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학자 채인후의 중국철학사 - 하 (2020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채인후 | 좋은기업위드
34,200원 | 20190328 | 9791187262152
이 저서는 비록 상·하 양책으로 쓰여 있지만, 「원래는 먼저 5단계의 순서에 따라서 5권의 대저서를 기획하였다.」 그러나 그 분권 분장 분절의 내용으로 보아 대체로 당대 신유가, 주로 「 모종삼(牟宗三)모종삼 선생 등의 저서」에서 열어놓은 사상 구조와 의리 규모의 길에 따라서 표현하고 서술하였다. 중화민국 이래 지식인들의 자기 문화전통에 대한 무지와 닫음[隔?]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중국문화는 정체되어 나아가지 못하고, 닫혀버린 계통이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천여 년 간 크게 열고 발전한 가운데 중국문화는 바로 부단하게 의리를 열고 새롭게 만들었다. 모종삼 선생은 《 중국철학19강중국철학 19강》에서 정확한 풀이를 하였다. 그 이외에 따로 어떤 강연에서 중국철학사상의 10가지 커다란 논변을 거론하여 서술하였다. (모종삼 만기문집 371-383 「연경(聯經)」 전집본 제27책)
첫째. 유가 묵가의 논변.
이제 삼왕오제(三皇五帝) 때에는 사상의 분열이 없었다. 춘추 말기에 이르자 유가사상이 건립되고, 그 뒤에 묵가가 유가에 대하여 도전하였다. 유가(儒家)유가 묵가묵가의 논변을 통하여 유가(儒家)유가는 철학문화 발전 중에서 정통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둘째. 고자(告子)고자의 ‘타고난 그대로가 바로 본성이다[生之謂性]’에 대한 맹자(孟子)맹자의 논변.
맹자는 ‘타고난 그대로가 바로 본성이다’는 명제를 반대하고, ‘인의(仁義)가 본성에 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모종삼(牟宗三)모종삼 선생은 맹자(孟子)맹자의 주장이 ‘위대한 통찰’이라고 주장하였다. ‘인의가 본성에 내재함’을 이해 할 수 있으면 도덕이 도덕되는 까닭과 유가가 유가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위진 현학(玄學) 현학(玄學) 현학(玄學)현학(玄學)의 ‘공자와 노자의 회통’
양한(兩漢)은 경학이다. 사상에서는 결코 특출한 표현이 없다. 따라서 사상에서의 문제가 없다. 위진 도가 사상이 부흥하자, 유가 도가의 충돌을 마침내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자의 지위는 흔들릴[?動]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필의 ‘성인은 무를 체득하였다[聖人體無]’는 설이 생기었다. 향수(向秀)향수, 곽상이 한 장자(莊子)장자의 주(注)는 또한 ‘ 적본론(迹本論)적본론(迹本論)’을 제출하였다. 사실 큰 가르침의 회통은 영원히 모두 신선한 문제이며 문제의 제출은 바로 사상 경계(境界)의 새로운 개발을 나타낸다.
넷째, 말과 뜻의 논변[言意之辯]
도는 이름과 언어로 의미를 모조리 다 나타낼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면서 또한 영원히 신선한 문제이기도 하다. 노자의 ‘말할 수 있는 도는 상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에서 위진 사람들이 언어는 의미를 모조리 다 표현할 수 있다. 또는 의미를 모조리 다 표현할 수 없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서양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비트겐슈타인의 ‘대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또렷이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을 지켜라.’는 명제도 또한 이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는 영원히 늘 새롭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섯째. 정신[神]은 없어지는가? 없어지지 않는가? 의 문제
불교가 중국에 전하여 들어오고 윤회설윤회설이 생겨났다. 양나라 범진(范縝)범진(范縝)은 윤회설을 반대하고 을 지었다. 따라서 한 바탕 큰 논변을 일으켰다. 모종삼(牟宗三)모종삼 선생은 ‘이 논변은 결코 이루어진 형태로 발전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오늘날에도 다시 되돌이켜 살펴보면,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가(儒家)유가의 세 가지 썩지 않는 것[三不朽]과 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의 영혼불멸설영혼불멸설을 서로 대조 비교하여 상호 간의 차이를 반드시 잘 알아서 분명히 변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여전히 주의할 만하다.
여섯째. 천태종천태종 ‘산가(山家)’, ‘산외(山外)’의 원교(圓敎)원교(圓敎)에 대한 논쟁
이것은 천태종 내부의 전문적인 문제이며 인류 지혜에 대하여도 매우 공헌이 있었다. 산가산가, 산외의 논쟁산외의 논쟁은 또한 천태종과 화엄종화엄종의 논변이기도 하다.그 초점은 원교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철학상 가장 높고도 깊으면서 종극적인 문제이다. 서양철학은 아직 이 원리적 경지(理境)에 닿을 수 없었다. 그 이론의 깊고 미묘함을 알 수 있다. 모종삼(牟宗三)모종삼 선생은 ‘원교의 의리는 중국문화 그 자체의 가치로 보나, 동서문화 비교로 말해도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곱째, 진동포(陳同浦)진동포(陳同浦)와 주자(朱子)주자(朱子)가 한당(漢唐)을 논쟁함
송명유학 내부의 토론은 내성의 학문에 집중되었다.[中和 參究 朱陸同異 등] 그런데 이 논변은 외왕(外王) 문제에 속하였다. 주자는 도덕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한당의 사공(事功)사공(事功)을 내려 깎아서 보았다. 그가 지니었던 도덕 판단도덕 판단은 역사 판단역사 판단이 아니었다. 헤겔헤겔에 의하면, 역사를 참으로 접촉하려면 반드시 지성적 이성으로부터 동태적 이성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자는 지성적 이성 형태이고, 진동포는 감성적 직관 형태이다. 이 두 사람은 대립적이며 모두 역사를 이해할 때 역사 판단을 끌어들여 역사를 진실화 할 수 없었다. 단지 동태적 이성 중에서 비로소 역사 판단역사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여덟째. 왕용계(王龍溪)왕용계(王龍溪)와 섭쌍강(攝雙江)섭쌍강(攝雙江)의 ‘치지의변(致知義辯)치지의변(致知義辯)’
이것은 왕양명왕양명 문하의 제자 중 왕양명의 ‘치양지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의 논쟁이다. 하나의 교의에 대한 본질을 참으로 알아 차렸는지 여부는 반드시 한층 전개된 논변 가운데서 그의 사색의 길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갔는 지를 보고, 다시 그가 낱말을 사용한[조사] 경중 본말을 살펴야 비로소 누가 참으로 얻은 바가 있는지, 누가 참으로 상응할 수 있는지를 고찰,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은 진위를 비판하는 시금석이다. 누가 왕학왕학의 정통적 계승자인가, 누가 왕학의 치우친 갈래인가 모두 이러한 논변 중에서 갈라서 판단해 낼 수 있다.
아홉째. 주해문(周海門)주해문(周海門)과 허경암(許敬菴)허경암(許敬菴)의 ‘구체구해(九諦九解)구체구해(九諦九解)’의 논변
‘구체(九諦)’는 허경암의 주장을 대표한다. 주로 왕양명의 사구교 첫 구절인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다[無善無惡心之體]’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따라서 왕용계왕용계의 천천증도(天泉證道)천천증도(天泉證道)의 종지에 대하여서도 함께 변론, 반박(辨駁)하였다. 주해문은 구체에 따라서 답변을 하였는데 이것을 ‘ 구해(九解)구해(九解)’라고 한다. 이 논변은 왕학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유가와 중국문화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노자는 당초에 무(無)를 강의하면서 작용 차원에서 말하였다. 그런데 작용 차원의 무는 사실 공통된 진리[公法]이다. 유가 불가 도가 모두가 함께 허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如何]의 문제에 속한다.
대체로 실천공부는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어떤 이상적 경계[理境]를 만나게 되어 있다. 모름지기 시비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이것은 무엇인가?[是甚?]’의 문제이다. ‘어떻게’는 시비 선악에 대면하여 호오(好惡)를 표현하여 호오를 모두 그 바름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로소 도덕 가치를 성취하는 관건 소재이다. 그러므로 《 상서상서, 홍범홍범》에도 ‘좋음을 만들지 말고, 미움도 만들지 말라.[無有作好 無有作惡]’라는 말이 있다. 의도를 만드는[有意] 호오는 바로 치우친 호오(好惡)이다. 따라서 반드시 없애 버려야 한다. 도가에서 말하는 ‘무’는 바로 여기에서 뛰어난 입장을 특히 잘 드러 내었다. 이 때문에 작용 차원의 무는 이미 반대해서는 안 되고 반대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일단 ‘무’자를 보게 되면 바로 불교나 노장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성인의 도에 합치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금기는 주로 주자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도가의 현리(玄理)와 불교의 공지(空智)를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유가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매우 불리하다. 도가에는 다만 어떻게 이 차원의 문제만이 있을 뿐 이것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없다. 유가는 두 차원이 동시에 겸비되어 있다. 주해문주해문과 허경암허경암의 논변은 그 중요성이 바로 우리들이 이 가운데의 의리의 나누임[分際]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것으로 철학의 이상적 경계를 열어 놓는다.《 신유가(新儒家)신유가의 정신방향》(학생서국판) 239-276쪽.
이상 아홉 개의 큰 논쟁은 모두 과거의 역사 가운데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런 논변이 대표하는 의미를 진부한 흔적으로 논해서는 안 된다. 그 가운데서 실로 생명 지혜와 생명의 방향을 드러낸다. 단지 한 번 반성만 해보면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열어놓고 우리의 영감을 촉발시키고 우리의 사상의 빛을 환하게 드러낼 수 있다.
열번째. 중국문화 창통(暢通)의 문제
위진 시대의 과제는 공자(孔子)공자와 노자(老子)노자를 회통시키는 것이었다. 송명 시대송명 시대의 과제는 불교불교에 대립하여 치유[對治]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시대는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대비하여야 하는가? 총체적으로 말하면, 바로 중국문화를 어떻게 창통(暢通) 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누가, 누구와 쟁변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중국인이 공동으로 대면한 문제이다. 모종삼(牟宗三)모종삼 선생은 중국문화가 창통할 수 없는 것의 가장 큰 장애는 대륙이 공산주의공산주의에 의하여 정복된 것이므로 현재 문화사명은 바로 공산주의를 깨트리는 일이다. 그래서 마르크스 레닌주의마르크스 레닌 유물론이라는 마귀의 도를 깨트려 물리쳐야 비로소 민족생명을 회복하여 창통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 레닌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유가 사이의 변별과 차이, 그리고 대화는 자연히 개방의 태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두 번째의 사명은 어떻게 서양문화를 소화하는가의 문제이다. 그 중점은 종교 방면에 있는데, 유불도 삼교는 모두 동양 종교의 형태로 서양 기독교기독교 형태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을 변별하는 것[辨耶]이 바로 현재 문화 사명 중의 두 번째 작업이다. 중국문화는 찬탈 절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마르크스 레닌으로 공자(孔子)공자를 대신하는 것을 반대한다. 또한 예수로 공자를 대신하는 것도 반대한다.
문화사명의 세 번째 일은 소극적인 깨트림과 변별에 속하지 않고 정면으로 근본을 세우는 것[立本]이다. 근본이 세워지지 않으면 모두가 허공에 떨어진다. 근본을 세우는 것은 중국문화 전통을 유지, 옹호하여야 하며 중국문화 발전의 주요 맥락에 따라서 중국 입국의 대본을 회복하여야 하는 것이다.
근본을 세우는 데 따라오는 네 번째의 일은 바로 현대화이다. 현대화는 서양화가 아니다. 우리는 현대화를 요구하지만 반드시 서양화를 반대하여야 한다.이상 네 가지 일은 모두 중국이 스스로 그 본성을 극진히 발휘하는[自盡其性]일이라면 이미 건국을 말하기에 부족하고 더욱 문화개창과 신생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쓰니 혹 어떤 사람은 기괴하게 느낄 것이다. 자서를 쓰면서 어째서 이 10대 쟁변을 제시하는가? 나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들은 단지 문헌 자료에서만 철학사를 강의할 수 없고, 이것은 민족문화생명의 맥박이 움직이는 데서 철학사를 강의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10대 쟁변은 바로 문화생명의 대동맥에 따라서 우리 철학사 속에서 중대한 관절을 강의 서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간단히 개괄하여 제시한다.
내가 이렇게 서문을 쓰는 것은 비록 어떤 점에서 특별하지만, 특이한 것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참으로 내 생명 표현의 기본 형식이다. 나는 토론이 필요한 철학사 문제는 사실 본서 맨 처음 서론 중에 이미 대체로 평범을 유지한 설명을 하였다. 본서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하여 나는 조용히 독자의 평가와 비판을 기다린다. 이것이 책을 집필하는 좋은 태도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