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공간 (나부터 세계까지 정치적 공간과 공간적 정치)
신혜란 | 이매진
18,900원 | 20250518 | 9791155311530
공간은 정치적이고, 정치는 공간적이다
몸, 헬스장, 집, 마을, 도시, 축제, 종교, 기억, 선거, 교통
신도시, 물, 결혼 이주, 탈북자, 섬, 풍수, 행복, 파독 광부
젠더, 다문화, 지정학, 저항 공간, 핵, 계엄, 광장
29개 키워드로 읽는 공간, 권력, 정치
헬스장부터 계엄까지 - 그림 그리는 지리학자의 한국 사회 깊이 읽기
풍수를 믿은 대통령은 광장에 나온 시민들에 밀려 탄핵당하고, 일찍 치르는 선거에서는 공간을 둘러싼 온갖 공약이 난무한다. 나만의 취향에 맞게 꾸민 침실에서 눈을 떠 헬스장에 가 몸을 관리하고 일터에 도착해 노동을 마치면 핫플에 들러 밥을 먹고 광장에 나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뒤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보다가 잠든다. 우리 삶이 시작하고 이어지고 끝나는 공간이란 무엇일까? 공간과 권력은 무슨 관계일까?
《권력과 공간》은 도시와 공간과 지리를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림과 명쾌한 논리로 분석해 온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가 새로 쓴 책이다. 몸, 헬스장, 집, 마을, 도시, 축제, 종교, 기억, 선거, 교통, 신도시, 물, 결혼 이주, 탈북자, 섬, 풍수, 행복, 파독 광부, 젠더, 다문화, 지정학, 저항 공간, 핵, 계엄, 광장 등 29개 키워드와 100개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공간, 권력, 정치를 두루 살피는 신혜란은 한국이라는 사회적 공간을 무대 삼아 정치적 공간과 공간적 정치를 이야기한다. 정치와 권력이 개인적 삶과 집단적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인 만큼 권력과 공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해 더 나은 장소를 만들 가능성을 찾자고 말한다. 당연하게 여겨 온 공간의 질서를 낯설게 보고, 바람직한 장소 만들기를 실천하며, 우리 삶과 사회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 공간을 상상하자고 권한다.
내 몸부터 세계까지 - 29개 키워드와 100개 일러스트로 읽는 공간, 권력, 정치
시작은 ‘나’, 그리고 ‘몸’이다. ‘나’들이 모인 ‘우리’, ‘우리’가 넓어진 ‘사회’와 ‘국가’로 나아가서, 다시 ‘나’들과 ‘세계’를 만난다. 그렇게 공간은 넓어지고 깊어지고 다양해진다. 그런 과정에서 이 책 제목을 빌려 온 미셸 푸코를 비롯해 앙리 르페브르, 데이비드 하비 등을 비롯해 여러 이론가와 개념이 활용되고, 서울, 태백, 광주, 송도, 안산, 제주, 오키나와, 에딘버러, 껀터, 미국, 베트남, 코스타리카, 멕시코, 덴마크 등 규모와 성격이 다른 공간과 장소가 등장한다. 갯벌에 깃들어 사는 비인간 동물, 여전히 차별받고 비가시화되는 성소수자, 국경을 넘은 조선족,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 여성 등이 목소리를 얻는다.
도시를 연구해 온 지리학자 신혜란은 사적 장소와 개인적 체험을 공적 공간과 사회적 정치로 연결하며 지리학이 그어 놓은 경계를 확장한다. 헬스장에 다니면서 몸의 정치를 사유하고, 활자나 숫자를 벗어나 권력 투쟁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권력의 세 차원을 포착하며, 석사 논문을 쓴 태백을 교수가 된 뒤 다시 찾아 자본과 국가에 휘둘리는 도시와 개인을 살펴보고, 어린 시절 1979년에 부산에서 겪은 계엄과 어른이 돼 2024년 서울에서 마주한 계엄을 비교하며 광장과 공간의 정치를 고민한다,
3부 9장 〈계엄과 저항〉은 특히 시사적이다. 공간을 매개로 권력이 감행하는 통제와 저항은 사회와 공간을 구성하고 재구성하는 핵심 방식인 경계 긋기와 인프라 짓기에 오롯이 겹친다. 고립시켜 통치하려는 계엄은 경계 긋기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경계를 깨고 연대하려는 저항은 인프라 짓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띤다. 이렇듯 삶의 현장을 무대로 권력, 공간, 행위자 사이의 상호 작용이 펼쳐지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역동성을 풍부하게 읽기 위해 신혜란은 심층 인터뷰, 참여 관찰, 포커스 그룹 인터뷰 같은 질적 연구 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또한 심상 지도 연구 방법을 활용하고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고 명확한 개념을 전달하려 늘 고민한다.
공간에서 장소로 - 지금 여기 권력을 다시 바라보기
추상적이고 획일적인 ‘공간’이 구체적 의미와 정체성을 담은 ‘장소’로 바뀌는 과정은 권력이 일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주어질 때가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협력할 때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새 공항을 계획하기 전에 비인간 동물을 고려하고, 치적 쌓기용 공원과 광장을 머물러 소통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장소를 형성하고 가꾸며, 그런 과정에서 소외된 이들이 제대로 자리 잡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 모두 장소 만들기이자 공간과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실천이다. 그렇게 해서 공간은 통제와 배제의 수단인 동시에 공존과 연대의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권력을 공간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