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28058563
· 쪽수 : 400쪽
· 출판일 : 2015-04-30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01
02
03
04
05
06
07
08
09
10
11
12
13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 정말 24층은 민폐 덩어리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아.”
민폐라고 하면 진짜 양 대리에게 그녀가 해 주고 싶은 말이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조금 성가시다 싶으면 그걸 모두 하진에게 넘겼다. 그렇다고 업무를 제대로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었다. 대충 이러이러하다 몇 마디 주워섬기고는 업무를 그녀에게 토스했다. 그리고는 마감이 닥쳤니 어쩌니 닦달을 해댔다.
“일전에 이양 씨, 들고 온 가방 봤어?”
또 얼마나 주변 사람들의 험담을 해대는지, 하진에게 업무를 토스한 양 대리는 한가할지 몰라도 하진은 자신이 해야 하는 고유의 업무와 양 대리가 준 업무에 시달려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도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에르메스 짭이야.”
“에, 뭐요?”
“에르메스.”
“아, 뭐. 네, 네. 에르페스.”
하진은 건성으로 양 대리의 말을 흘려들으며 자료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2박 3일 계획된 출장 일정이 잡혔다. 부산영업소 지원 업무였다. 하반기 신입사원 모집요강이 발표되었고,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은 지원자의 편의를 고려해 지난해부터 각기 지원자의 소재지에서 가장 가까운 영업소에서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내일 오전 전국적으로 1차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었고, 본사에서 각 영업소에 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조 과장과 양 대리, 그리고 하진은 부산으로 배정을 받았다. 그에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하느라 혼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으니 에르메스인지 에르페스인지 하진의 뇌리에는 그게 그거라고 느낄 정도였다.
“설마 그 연봉으로 에르메스 진퉁을 살 수나 있겠어? 남편 연봉이 나처럼 이억은 되면 몰라도. 그것도 세후 연봉.”
“아, 그러시구나.”
“저렇게 딱 티가 나는 짭을 들고 다니면 안 쪽팔리나? 저게 악어가죽이면 삼천이라고, 삼천.”
“삼천 원요?”
“어머, 하진 씨. 개그 필 있는데?”
양 대리가 우습다고 깔깔깔 넘어갔다.
“하긴 나라면 저런 짭은 삼천 원 준다고 해도 난 안 들고 다녀.”
“아, 그러시구나.”
“우리 집에 있는 게 바로 악어가죽이야. 삼천 원이 아니라 삼천만 원.”
“사, 삼천만 원이요?”
그제야 하진은 고개를 들어 양 대리를 보았다.
“무슨 가방이 삼천만 원씩이나 한대요?”
“그러니까 명품이지.”
그걸 몰랐어? 하는 표정으로 양 대리가 하진을 보았다.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가방에 다이아라도 박아 뒀어요?”
“리얼 악어가죽이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방이 없어 안 들고 다니는 것 아니야, 못 들고 다니는 거지. 단체생활을 하면서 지킬 건 지켜줘야 예의 아니겠어?”
무슨 가방 하나 드는데 예의까지?
“하긴 짭이라면 뭐 못 들고 다닐 것도 없지만. 그래도 난 못 들고 다녀, 쪽팔려서.”
“아, 네에.”
놀라움도 잠시 시장 가판에서 산 PVC 소재 만 원짜리 가방만 선호하던 그녀에겐 다른 나라의 이야기 같아 하진은 다시 건성이 되었다.
“보고서 정리 끝났는데 확인 안 하셔도 돼요?”
“과장님이 보실 거야. 올려.”
“네에.”
수험생들이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작성해 과장 전결로 내부 결재를 올리고, 오늘 오후부터 내일 오후까지 출장 품의서를 작성하여 차장 전결로 내부 결재를 올리는 동안에도 양 대리의 주변 사람 험담은 끝나지 않았다.
“저이는 오늘도 반차라네?”
“네, 정기검진이 있다나 봐요.”
“임신이 뭐 유세야?”
“네?”
“조직생활이 뭐야, 톱니바퀴잖아?”
“그렇죠.”
“그런데 톱니 하나가 빠지면 어떻게 돼?”
“그야…….”
“내가 뭐 임신 안 하고 싶어 안 하는 줄 알아? 사람이 프로페셔널 해야지.”
“일전엔 회사를 심심풀이로 다니신다고?”
“심심풀이든 땅콩이든 다니면 일단 사람이 전문가적인 느낌은 가지고 있어야지. 임신했다고 반차 내고, 몸이 불편하다고 할 일 제대로 안 하면 차라리 집에서 쉬어야지, 안 그래?”
하진은 양 대리를 빤히 보았다. 그냥 들어주고 가끔 영혼 없는 추임새를 넣어 주기도 했지만 지금 하는 발언은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처럼 느껴졌다.
“우리 친정엄마는 나 가지고 어른들 보기 부끄럽다고 민망해서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았대.”
“그건 대리님 어머님 시대 이야기고.”
“시대가 변했다고 인심이 변해? 임신했다고 저렇게 자리를 비우면 사람 인심이 그게 아니지.”
뭐지? 이 인간?
같은 여자이면서 결혼도 했다는 사람이, 언제 자신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는데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걸까? 생각이라고는 있는 걸까? 하진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보았다.
“남자 직원들도 많은데 쪽팔리지도 않나 봐? 보란 듯이 배를 내밀고 다니고 말이야.”
“제 눈에는 보란 듯 내미시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요. 그러니까, 나오는 배를 어쩔 수 없으니까.”
“겨우 십이 주, 그것도 초산이라면서 배가 저렇게 나올 시기야? 하진 씨가 뭘 몰라.”
“뭐, 저야 그렇죠.”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인 양 대리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첫 애 낳은 지 몇 해 되었다니 다시 임신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저런 악담이라니.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그렇지, 어디 임신했다고 자리를 양보하라니 마라니 하니? 그건 또 뭐야? 임산부 배치? 그런 건 아예 대놓고 양보하라는 말이잖아?”
이 여자가 진짜!
“나는 절대로 배치 달지…….”
“대리님.”
더 듣다가는 양 대리의 입이 아닌 주둥이를 냅다 치고 말 것 같았다. 확실히 자신에게서 분노조절장애의 징후가 보이는 듯했다.
“응?”
“급 똥이 마려워요.”
“뭐?”
“똥이요, 똥.”
똥, 지금 당신 하는 말이 똥이라고.
“무슨 여자 입에서…….”
“똥, 똥, 똥.”
하진은 벌떡 일어나 양 대리 들으라는 듯이 연거푸 말했다. 그러다 문득 강한과 눈이 마주쳤다.
아우씨, 진짜!
얼핏 웃는 얼굴이어서 하진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하진은 후다닥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 본문 맛보기



















