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다 계획이 있구나 (계획·디자인·운영으로 읽는 도시)
장기민 | 미문사
18,900원 | 20251010 | 9791187812425
계획의 미학과 재생의 문화로 읽는 도시 이야기
도시는 우연이 아닙니다. 아침에 문을 나선 순간부터 밤의 골목을 돌아 들어오기까지, 우리가 스치고 머무는 모든 장면에는 누군가의 마음과 판단이 배어 있습니다. 횡단보도의 폭, 벤치의 위치, 간판의 높이와 빛, 비가 오면 물이 모이지 않게 하는 작은 경사까지, 도시는 수많은 선택의 합이고, 그 선택은 결국 우리의 삶의 질로 돌아옵니다. 『도시는 다 계획이 있구나』는 그 보이지 않는 선택의 언어를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번역한 책입니다. 계획의 미학이 어떻게 공간의 품격을 만들고, 재생의 철학이 어떻게 동네의 일상을 오래도록 지탱하는지 차분하게 보여 줍니다.
이 책은 거창한 개발의 구호 대신, 보행·장소·데이터라는 세 가지 축으로 도시를 다정하게 안내합니다. 해가 강한 오후에도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게 하는 가로수의 간격, 아이가 앉아 쉬어도 좋은 벤치의 높이, 어르신과 유모차가 함께 지나갈 수 있는 보도의 폭, 밤길을 안심하고 걸을 수 있게 하는 조명의 색온도, 섬세한 디테일이 모여 사람을 위한 거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에만 맡기지 않고, 보행량·체류 시간·공실률 같은 데이터로 확인하며, 작지만 확실한 변화(퀵윈)에서 시작해 스케일업과 운영·거버넌스로 이어지는 길을 제시합니다.
세계 여러 도시의 이야기 역시 이 책의 품을 넓혀 줍니다. 버려진 선로를 산책로로 바꾼 뉴욕의 하이라인, 자동차의 속도를 사람의 속도로 낮춘 바르셀로나의 수퍼블록, 자전거가 일상의 교통이 된 코펜하겐, 15분 안에 필요한 것이 닿는 파리, 그리고 청계천·서울로7017·성수·문래 등 우리가 아는 서울의 장면까지 이 모든 사례는 거창한 선언이 아닌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 주고, 오늘 우리 동네에서 무엇을 먼저 바꿀지 용기 있는 우선순위를 건네 줍니다.
이 책을 덮을 때쯤, 우리는 알게 됩니다. 좋은 도시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집 앞의 한 줄 그늘, 모퉁이의 안전한 코너, 질서 있는 간판, 약속을 지키는 데이터. 작은 개선이 쌓일 때 동네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달라집니다. 도시는 계획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완성됩니다. 이 책은 그 여정을 함께 걸어 주는 든든한 안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