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치킨 (항생제는 농업과 식생활을 어떻게 변화시켰나)
메린 매케나 | 에코리브르
22,500원 | 20190312 | 9788962631920
‘항생제’를 통해본 현대 세계사
인류가 직면한 또 하나의 심각하고도 긴급한 ‘항생제 내성’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따뜻한 2016년 9월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맨해튼의 동편을 수놓은 초고층 건물들 간의 공간은 후텁지근했지만 현대적인 유엔 건물 안의 공기는 서늘하고 쾌적했다. 유럽식 디자인의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들과 실용적인 단화를 신은 여성들이 193개국 정부의 대표와 대사 들이 연례총회를 위해 모여 있는 회의실들을 분주히 오갔다. 연례총회는 보통 온건한 모임이다. 논의가 차분하고 추상적이며 무기 협약이나 국경 논쟁에 관한 세목으로 채워지는 게 보통인 것이다. 하지만 그날 아침에는 그 건물에 활기찬 에너지가 감돌았다. 그 일만 아니라면 결코 거기에 발을 들여놓을 성싶지 않은 일군의 방문객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유엔은 막 세계적인 항생제 내성 문제를 다루려 하고 있었다. 그 위협을 탐구하기 위한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것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유엔 연례총회에서는 건강 문제를 다룬 적이 거의 없었다. 건강 문제가 안건이 된 것은 1945년 유엔이 창립된 이래 딱 세 번뿐이었다. 첫 번째는 암 같은 만성 질환으로 세계가 떠안게 되는 부담을 따져보기 위해, 두 번째는 에볼라의 출현에 대응하기 위해, 세 번째는 에이즈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적으로 내성균이 왜 문제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허다했고, 그 문제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시급한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유엔은 그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이 무르익을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지 않았다.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유엔타워 3층에 자리한 천장이 높고 세련된 신탁통치이사회 회의장(Trusteeship Chamber)에서 유엔의 최고위 관료인 사무총장 반기문이 마이크를 향해 몸을 숙였다.
“존경하는 각국의 각료, 대사, 신사숙녀 여러분! 항균물질 내성이 인간의 건강, 지속가능한 식품 생산과 개발에 근원적이고도 장기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도시와 농촌, 병원과 농장과 지역사회를 막론하고 전 세계 모든 지역이 마주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으로부터 인간과 동물을 보호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전문가 위원회가 항균물질 내성과 관련한 복잡한 사항들을 잘 정리해 제시하고 빈국이든 부국이든 간에 70개국 정부의 대표들이 우려를 나타내는 발언을 쏟아낸 뒤였다. 유엔 총회 회원국들은 투표를 통해 즉각 행동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그들은 새로운 내성균 감염에 관한 감시·감독 체제를 개선하고 신약의 연구와 개발을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각국 정부가 항생제 사용을 규제하고 얼마나 변화를 진척시켰는지에 관해 2018년 다시 보고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계획을 즉시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니터할 국제 조정 기구를 마련해달라고 유엔에 주문했다. 수십 년 전 에이즈와 관련해 진행한 과정과 유사했다.
각국 정부가 투표를 통해 채택한 선언서는 항생제 내성을 ‘가장 심각하고 가장 긴급한 국제적 위험’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에게 그 위협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과학자와 전략가 들에게는 개가를 올린 날이었다. 여전히 미진한 감도 없지는 않았다. 그 선언서가 기금을 조성하지도 사용한도를 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엔 총회는 항생제 내성 문제를 심각한 국제적 위험으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연설할 때마다 발언할 때마다 농장에서의 항생제 과용이 의약품의 오남용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경고에 대해 이제야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농장에서의 항생제 사용, 그리고 그를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마침내 전 세계적 의제로 떠올랐다.
이처럼 유엔은 몇 년 전부터 항생제 내성의 위험을 국제적 위험으로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각국 대표들이 연설할 때나 발언할 때마다 농장의 항생제 과용이 의약품의 오남용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경고에 이제야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농장의 항생제 사용, 그리고 그것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전 세계적 의제로 떠오른 것이다.
2014년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내성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삼고, 정부 산하의 상설 전문가조직, 즉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기 위한 대통령 자문회의(Presidential Advisory Council on Combating Antibiotic-Resistant Bacteria)’를 새로 구축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그 무렵 영국에서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골드만삭스의 전직 수석경제학자 짐 오닐 경(Lord Jim O’Neill)에게 의견을 요청했고, 오닐 경은 ‘항균물질 내성에 관한 검토(Review on Antimicrobial Resistance)’라는 단체를 꾸려 내성에 의한 전 세계적인 사망자 수 추정치를 얻었다. “해마다 세계적으로 70만 명 숨지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1000만 명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초에 나온 두 번째 수치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다. 이른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육류와 항생제 소비에 대한 전망치를 추정해 내놓았는데, 만약 그들이 농업의 관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공장형 농장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불어나 15년 뒤 항생제를 지금보다 3분의 2 더 쓰게 될 것, 즉 전 세계적으로 10만 5596톤이나 소비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2030년이 되면 중국이 세계에서 생산하는 모든 항생제의 30퍼센트를 그 나라의 육용 동물에게 투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새로운 항생제와 진단법을 개발할 것, 그리고 ‘가축에게 항생제를 좀더 분별력 있게 사용할 것’을 촉구했다. 2016년 5월 세계보건기구 이사회 소속의 194개 회원국은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달, 일본에서 열린 G7은 내성을 국제적 우선사항으로 다뤄야 함을 확실히 했다. 유엔 총회가 개최되기 2주 전, G20 정상회담―그해는 지상 최대의 항생제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이 의장국이었다―은 “항생제 내성이 공중보건, 성장과 국제경제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항생제 내성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