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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25558165
· 쪽수 : 412쪽
책 소개
목차
밀밭
1부 쥐들의 문제
2부 강탈
3부 마지막 별
4부 수백만
5부 대가
6부 방아쇠
7부 모든 것의 합
8부 더뷰크
책속에서
세상은 서서히 멈춰가는 시계다.
얼어붙은 바람의 손가락이 창문을 긁어대는 소리 속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낡은 호텔의 흰 곰팡이가 핀 카펫과 썩어가는 벽지에서 그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티컵의 가슴속에서 그것을 느낀다. 쿵쿵거리며 뛰는 아이의 심장,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따뜻하게 흘러나오는, 아이가 내쉬는 호흡의 리듬, 서서히 멈춰가는 시계.
그를 믿다니 나는 머저리였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는 상처받고 혼자였다. 심지어 이 무시무시한 우주 속에 어쩌면 내가 마지막 남은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며 외로워했었다. 게다가 이미 한 명의 무고한 인간을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엄청나게 상심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 이 에번 워커는 날 죽일 수 있었음에도 내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래서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나는 그걸 무시했다. 더불어 그가 불가능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또 내가 마치 그에게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데 역시 불가능할 정도로 집착했었다는 사실도 전혀 상처가(아니 도움인가?) 되지 않았다. 그는 날 목욕도 시켜주고 먹여주기도 하고, 또 총 쏘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내가 자신에게는 목숨을 걸어 지키고픈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는 것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현실을 받아들여, 캐시. 지금 우린 여기 있지만, 때가 되면 죽는 거야. 그게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진실이었어. 그래, 그게 변함없는 진실이었지. 그들이 죽음을 발명한 게 아니야. 죽음을 완성했을 뿐이지. 우리의 얼굴을 대체할 수 있도록 죽음에게 얼굴을 주었던 거야. 그게 우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것은 어느 대륙이나 대양, 또는 산, 평원, 밀림, 사막 같은 곳에 서 끝날 게 아니야. 처음 시작한 곳에서, 처음부터 그것이 있던 곳에서, 마지막 인간의 심장이 뛰는 전쟁터에서 끝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