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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신앙생활 > 신앙생활일반
· ISBN : 9791198927231
· 쪽수 : 220쪽
· 출판일 : 2025-02-20
책 소개
목차
2005년판 서문
초판 서문
1.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일
기이한 기억
하느님의 기이한 일 - 십자가를 통한 생명
선한 금요일 - 어리석은 이들의 축제
성육신과 수난이라는 추문
사순절, 시련과 모순의 시간
하느님의 어리석음
2. 그의 상처를 통해 우리는 치유되었다
이디스 시트웰 - '아직도 비가 내린다'
아픔과 고통에 대한 왜곡된 접근
연대와 변모
이디스 시트웰 - '추위의 노래'
사회적 십자가
3.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예수의 배경
하느님 나라 신학,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의 회복
예수 - 세금, 음식, 성전
비정치적인 예수?
십자가의 정치적 의미
4. 하느님께서 부어 주신 사랑
제자가 되는 훈련
희년의 백성
하느님 나라의 백성
종 메시아
비폭력 십자가
사랑의 공동체
5. 하느님이 머무시는 어둠
온 땅을 덮은 어둠
어두운 신앙의 여정
돌봄과 어두운 밤
어둠과 빛의 하느님
6.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
인자의 들림
'다른 무엇보다 신실한 십자가' - 십자가의 영광
'아, 나의 백성아 ...'
어둠에서 빛으로 - 성토요일의 신비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기
자신 있게 십자가를 전하라
부록: 전복적인 정통을 향하여
케네스 리치 저서 목록
책속에서
오랜 기간, 저는 십자가를 어떻게 선포해야 할지, 그리스도인의 삶과 십자가가 어떠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지에 골몰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것이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를 전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대개 그러하듯, 이 진리가 우리의 일상과 실천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저는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이 책을 읽었고, 또 읽고 있으며 여러 서평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책이 나온 뒤 저는 사순절 시기 이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다양한 교회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해 주셨고, 한 단락 한 단락을 묵상하며 여러 고민을 나누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적잖은 분들이 여섯 장 중 두 장, 곧 3장과 5장(십자가의 정치를 다룬 장, 그리고 신앙의 중심인 '어둠'을 다룬 장)에서 다룬 내용에 당혹감을 느끼셨고, 혼란스러움에 괴로워하셨습니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십자가의 의미를 개인화, (좋지 않은 의미에서) 영성화했기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정치 자체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기쁨, 빛, 확신을 강조하다 보니 의심,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신앙생활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기보다는 죄와 실패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어둠을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함으로써 현재는 역동성을 얻게 됩니다. 기억은 기억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을 빚어내며, 그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매주, 매일 예수의 죽음이라는 신비를 기념하며 그를 기억하는 가운데, 빵을 떼고, 쪼개지고 부서진 빵을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룸을 기념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찬 때 나누는 빵을 가리키며, 그리고 교회를 가리키며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지속적인 공동의 추모, 혹은 공동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닙니다. 예배, 그리고 성찬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부서지시고, 쪼개지신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모으는 활동입니다. 이 운동은 엄청나게 강력한 힘, 활력을 머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운동이 매우 기이하고, 낯설며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인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골고다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아로 여기는 '그리스도론'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그러한 운동이 처참하리만치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부서지셨고 망가지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부서지고 망가질 때, 우리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실패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실패할 때 우리는 그분을 역사 속 무수한 실패자 중 한 사람이 아닌, 생명과 능력의 원천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골고다에서 제자들은 끊임없이 실패했습니다. 나중에야, 그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 뒤 일어난 일을 통해 십자가 사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참된 모습을, 그 생생한 실재를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제자들의 마음이 찔린 일(사도 2:37)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뒤 첫 번째 오순절에야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결과 그들은 신앙을 갖게 되었고 제자도를 걷게 되었습니다. .
역사 전체에서 십자가는 저항과 반란의 상징, 종교 권력이든 정치 권력이든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억압하려는 모든 주장에 대한 항의의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모든 체제와 이념, 모든 정권과 제도에 대한 반란으로서 십자가는 개인과 집단을 계속해서 경계 밖으로, 문밖으로 밀어냅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불의를 정당화하는, 급기야는 불의에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모든 종교, 전 세계에서 골고다를 계속 재생산하는 종교, 현상을 유지하려 하는 종교의 거짓과 마성魔性을 폭로하는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십자가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아닌 세상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모든 사회의 위기 지점, 연약하고 작은 이들을 멸시하는 이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이들의 위기 지점입니다. 예수는 순응과 타협의 유혹에 맞서 세상의 주인이 진실로 누구인지에 대한 거짓된 주장을 자신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거기에 예수의 정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우리 시대와 같은 어두운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저항할 수 있는 풍토를 일구고, 해방구를 엽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삶과 온전함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불의하고 잔인한 구조와 권력에 맞서십니다. 성문 밖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려 계십니다. 그렇게 그분은 정죄 받고 심판받으심으로써 모든 이를 심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