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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88901238920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19-12-19
책 소개
목차
01. 몰래 스며든 흔적
02. 실종된 희생자
03. 어느 날 갑자기
04. 할머니의 정원
05. 장미와 라임나무의 증언
06. 당신은 거기 있었어요
07. 머리카락 속에 잠든 진실
08. 죽음 속의 아름다움
09. 아주 작은 실마리
10. 마지막 숨결
11. 텅 빈 그릇
12. 치명적인 탐닉
13. 중립
14. 나와 당신의 존재
리뷰
책속에서
내 마음을 흔들었던 또 다른 사건이 있다. 스칸디나비아 출신 열다섯 살 소녀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영안실의 냉혹한 전등 아래 알몸으로 누워 있는 소녀의 모습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소녀가 날씨 좋은 여름날 숲속에서 살해된 이유는 소녀의 몸을 훔쳐보며 풀밭에 무릎을 꿇고 자위를 하려 했던 한 남자의 광적인 욕정과 집착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소녀의 몸을 본 나는 깊은 참담함에 빠졌다. 소녀가 누려야 할 삶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예컨대 나는 신발에 묻은 미세 입자를 살펴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숲 지대나 정원을 따라 자란 블루벨 꽃가루가 신발에 묻어 있다면, 당신이 어느 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왔는지도 알 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에서 머물렀는지, 어느 들판 한구석에서 기다렸는지, 어느 벽에 기대 연인을 기다렸는지까지 맞혀낼지도 모른다. (중략) 자연은 이처럼 우리 몸 안팎에 흔적과 단서를 남긴다. 우리가 환경에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환경 또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는 셈이다. 가끔은 그 단서를 잘 구슬려 얻어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에게, 자연은 언제나 비밀을 풀어놓을 것이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매일같이 직면해야 하는 세상에서, 충격에 둔감해지거나 지적인 도전 과제 속에 빠져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감정을 보류하는 일은 얼마든지 쉽게 일어난다. 사랑하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서재에 앉아 조앤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자니,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조앤 넬슨은 우리가 풀어야 할 한낱 수수께끼가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맞서야 할, 도전 과제 역시 아니었다. 조앤은 사랑과 희망, 두려움, 야망을 갖춘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