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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지은이), 이혜진 (옮긴이), 배세진 (해제)
우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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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제로 포인트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서양철학 일반
· ISBN : 9791199651111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6-05-13

책 소개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다. 가자에서는 학살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디지털 영주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대화를 사유지로 만들었다. 헤겔이 '인륜'이라 부른 것—예의범절, 정직, 사회적 연대 같은 사회를 지탱해 온 불문율—은 우리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지젝은 이 풍경에 ‘제로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인다. 제로 포인트는 ‘바닥’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제로 포인트란 우리가 기존 체제 안에서는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하강 나선에 갇힌 그 시점이다.
트럼프의 외설적 포퓰리즘은 ‘도둑질을 멈춰라!’라는 구호 아래 ‘향유의 도둑질’ 논리를 가동하며, 그를 떠받치는 디지털 봉건 영주들의 사유화된 공유지에서 우리는 지대를 바치는 ‘생산이용자’로 전락한다. 자국의 환상이 헛되다는 진실을 피하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이스라엘은 가자를 파괴하는 현실 속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지젝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함으로 인하여 공격받는다. 이 모든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수치심과 존엄마저 빼앗으려 든다.
『제로 포인트』는 이러한 현실을 위로하지 않는다. 분명한 대안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베케트의 문장처럼—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가자에서는 학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우크라이나의 도시는 폐허가 된다. 트럼프는 다시 백악관에 돌아왔고, 유럽 곳곳에서 극우가 약진한다. 메타버스의 영주들이 우리의 대화를 감시하고,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선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슬라보예 지젝은 이 질문 앞에서 멈춰 선다. 『제로 포인트』는 답을 서둘러 내놓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답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사유의 자리, 그 ‘제로 포인트’로 우리를 데려간다.

[다시, 처음부터]
‘제로 포인트’는 1922년 레닌이 쓴 비유에서 온다. 새로운 산 정상에 오르려다 후퇴한 등반가는 시작점, 즉 영점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과 유연성을 잃지 않는 한, 등반가는 결국 실패하지 않는다. 베케트의 문장처럼―‘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지젝이 말하는 제로 포인트는 그러나 바닥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더 나빠질 것이다. 제로 포인트란 우리가 기존 체제 안에서는 출구를 발견할 수 없는 하강 나선에 갇힌 그 시점이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쉬워진 시대, 우리가 도달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젝, 가자 앞에 멈춰 서다]
이 책의 2부는 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2023년 10월 17일, 지젝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단에 섰다. 하마스의 공격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그의 22분짜리 연설은, 헤센 주 반유대주의 담당관에 의해 거듭 방해받았다. 그가 말한 것은 균형 잡힌 중도의 입장이고, 바로 그래서 그는 공격받았다.
2부 「말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는 그 사건 이후 지젝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가자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사건이 끝난 뒤 지나고 나서 명확성을 부여하는 회고 대신, 혼란과 절망 한가운데에서 사고가 전개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라캉의 수치심, 마렉 에델만의 유산, 푸코의 이란, 진실과 허구의 변증법―지젝 특유의 철학적 수사는 가자라는 구체적 비극 앞에서 다시 한번 현실과 날카롭게 충돌한다.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말만 하지 말고 뭔가 해!’ 이 말은 지혜처럼 들린다. 지젝은 이 ‘어리석은 지혜’를 뒤집으라고 말한다. 뭔가 하지만 말고 제대로 된 말을 해. 상황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고 진실을 말하는 일은, 행동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는 것도, 환상이 헛되다는 진실을 피해 ‘잔혹한 현실’ 속으로 도피한 결과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행동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명명할 언어다.
이 책의 부제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가 가리키는 곳이 바로 여기다. 트럼프와 메타버스, 코스트코 가이즈와 시진핑의 신보수주의, 푸틴의 ‘전통적 가치’와 가자 지구의 잔해 사이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에세이들은 결국 하나의 같은 질문을 향한다.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가자를 위한 철학]
한국어판에는 정치철학자 배세진이 ‘가자를 위한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해제를 더하였다. 알튀세르-발리바르의 이론 전통 위에서 지젝을 읽는 이 해제는, 지젝 철학의 특징을 ‘현행성actualite의 철학―체계를 구축하지 않고 매 정세에 온 힘을 다해 개입하는 철학―’으로 짚어낸다. 그리고 묻는다. 가자 학살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우리에게 좌절할 시간이 있는가? 행동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이고, 적절한 장소는 어디인가?
답은 다소 평범하지만 그래서 무거워진다. 바로 ‘오늘날, 지금 여기.’ 그리고 이 ‘지금 여기’를 우리는 지젝을 따라 ‘제로 포인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점에서 다시]
『제로 포인트』는 위로하지 않는다. 분명한 대안이 있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모든 것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는 자리에서, 사유와 행동이 다시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영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만 우리는 그곳에 도착한 적이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목차

- 『제로 포인트』에 대하여
1부: 다시 원점으로- 제로 포인트- 다 잘될 겁니다…농담입니다!- 모든 말이 동등하지는 않다- 히스테리 환자들이 꿈만 꾸는 것- 허공에 흩어진 세계- 메타버스의 영웅들- 죽음의 경련
2부: 말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 분석하지 말 것, 언급하지 말 것- 모두가 들을 때 말할 것, 아무도 없을 때 철회할 것- 듣지 않을 것, 멈추지 않을 것- 다시 또, 요약: 안전선을 넘어 투쟁의 현장으로
-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설
- 가자를 위한 철학은 무엇인가?: 『제로 포인트』, 그리고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 행보에 관하여

- 주석

저자소개

슬라보예 지젝 (지은이)    정보 더보기
헤겔 변증법, 라캉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론을 결합해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구축해온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대학교 철학과의 선임 연구원이며, 스위스 유럽 대학원(European Graduate School, EGS)에서 철학 및 정신분석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미국 뉴욕 대학교의 독일학 분야 국제 석좌교수 직함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진보에 반대한다』, 『잉여 향유』, 『멈춰라, 생각하라』,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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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영국 워릭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우리말과 외국어를 함께 다루는 번역에 매력을 느껴 글밥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정치와 세계사를 특히 좋아하고, 사회과학과 인문과학 분야 전반에 두루 관심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19세기 귀족 연감』, 『러시아 내전』, 『일단 앉아볼까요』, 『호루라기에 너무 큰돈을 쓰지 마라』, 『불평등의 담론』, 『잘못된 전략』, 『연민에 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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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세진 (해제)    정보 더보기
정치철학자이자 문화연구자. 프랑스 파리-시테 대학교(舊 파리-디드로 7대학)에서 정치철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연세대학교의 매체와예술연구소 연구원이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강사이며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비데, 피에르 마슈레, 피에르 부르디외, 주디스 버틀러의 현대 프랑스 정치철학을 사회과학 내 문화연구의 틀에서 연구·번역하고 있다. 저서로 『금붕어의 철학: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와 함께 어항에서 빠져나오기』가 있으며 에티엔 발리바르의 『개념의 정념들』, 폴린 그로장의 『가부장 자본주의』, 루이 알튀세르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자크 비데의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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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제로 포인트는 그러므로 상황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지점이 아니라―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훨씬 악화될 것이다―우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하강 나선에 갇혀, 기존 체제하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그래서 트럼프의 상습적인 무례한 언행과 명백한 거짓말이(그의 범행은 말할 것도 없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이데올로기적 승리를 거둔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체제 전복적인 저항으로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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