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에 관한 몽상 (김근 시론)
김근 | 기역
14,400원 | 20250815 | 9791194533122
이야기를 낳는 우물에서 호수에서 시는 태어나 살고 지고
시집 《뱀소년의 외출》,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당신이 어두운 세수를 할 때》, 《끝을 시작하기》, 《Beginning the End》, 《에게서 에게로》까지 한국적 신화 상상력을 질끈질끈 잘잘 피워내는 시인, 김근의 시론(詩論)이다. 시인이 밝히는 자신의 시 이야기가 또, 긴긴 몇 편의 장시(長詩)이다. 그 시의 바탕을 길게 더듬는 더늠이기도 하다. 물에 잠긴 옛옛 집과 고샅의 이야기부터 물 기슭으로 옮겨가 살은, 길이 새로 나 그마저 삼켜 사라진 옛집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인의 시가 어떤 오래된 신화의 흔적을 잉태하고 피워내었는지, 찬찬 옮겨낸다. 시인의 어조, 그대로다.
그 시의 첫, 내력을 밝히는 외삼촌네 서가의 소월 시선으로부터 서울 변두리 판잣집과 골목, 호수 곁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 들은, ‘온통 흐물거리는 시로 가는 머나먼 여정’을 풀어내어 놓는다. 어릴 적은 그를 그의 시를, 우물 하나로부터 마을을 송두리째 삼킨 호수(조산저수지) 이 두 개의 물 사이에 놓아두었다.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물과 물 사이에서 그는, “내 시가 처음 태어날 무렵의 이미지들의 마구잡이로 섞인 혼돈스럽기 짝이 없는 한 덩어리 혹은 시가 태어나 그 스스로가 내게 제 근본을 물을 때 대답해줄 요량으로 마련한 대답”을 철썩, 부려 낳는다. 그의 우물은 그에게, 듣고 말하는 법을 비밀스레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의 시론은, 또 그를 둘러싸고 그에게 수많은 이야기의 옷차림을 차려 입히는 기억에 대하여, 빈몸에 들어 몸부림으로 말을 낳는 막다른 존재들에 대한 짧은 보고서이다.
시인의 창작노트는 시 너머의 시를 닮았다. 시의 오래된 ‘모호한’ 몸부림을 담았다. “자명하고 확고한 것들이 지금-여기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자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몸은 모호하다. 모호한 시는 모호한 몸으로 쓰는 시다. 몸으로 쓰는 시는 몸으로 읽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또한 “쓰는 동안 수없이 흥분과 좌절과 회의와 지연”을 반복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쓰기의 우연과 즉흥을 유지하려 했다. 어쩌면 이 시에는 더 많은 우연과 즉흥이 필요했는지 모른다”며 그 많은 ‘수없는’ 사이에서 태어난 시를 ‘우연과 즉흥의 역설’로 다시 읊고 있다. 몇 편의 창작 뒷이야기를 묶고, 최근 펴낸 『에게서 에게로』의 창작적 계기들과 더불어, 시와 현실이 만나는 길목의 ‘처연함’을 이야기한다.
시론의 붙여 챙겨놓은 「소설 분서」는, 「분서」 연작을 마치고 난 뒤에 그 시들을 모아 다른 형식 이야기로 풀어놓았다. 더해, 몇 개의 인터뷰도 담았다. 『뱀소년의 외출』과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두 권의 시집 이후,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하며 그의 시세계 이야기를 후배들과 나눈 이야기며, 시집 『에게서 에게로』 출간 이후 인터뷰, “20대 때 거리에 나서면 무섭고 외로웠거든요. 우리는 고립되었고 돌아오는 건 국가의 폭력과 비난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집 제목에서 체언의 자리는 그 무수한 당신들의 색색의 불빛을 위해 비워 놓은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제 시가 그 무수한 연결과 관계들 속으로, 그 아름다운 혼잡 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그의 시가 누군가와 경계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현장에 대한 중계다. 이제 시인 김근과 김근의 시들과 우리가 이어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