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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상
· ISBN : 9791199202641
· 쪽수 : 836쪽
· 출판일 : 2025-10-01
책 소개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로 자신을 재발명하다.
과학사의 고전으로 꼽히는 마리오 비아졸리의 《궁정인 갈릴레오》(1993)가 32년 만에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갈릴레오가 절대주의 궁정문화 속에서 어떻게 코페르니쿠스주의와 수학적 자연철학을 정당화했는지, 풍부한 1차 사료를 통해 분석한다. 이 책은 종교의 박해에 맞서 진리를 수호한 불굴의 영웅을 그리지 않는다. 절대주의 궁정 사회의 복잡한 후원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궁정인’ 갈릴레오에 관해 말한다. 과학적 진리는 투명한 진공상태에서 순수한 이성의 활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갈릴레오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적 발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재구성했는가이다. 갈릴레오는 직접 개량한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후, 이를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고 그 대가로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라는 전례 없는 작위를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지배하던 시기, 수학자는 우주의 원리에 대해 논할 자격조차 없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메디치 궁정이라는 제도적 기반과 군주의 권위를 통해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열었다. 비아졸리는 이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하며, 근대 과학의 탄생이 단순히 새로운 관측 도구나 이론의 등장이 아니라, 지식 생산자의 사회적 위치와 정당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갈릴레오, 자신의 지위를 설계하다.
수학자에서 철학자로: 신분 상승의 전략
16~17세기 유럽의 학문 세계는 엄격한 위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연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과 원인을 탐구할 권한을 독점했고, 수학자들은 천체의 운동을 계산하고 예측하는 기술자에 불과했다. 수학은 추상적 존재를 다루는 학문으로 여겨졌기에, 물리적 세계의 원인을 설명할 자격이 없었다. 비아졸리는 갈릴레오를 이러한 학문적 위계의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수학자로 출발한 갈릴레오가 자신의 우주론적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단순히 관측 증거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에게는 철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가 필요했다. 목성 주위를 도는 네 개의 천체를 ‘메디치의 별’로 명명하고 코시모 2세에게 헌정한 것은, 천문학적 발견인 동시에 정치적 선물이었다. 이 발견은 갈릴레오에게 ‘대공의 철학자 겸 수학자’라는 유례없는 직함을 안겨주었고, 비로소 그는 우주의 구조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를 확보했다.
궁정이라는 무대: 과학과 스펙터클
새로운 직함을 얻은 갈릴레오는 궁정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망원경 시연회를 열어 귀족들에게 천체를 보여주었고, 부양성 논쟁과 태양 흑점 논쟁에서 실험과 관찰을 동원한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의 논쟁 방식은 단순히 학술적 증명이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고 청중을 설득하는 수사학적 기교가 빛나는 일종의 공연이었다. 궁정은 갈릴레오에게 이중적 공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연철학을 펼칠 사회적 무대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의 변덕에 좌우되는 불안정한 기반이었다. 대공의 총애는 그에게 막강한 후원 밑천을 제공했지만, 후원 체계의 논리는 결국 갈릴레오를 극적인 몰락으로 이끌기도 했다.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을 때, 갈릴레오가 큰 곤경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대공의 철학자라는 지위 덕분이었다. 그러나 1633년 재판에서 그가 감내해야 했던 굴욕 또한 총신의 몰락이라는 궁정 정치의 잔혹한 의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안한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이 이론은 여전히 극소수 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었다. 갈릴레오 시대에 이르러 지동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단순히 망원경 관측 덕분이 아니었다. 관측 증거는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비아졸리가 제기하는 질문은 명료하다. 새로운 과학 이론이 기존 체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논증만으로 충분한가? 갈릴레오의 사례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코페르니쿠스주의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학문 분과의 위계 자체가 재편되어야 했다. 수학자가 단순한 계산자에서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철학자로 격상되어야 했다. 갈릴레오는 메디치 궁정의 권위를 발판 삼아 이러한 변화를 추동했다. 이 책이 밝히는 핵심은 지식의 생산과 수용이 인식론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갈릴레오는 관측과 실험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그 방법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과의 협상이 필요했다. 궁정은 대학과 달리 전통적 학문 위계가 상대적으로 유연한 공간이었고, 군주의 권위가 지식의 정당성을 보증할 수 있는 장이었다. 새로운 과학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자의 사회적 정체성 또한 필요했던 것이다.
과학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
이 책은 1993년 출간 이후 1000회 이상 인용되며 과학사와 과학기술학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비아졸리의 독창성은 갈릴레오를 전례 없는 시각으로 재구성한 데 있다. 그는 갈릴레오의 경력을 분석하면서 과학의 사회적·인식적 정당화 사이의 관계를 권력의 언어로 읽어낸다. 그가 그려낸 갈릴레오는 인식론적·사회직업적 계층의 상위로 올라가기 위해 다양한 후원 밑천을 동원하는 전략가이다. 이를 통해 비아졸리는 후원 네트워크에 기반한 과학의 사회체계, 오락과 상연의 성격을 띠는 논쟁 문화, 사적 관계에 기반하던 신뢰 개념이 사라진 후 비독단적 형태의 과학 담론이 출현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비아졸리의 분석은 과학혁명을 단순히 이론의 교체가 아니라 지식 생산의 사회적 조건이 재편되는 과정으로 제시한다. 이는 과학사 연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으며,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준거점이 되었다.
진리는 어떻게 승인되는가
오늘날 과학은 대학, 연구소, 기업, 정부의 복잡한 후원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한다. 연구비 지원, 특허 경쟁, 학술 정치, 대중의 신뢰 확보는 현대 과학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과학 지식의 생산과 정당화가 순수하게 인식론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갈릴레오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이 책은 과학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새로운 지식이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이며,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흥미로운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리는 어떻게 승인되는가? 그 과정에서 사회적, 정치적 요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 질문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목차
● 감사의 말
● 프롤로그 궁정의 문화와 과학의 정당화
● 1장 갈릴레오의 자기형성
● 2장 발견과 에티켓
● 3장 궁정 논쟁의 해부학
● 4장 공약불가능성의 인류학
● 막간극 세상의 극장, 로마
● 5장 궁정의 혜성
● 6장 갈릴레오 재판의 구조화
● 에필로그 후원에서 아카데미로: 하나의 가설
● 옮긴이의 말
● 참고 문헌
● 찾아보기
책속에서
우주론의 극적인 변화가 수용되려면 먼저 우주를 연구하는 분과학문의 체계 자체가 과감하게 재편되어야 했다. 알다시피 이것은 무척이나 오랜 과정이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이 정당화되었다는 것은 자유학예 간의 위계 재편이 성공했음을 의미하며, 그에 따라 수학자의 사회적 지위 또한 상승하기에 이르렀다. ... 분과학문의 전통적 위계는 대학 내에서는 확고하게 수용되었지만 궁정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궁정은 소속된 분과학문이 아닌 군주의 호의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곳이었다.
갈릴레오는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사용했다. 메디치가를 곤혹스럽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얻을 수 있는 밑천을 활용해 외부의 신뢰를 확보했고, 그렇게 끌어낸 동의를 활용해 메디치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자신의 발견을 그들의 이미지와 연결했다. 이 과정이 끝날 무렵 갈릴레오는 서서히 자신의 마차를 메디치가에 동여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의 권력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갈릴레오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소에 기반하여 정립한 운동과 변화 이론만이 아니라 논증 개념에도 충격을 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부양성을 자연운동의 한 사례로 보았지만, 갈릴레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운동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를 제한했고,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우주론적 틀 속에서 발전시킨 원인 분류 체계에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