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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2580395
· 쪽수 : 170쪽
· 출판일 : 2024-07-17
책 소개
목차
1부 믹스드
목마와 아이 | 13
카피‧캣 | 15
내림수위 조문 | 17
대식가, 파밧 | 19
믹스드 | 21
열대야 | 25
절망의 손맛 | 27
고독 대 고독 | 29
명품 애벌레의 수양법 | 31
천국의 나비 in 캔버스 | 33
얼음 같은 피는 여전히 붉고 | 35
샐러리맨의 퍼즐 | 37
2부 푸른 실루엣의 생애
에칭 | 41
미우를 만나러 | 43
갯그령 | 45
블랙 카펫을 따라 | 47
월진 | 49
둥근 탄생 | 52
시모토아 | 54
어부의 비늘 | 57
푸른 실루엣의 생애 | 60
한 판 승부 | 63
바람의 손금 | 65
조석예보 | 67
3부 시간을 베고 눕다
흰의 저쪽, 스펑의 뿌리는 질기고 | 71
궁금한 이사 | 73
기와의 기억 | 75
상처, 後 | 77
붉은 서정 | 79
여백의 무게 | 81
시간을 베고 눕다 | 83
태평양의 여름을 수선하다 | 85
숭어의 기억 | 87
돌아오지 않는 슬픔의 개수 | 89
고래의 한숨 | 91
써니 사이드 업 | 93
4부 치킨과 악마
산란 | 97
달과 구슬, 택시 운전사 | 99
반질거림을 닦다 | 101
복숭아 | 103
치킨과 악마 | 105
찰칵, B612 | 108
염殮 | 110
스캔, 일가의 내력 | 112
바람 박제 | 114
붉은 독백 | 116
이런 아름다움 들게 하소서 | 118
돌덩이의 기억 | 120
5부 루시드의 시간
계절의 간병인 | 125
색‧계 | 127
오늘이 바람처럼 | 129
가을을 마시다 | 131
루시드의 시간 | 133
수은등으로 쏟아지다 | 135
학계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 138
핫빗 | 142
토막의 정석 | 144
그라나다의 기억을 훑다 | 146
무딘 손, 한 번 더 | 148
2022년 12월 12일자로 해촉합니다 | 150
해설┃서정의 회복을 향한 거대한 항해 | 이병철 | 152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바람이 할퀸 상처로 바다의 표피가 따끔거려요. 달빛을 녹여 상처에 바르면 비로소 물때가 시작되죠. 움푹하고도 으슥한 곳에 미끼를 드리워야 유혹이 몰려들어요. 거짓으로 가득한 캄캄한 물속. 사탕발림에는 적색신호가 없어요.
겉이 화려할수록 절망은 깊은 맛을 내죠. 괜찮아요. 경계심은 망가졌고 죄책감은 편의점에서 팔지 않아요. 전화벨 소리가 어둠을 들추고 비상을 시작해요. 벼랑 끝으로 내몰린 막다른 출구의 끝. 막무가내로 입질이 들어와요.
송곳처럼 찌가 솟아오르고 유서가 날아다녀요.
반사적으로 후려치는 챔질. 핑~ 피이잉. 누군가의 내일을 찢는 피아노 소리. 수화기 너머 다급함이 귓볼을 찔러요. 속아서 무너지는 만큼 속이는 쾌감은 커지는 법이죠. 소리로만 살아가는 수화기 벌레들. 눈동자를 직접 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요. 사람은 믿고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무너지는 건, 미끼를 탐하는 시간보다 짧다고 멸치 떼들이수군거려요.
아침마다 사체가 뉴스로 떠오르고 밤하늘 저쪽 물고기좌가 붉게 염색돼요. 수화기 너머의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죽음의 개수도 관심 없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더 진화된 방식으로 해외발 최신식 전화기가 다음 입질을 기다려요.
― 「절망의 손맛」 부분
자살과 타살, 그리고 사고사의 깊이를 더듬는 탐문 속
푸른 생애의 마지막 실루엣이
밤하늘 저쪽
씰룩거리는 장면으로 목격됐다
푸른 생애가 사라진 날
풍문마저 소멸된 주인 잃은 그물이
마지막 수색을 끌고 바다를 더듬는다
그해 여름
바다의 유희를 미행했던 피서객이 흘리고 간 유랑들
밀어의 속살이 버려진 종량제 봉투 속
누구라는 이름 없는
생애
하나 또 하나
― 「푸른 실루엣의 생애」 부분
초록이 번진 캠퍼스가 까치발로 들썩인다
그늘이 쓰러지는 나무 벤치 위
함성으로 지켜낸 그날이 은박지처럼 눈부시다
가시 돋은 운동화가 모여 밤송이처럼 곤두섰던,
피멍 든 계절은 강의실 밖으로 떠돌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교문은 기침으로 쿨럭였고
도로마다 길게 늘어선 단단한 결심들
도청 건너 저쪽으로 행진했다
신록의 그늘에 밤꽃 가루 알알이 덮이면
충혈된 눈물을 열고 누군가 내게 말을 건다
당신은, 어디서 푸줏간 냄새가 난다 했고
나는
밤나무 가지에 파편처럼 그날이 비릿하게 박혀 있다 했다
물대포에 익사한 외마디 비명들
고막이 터질 듯
목마름을 외쳐대던 초상이 이명으로 흩어진다
날카로운 오월의 손톱에 찢긴
비린내 절여진 좌절과 그렇다고 멈출 수 없는 노래들,
바람도 직진하는 습관을 멈추고
잠시 유빙처럼 굳는다
해마다 다시 오는 학교 벤치 앞
시간을 길게 베고 누운 밤나무 한 그루,
지금도
비린내 나는
생생한 풍경 혹은 소리
― 「시간을 베고 눕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