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정부 간 무기의 평등 (절차 민주정치 원칙을 다시 생각한다)
최자영 | 헤로도토스
19,800원 | 20200101 | 9791196270339
〈시민과 정부 간 무기의 평등〉은 민주정치와 개념과 실태에 관한 오해를 시정하고자 한다. 오해의 핵심은 정치권력 구조, 즉 집중과 분산의 차이에 관련한 것이며, 그 오해를 불식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질곡으로서 정치 권력 집중에 의해 초래되는 갖가지 적폐 해결 방안의 모색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민주주의’나 ‘공화주의’ 개념은 그 자체로서 가치의 선악, 공정, 정의를 담지하지 않는다. 그저 ‘민(民)'중심이 되고(민주). 또 여럿이 더불어 한다(공화)’는 뜻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 즉 ‘민(民)이 중심’이란 말은 민중(시민)이 주권을 갖는다는 뜻일 뿐이고, 그 결정권을 직접 행사하면 직접민주정치가 된다. 민(民)이 직접 결정을 하면 반드시 좋다, 나쁘다로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고 좋은 결정을 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대의정치도 마찬가지이다. 민중이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를 뽑아서 대신 하도록 하면 대의정치가 된다. 대의정치는 민중을 ‘대신’하게 한다는 뜻일 뿐, 그 자체가 좋다 나쁘다는 가치를 품는 개념이 아니다.
직접민주정치나 대의정치란 그 어느 쪽이 더 정의롭고 공정하다든가, 어느 쪽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하는 뜻을 담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의, 공정, 현명함 등과 무관하게 누가 결정권을 가질 때 자신을 위한 정책을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직접민주정치나 대의정치에서 똑같이 결정권자는 각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치열한 갈등 속에 전개한다. 지금 정당 간 이해 관계로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듯이, 광장에서는 촛불 부대뿐 아니라 태극기부대가 부대끼고 있다. 민회가 지역에서 열린다면 거기서도 똑같이 서울에서 광화문, 서초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돌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그래서 갈등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그 결과로서 결정권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다수결로 결론이 나게 된다.
이해관계가 극도로 갈등하게 될 경우 민회가 지금 대의제로서의 국회보다 나은 게 무엇일까? 그것은 두 가지로 말할 수가 있다. 하나는 지금 국회처럼 중앙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풀뿌리 민주정치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중앙에 모인 300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가 아니라 권력은 각 지역으로 분산되고,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정책을 구사할 수가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국회처럼 유지 상류층이 아니라 서민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할 수가 있다. 이런 절차는 대부분 상류층이 모여있는 현재의 국회가 가진 자들을 위해 입법하는 것과 대조가 된다.
민주정치 그 자체로서 정의와 공정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고, 한 절차, 형식으로 파악하는 것은 앞으로의 방향성 설정에 큰 의미를 가진다. 토지공개념, 노동자 권익의 보호, 기본소득제도 등 많은 이상적 제도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원하는 쪽에서 결정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헛된 소망에 불과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고시 낭인을 없애고자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로스쿨은 돈이 많이 들어서 금수저가 아니면 가기 어려운 제도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결정권을 국회에서 틀어잡고 있고, 그 국회 성원은 주로 돈 있는 사회 상류층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안건은 많으나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이 없으면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것에 우선하여 절차, 민중이 결정권을 갖는 절차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 직접민주정은 크게 정책제안형과 권력통제형의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중 적어도 주권자로서 민중은 위정자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고, 그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하겠다. 선출직, 임명직을 불문하고 공권력을 행사라는 모든 공직자에 대한 감시, 처벌권은 물론, 현재 스위스와 같이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문제가 있으면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서 그 신임 여부를 민중이 결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제도의 정착을 위해 국민이 헌법과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하겠다. 이 국민개헌발의권은 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서 뺏겼던 것인데 여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고, 현재의 국회도 이것을 민중에게 반환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국회는 민중의 뜻을 배반하고 있다.
근대 국가는 자유 시민의 민회가 중심이 된 고대 그리스 폴리스보다 훨씬 더 집권적이고 관료적이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동시에 대두된 화두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어떻게 견제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권력의 분립과 상호견제의 개념이었다.
이 책은 권력의 분립과 상호견제가 3권 분립의 이론이나 법제도의 정비에 의해 저절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피력한다. 그것은 공권력에 대한 시민 민중의 감시와 처벌의 절차를 구비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나아가 민중의 목소리를 높이는 풀뿌리 민주정치는 권력의 분산 정도와 정비례하며, 위정자들의 과두 독재는 권력이 집중될수록 강화된다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