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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99780446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6-06-18
책 소개
목차
서문
1. 왜 그리스도인인가?
원인과 이유
2. 왜 예수인가?
걸림돌이지만 꼭 필요한 특수성
3. 무엇으로부터 구원받는가?
무엇을 위해 구원받는가?
“나는 그들이 생명을 얻게 하려고 왔다”
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속주의, 영성, 그리고 성령
5. 무엇이 다른가?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6. 왜 교회인가?(그리고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교회, 여러 교회,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
7. 희망이 있는가?
강하고 담대하라!
후기
책속에서
나는 이 책을 신앙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경계에 있는 이들, 나아가 교회에서 변두리에 있는 이들을 위해 썼다. 내가 겪어 본 바로는, 한때 그리스도교 사회였던 이 사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식이 되었든 여기에 속해 있다. 어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가장자리에 머무르며 스스로 공동체에 섞이지 못한다고 느끼지만, 아직 공동체를 완전히 떠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또 다른 이들은 교회에 잘 다니고 예배와 활동에 참여하지만, 영성의 측면에서나 지성의 측면에서나 신앙의 주변부를 서성인다. 어떤 이들은 특정 신앙 공동체와 인연을 끊은 지 1, 2, 3세대가 지난 이들이다. 그들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앞선 세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자신들이 그리스도교와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삶에서 여러 일을 겪으며 ‘종교’religion를 헤아려 보곤 한다. 내가 대학교에서
지난 35년 동안 가르쳐 왔던 학생 다수는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상대로 싸우지 않는다. 40년 전, 교회가 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구조의 한 축이던 시절 나와 또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교에 맞서 거세게 저항했던 모습과는 다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는 그리스도교에서 꽤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도리어 그리스도교에 호기심을 보이곤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잘 알지 못하며 그나마 안다고 여기는 내용조차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요란하게 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올바르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챌 정도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앞서 언급한 이들 모두를 위해 썼다.
왜 그리스도인인가? 그 원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제가 태어난 역사와 사회라는 특정 환경에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저를 그리스도인으로 붙들어 두기에 충분한 ‘이유’를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떠날 이유를 수두룩하게 제공했지요. 분명 저는 어쩌다 보니 일종의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들은 완전무결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유들은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지탱해 준다는 말은 제 교수 생활을 유지해 준다거나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제 삶 자체를 떠받친다는 뜻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무렵 존재했던 ‘그리스도교 세계’는 몇 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긴 해도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출생이라는 우연한 원인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적잖은 이들이 그리스도교 환경에서 태어나서 그 영향 아래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윗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지요. 그 결과 오늘날 “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무게는 이제 전적으로 ‘원인’이 아닌 ‘이유’라는 쪽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신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던져야 할 정말 중요한 질문은 ‘당신이 말하는 신, 혹은 하느님은 정확히 어떤 분입니까?’입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신들로 넘쳐 납니다. 지
금도 새로운 신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요. 북미는 세계에서 새로운 신들이 가장 많이 태어나는 토양입니다. (신앙을 제대로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혹스럽게도) 그 신들은 자주 ‘그리스도교’
라는 이름표를 달고 등장하지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해 호모 사피엔스, 이른바 지혜로운 종이라는 인간들이 무엇에 엎드려 절하는지, 어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설득당해 광신도들이 되는 과정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질 겁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성서는 ‘종교’를 매섭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주장할 때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치지요. 성서는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신’이라는 말을 쓰고 있고, 그 안에는 여러 문제가 되는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학대하는 신, 성행위에 굶주린 신, 자기 힘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제한 없이 발휘하는 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라는 달콤한 말을 건네는 신들의 정체를 성서는 알았고 경계해 왔습니다. 성서는 언젠가 예수가 인간과 체제를 두고 한 말을 신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합니다.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마태 7:16)
이는 어떤 신을 따르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그 신을 검증하라는 뜻이지요. 적어도 이 점에서 성서에 바탕을 둔 신앙은 세계의 모든 위대한 종교들과 공통점을 지닙니다(여기서 위대한 종교란 시간의 연단을 이겨낸 종교를 뜻합니다). 이 종교들은 모두 신을 대하며 그 존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한계를 짓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신, 혹은 하느님이라는 흔한 용어나 개념을 지고의 존재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관념으로 내버려두지 않았지요. 우리 경험에 훨씬 더 맞닿고 그 뜻이 선명하도록 하느님께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신 사건(현현)이나 뜻을 밝히신 말씀(계시), 혹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뚜렷하게 보여 주는 본보기와 짝을 지어 이해 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달리 말하면 이 종교들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보편을 설명하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