닝 미스터 오웰
버스 수업
꽃과 꽃
진화의 완성
마트료시카
02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1991~2000)
《화두》
바다거북이
우연의 의도
<아이오와 강가에서>
내러티브
03 예술론의 핵심(2001~2010)
《광장》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40억 년의 기억
프로레슬링
제2병참단 세탁부대
에피파니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대인상
윤회와 허밍
화자 = DNA∞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04 마지막 수업(2011~2018)
경운조월(耕雲釣月)
팔순 식사
오동나무
절대문감
무언의 유언
서간체 〈화두론〉
최인훈 작품 연보
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생님의 목소리 음정이 높아지고 말의 속도는 빨라졌다.
― 문학은 감각 예술하고는 다른 차원의 예술이에요. 표현 기호 자체가 감각 기호가 아니에요. 우리 인류 문명의 DNA를 압축해놓은 기호라고 누누이 이야기했죠. 그 나라 말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농축돼 있어요.
말에는 그 민족의 습관과 전통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음악의 표현 기호인 음표가 인류의 감각을 농축하여 담고 있다면, 언어에는 풍속이 아이콘처럼 묶여 있다, 풍속을 담은 채 새로운 감각의 방법을 찾는 예술 장르가 문학인 것이다. 문학은 당연히 윤리에까지 감각을 미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
거기에 학교 버스가 세워져 있다. 선생님은 우리를 버스에 오르게 했다. 다른 과목처럼 휴강해도 괜찮을 텐데 굳이 이렇게 해서라도 강의를 하시려나. 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무슨 헤프닝처럼 느껴져 즐겁기도 하다. 예술이란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낯설면서 즐거운 것.
(…)
선생님은 우리를 버스에 모두 태우고 《문학과 이데올로기》를 펼치셨다. 우리는 《문학과 이데올로기》를 낭독하고, 선생님은 설명하셨다. 이런 모습은 마치 관광버스에 오른 여행객 같았다. 우리는 여행을 앞둔 승객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좌석에 앉았고, 선생님은 가이더처럼 운전석 뒤에 서서 여행지를 소개한다. 문득,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가 펼쳐진다. 우주여행선에 올라탄 우리 학우들, 그리고 우주선 선장인 최인훈 선생님, 여행의 목적지는 ‘문학’이라는 불모지, 이데올로기라는 행성…, 우리는 우주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림 같은 바다, 바다 같은 그림>
두 문장이 있다. ‘그림 같은 바다, 물결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바다 그림’. 이 두 문장은 예술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 두 문장이 만나는 지점을 ‘P’라 한다면 P점이 의미하는 바가 예술의 뜻이다.
‘그림 같은 바다’라는 말은 실제 바다를 보고 하는 말이다. 그다음, ‘물결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바다 그림’은 마음속에 있는 바다의 모양을 그려놓은 것이다. 하나는 그림을 보고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실물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것을 왜 그림 같다고 할까? 마음에 드는 바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림 같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물결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바다’. 이것은 실물이 아닌, 실물을 대신한 그림자에 대해서 정말 진짜 같다, 이런 말이다. 그 앞에 물결 소리가 들릴 것 같다는 뜻은, 그림이 아니라 진짜 같다, 거기에 걸어 들어가면 빠져 죽을 것 같구나, 라는 말이다. 그림을 칭찬하는데, 꼭 진짜 같다는 말을 한다. 바다의 그림인데, 진짜 바다인 것 같아서, 거기서 금방 물결 소리가 들릴 것 같다, 혹은 거기에 손을 담그면 손이 적셔질 것 같다, 이런 말을 한다. 하나는 진짜 물건을 보고 그림 같다고 하는 게 칭찬이고, 진짜 아닌 것을 보고는 진짜 같은 것에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두 문장을 만족시키는 문장을 지으시오, 라는 문제에 제대로 답하면 바로 예술적인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