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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의 이해
· ISBN : 9791199780477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26-09-28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나의 찬란한 심연
슬픔이 틔운 꽃
다정한 내면
신의 진리는 삶이다
오 그대, 나를 굴복시키는 빛이여
친애하는 망각에게
벌떼처럼 들끓는 신경
신은 저 너머에 있지 않다
온갖 갈래의 고요
우리 안의 늑대들을 죽여 주소서
수백만 개의 자잘한 망각
인물 색인 및 소개
책속에서
7년 전, 나는 ‘사랑이 나를 반겨 주었다’Love Bade Me Welcome라는 글을 썼다. 이 글은 다른 제목으로 작은 문학 잡지에 출간되었고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글은 인터넷에 공유되고, 선집과 모음집에 실리고, 교회 예배와 독서 모임에서 낭독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지금도 때때로 그 글을 처음 접한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오곤 한다. 대부분 문학과는 등지고 살았다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편지에는 다채로운 소감과 명민한 통찰, 강렬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그 어느 순간보다 내게 큰 보람을 선사해 주었다. 그렇다면 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마주한 절망, 글을 더는 쓸 수 없었던 시간, 사랑에 빠졌던 순간, 불치병을 선고받은 날, 그리고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지극히 현대적이고 세속적인 기질에도 불구하고) 끝내 ‘하느님’이라고 부르게 된 존재 앞에서 마음이 산산이 무너지게 된 이야기였다. 내 삶 전체가 여덟 쪽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 글은 내 삶 밑바닥을 뒤흔든 변화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쩌면 글 자체보다도 글이 남긴 파문이 내게 또 다른 깊은 변화를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시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사람들의 무심한 태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미국에서만 이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독자’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글을 쓰는 법을 익힌다는 의미도 있다. 시가 읽히기를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를 창조하는 영감의 소리를 오롯이 받들려면, 그래서 시가 진정한 시가 되려면, 시인은 외골수 수도자처럼 창조의 원천에 철저히 몰두하면서 ‘전혀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원천이 말을 트도록 내면의 고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이는 아무리 세속적인 시인이라 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시를 포기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사실 어떻게 포기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 나를 반겨 주었다’를 읽은 분들이 보내 준 편지들은 ‘독자’를 의식하게 했고, 내 안에 그분들과 대화하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나라에는 오늘날의 종교 언어와 형식에 실망한,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 역시 자기를 자신 밖으로 밀어내는, 영혼을 불태우는 존재의 열기를 느낀다. 그들은 여전히 집요하게 끌어당기는 신이라는 유령의 중력에 이끌린다. 나는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싶었다. 나처럼 삶과 의식의 원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확신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쓰고 싶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추구하고 응답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 곧 자신의 존재, 삶 속 재료, 그리고 ‘존재 자체’가 맞물리는 교차점이다. 영감은 이 세 요소가 충돌하거나 결탁할 때 찾아온다. 이러한 의식의 위기 가운데 태어난 작품은 세상에서 실패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 평가는 당신의 허영심에 상처를 내거나, 부풀릴 것이다. 그러나 그 평가는 작품이 태어난, 작품을 만들어 낸, 작품의 근원인 그 의식의 위기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자기 영혼에 깨어 있는 예술가에게는, 이 의식의 위기야말로 귀 기울여야 할 단 하나의 부름이다. 나는 여기에 신이라는 이름 외에 붙일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른 이름을 붙이거나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않는다. 이 진리 때문에 예술가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중압감을 받는다. 그 애초의 부름, 의식의 위기를 진정으로 듣지 못했거나 온 힘을 다해 응답하지 못했다면, 세상의 가장 드높은 찬사조차 빛을 잃고 거부로 인한 상처에는 냉혹한 자기 인식이라는 소금이 뿌려질 터이기 때문이다. 이 내면의 심판관을 잃어버린 예술가는 자신에게 찾아왔던 첫 부름을 더는 듣지 못한다.
우리의 정신은, 신이 우리를 이전에는 다다르지 못했던 차원으로 이끌어 올리도록 자신을 내맡기기보다는, 끊임없이 신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한다. 삶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우리는 경험이 그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고, 낯익은 (정직하게 말하면 이미 고갈되어 버린) 충동을 따라 창작을 이어 간다. 가장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피할 수 없이 찾아와 나를 부수어 의미들로 끌려들어 가게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이것이 사랑이 뜻하는 바다. 시를 한 편 더 써 내려가는 일 역시 바로 그러해야 한다. 안팎에서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절박함, 그리고 온전히 통제할 수 없이 오묘하게 작용하는 그 힘에 몸을 맡기는 일. 모든 사랑은 타성과 습관을 혐오한다. 시는 사랑의 한 종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