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인성 3 (조화로운 삶을 위하여)
서정희, 강선학, 정태성, 이병인, 임낭연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13,500원 | 20201130 | 9788973166831
상처, 자정(自整) 그리고 조화
우리는 길을 가다 넘어지거나 어딘가 부딪혀서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곤 합니다. 살짝 발라준 약에도 새살이 돋는 것을 보면 신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사실인즉슨 약이 살을 돋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은 소독하고 균이 침투하거나 번식하는 것을 막아줄 뿐이요, 실제 살을 돋운 것은 바로 몸 그 자체였습니다. 몸이 알아서 새롭게 살을 밀어올려 나를 보호하였던 것이지요. 따지고보면, 강물의 자정(自淨)도 그러했습니다. 비록 원치않는 오물이 흘러들어와도 강물은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흐르면서 깨끗한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눈자위 아래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경험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듣자니, 이 또한 몸을 흐르는 기운이 스스로 조절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신기한 모습들을 자정(自整), 즉 ‘자신을 바로잡아감’으로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누구나 경험하듯이 감당할 수 없거나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삶의 무게가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곤 하지요. 언젠가 『맹자』를 읽다가 “하늘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있는 만큼의 일을 부여한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았지만, 찬찬히 읽어볼수록 무한한 감동이 밀려오는 희열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 겪는 사람이나 환경, 일들은 모두 우리를 주춤거리고 버겁게 만듭니다.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그간 막혀있고 멈춰있던 기맥이 타통(打通)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기운이 돌더니 이제와 다른 내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명명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 마음치유를 추구하는 이유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자정을 통한 조화의 창조!!
인간이 자초한 재난인 역병(疫病)의 대유행으로 인해 민심이 지치고 흉흉한 가운데서도 인간의 아름다운 인격적 성장을 같이 고민해준 분들이 있습니다. 『서유기』를 마음치유의 여정으로 읽어내신 서정희님, 사람의 얼굴을 통해 마음을 보고 계신 강선학님, 조화로운 삶이란 아젠다를 도출해내신 정태성님, 차(茶)를 통한 마음의 도야를 모색하시는 이병인님, 행복의 심리학을 흥미롭게 제시하신 임낭연님, 우리 국악을 통한 마음치유를 꿈꾸시는 박정련님, 『논어』를 통해 고등학생의 정서를 치유하고 계신 송영일님, 자연과 합일된 참된 인간을 추구하시는 정우락님, 산의 미덕을 마음의 미학으로 끌어들이신 강정화님, 『시경』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신 박순철님, 숲속 나무들이 지닌 치유의 미를 설파하고 계신 최송현님, 불편한 관계를 슬기롭게 극복하시는 이수진님, 음양으로 사람의 심리를 살펴보고 계신 채한님, 『사기』 「백이열전」을 통해 원망을 이해하려는 김승룡님!
사실 ‘시민의 인성’이란 제호로 책을 계속 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냥 흘려버리기 아까워서 고였던 생각을 글로 만들고 정리해낸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쉽게 쓰인 글들은 아닙니다. 언뜻 보셔도 아시겠습니다만, 오래 묵혔다가 내놓은 주제요 마음들이기 때문입니다. 평생동안 수련해오거나 앞으로 해나갈 학문적 테마를 녹여내신 분들도 있고, 현장에서 오랫동안 교육하고 실천해온 경험을 응축시킨 분들도 있으며, 자신의 삶의 주제를 평범한 듯하면서 예술적으로 드러내신 분들도 계십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이 글들을 ‘애써’ 읽어내시면 안됩니다. 샘에서 솟아나온 물이 바위에 막히면 돌아가고, 좁은 곳에서 세차다가 트이면 느긋하게 흐르듯이, 그렇게 자연스레 읽어가시면 됩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순간만이라도 편안해지시길 기원합니다. 늦가을 숲속 풍경은 흡사 상처와 자정을 거쳐 조화를 이룬 모습을 연상하게 해줍니다. 참 편안합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