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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25551869
· 쪽수 : 215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행복한 고물상
엄마의 구두
튤립 향기
눈 속에 피어난 에델바이스
자전거 도둑
어미토끼의 사랑처럼
추억의 수박귀신
돌산 할머니
우리들의 지붕, 아버지
상이군인 아저씨
육성회비
영수 엄마
내 짝꿍 원표
깜치와의 전쟁
외계인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아름다운 발자국
엄마가 가르쳐준 사랑
달맞이꽃
나는야 아이스께끼 장사
겨울의 미소
저 들 밖에 한밤 중에
길음시장에서
엄마의 눈물
바람 부는 공터에서
내 마음속의 선생님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사랑하는 나의 형
행복한 우리 집
선물
강아지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달동네 사람들
로맨스 전파사
어느 피에로의 눈물
행복한 고물상이 문을 닫던 날
리뷰
책속에서
밤늦은 시간부터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산동네 조그만 집들을 송두리째 날려 보내려는 듯 사나운 비바람도 몰아쳤다. 칼날 같은 번개가 캄캄한 하늘을 쩍 하고 갈라놓으면 곧이어 천둥소리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곰팡이 핀 천장에는 동그랗게 물이 고였다. 그리고 빗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빗물이 방울져 내렸다. 엄마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걸레 대신 양동이를 받쳐 놓았다.
“이걸 어쩌나, 이렇게 비가 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손 좀 볼 걸 그랬어요.”
엄마의 다급해진 목소리에도 돌아누운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며칠 전 오토바이와 부딪쳐 팔에 깁스를 하고 계시는 형편이었다.
잠시 뒤 아버지는 한쪽 손에 깁스를 한 불편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에게 천 원을 받아들고 천둥치는 밤거리로 나가셨다. 그런데 밤 12시가 다 되도록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창밖에선 여전히 천둥소리가 요란했고 밤이 깊을수록 우리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엄마와 누나는 우산을 받들고 대문 밖을 나섰다.
“우리도 나가 볼까?”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엄마와 누나마저도 감감 무소식이자 형이 불쑥 말했다.
“그래.”
식구들을 찾아 동네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비바람 소리만 장례행렬처럼 웅성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집 앞 골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산을 받쳐 든 엄마와 누나가 지붕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저기 봐!”
누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서 온몸으로 사나운 비를 맞으며 앉아 있었다. 깁스한 팔을 겨우 가누며 빗물이 새는 깨어진 기와 위에 앉아 우산을 받치고 계셨던 거였다. 형과 나는 엄마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나가 아버지를 부르려 하자 엄마는 누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아버지가 가엾어도 지금은 아버지를 부르지 말자. 너희들과 엄마를 위해서 아버지가 저것마저 하실 수 없다면 더 슬퍼하실지도 모르잖니.”
엄마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에도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난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에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리고 아팠을까.
그날 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들의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든든한 지붕이 되기 위하여 비가 그치고 하얗게 새벽이 올 때까지…….
「우리들의 지붕, 아버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