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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01092973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09-03-16
책 소개
목차
1권
Ⅰ 새싹의 계절
Ⅱ 여름의 어둠
Ⅲ 깊은 가을
2권
Ⅳ 겨울의 천둥소리
Ⅴ 세상을 태우는 불
Ⅵ 어둠 속에서 타오른 화톳불은
옮긴이의 글
리뷰
책속에서
이제 와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할 마음이 든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많은 것이 잿더미로 변한 그날로부터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라는 단위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다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현안이 정리되고 새로운 체제가 궤도에 오르자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미래에 대한 의혹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에 잠시 시간을 내서 과거의 역사를 헤집어보고 새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아무리 많은 눈물과 함께 삼킨 교훈이라도 목구멍을 통과한 순간 잊어버리는 생물이라는 사실이다.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날의 아픔과, 그렇게 끔찍한 비극은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맹세를 물론 누구 한 사람 잊을 리 없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비바람에 씻겨 사라진 아득한 미래에, 어리석은 인간은 다시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나는 그런 기우를 완전히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문득 펜을 들고 수기의 초안을 쓰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수도 없이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벌레가 갉아먹은 것처럼 기억이 군데군데 빠져 있어서 중요한 세부 사항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 1권 11쪽에서
슌은 먼저 백련 4호에 올라타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두운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불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카누는 천천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주력을 사용할 수 없으므로, 처음에는 노를 이용해서 젓기로 했다.
어둠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물을 비추는 것은 하늘에 빼곡히 박혀 있는 별들뿐이었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새카만 오솔길 같은 수면에서, 두 개의 노가 만들어내는 작은 물소리만이 기분 좋게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황홀한 심경으로 중얼거렸다.
“왠지 꿈속에 있는 것 같아. 이렇게 있으니까 카누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 잘 모르겠어.” - 1권 120쪽에서
“넌 누구지? 대체 정체가 뭐야?”
“저는 국립국회도서관 쓰쿠바관館이에요. 기종 및 제품번호 말씀이라면 파나소닉 자주형自走型 아카이브 자율진화버전 SE-778Hλ예요.”
뒷말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정체를 모르는 괴물이라고 해도 너무도 황당한 자기소개가 아닌가? 예를 들면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빙긋이 웃으며 다가온 사람이 “안녕하세요, 저는 시민회관입니다”라든지 “저는 학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나는 신중한 말투로 물어보았다. …… 나는 새삼스레 유사미노시로의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불규칙한 꿈틀거림을 멈추거나 빛을 내뿜지 않으면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책은 어디 있지?”
“종이 매체에 인쇄된 인터페이스는 대부분 산화해서 썩었든지 전란 및 파괴행위에 의해 불에 타는 바람에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요컨대 책이 없다는 거야? 그러면 너는 텅 빈 도서관이야?” - 1권 145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